[매거진 esc] 그럼에도 바이크
오토바이의 세계를 탐험하는 ‘그럼에도 바이크’가 이번주부터 격주로 연재됩니다.
춥다. 12월 초, 한겨울이 채 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춥다. 왜냐하면 ‘바이크’-이 칼럼에서 바이크는 ‘오토바이’를 가리킨다-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 이, 크! 온몸으로 건조하고 가볍고 차가운 바람을 맞는다. 웃을 만하다. 바이크로 도심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웃는다. ‘아직’ 웃을 만하다.
인생에서 절대 가까워지지 않을 거라 여기던 것이 몇몇 있다. 예를 들면 낚시(지루하다)나 그림 그리기(열등감만 높아진다)나 카드게임(매번 진다)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얼마 전까지 바이크도 그랬다. 절대 가까워지지 않을 것 같기에 바이크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해본 적도 없었다. 머릿속에 ‘타면 안 되는 위험한 탈것’ 정도로 입력해 놓았을 뿐이다.
“배달 오토바이로 많이 쓰는 ‘시티100’은 일본 혼다의 ‘커브’를 본떠 만든 거예요. 그걸 커스텀(커스터마이즈·개조)해서 타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요.” 어느날 스쿠터를 타고 온 한 친구가 툭 말했다. 이 두 문장 중에서 정확히 알아듣겠는 말은 ‘배달 오토바이 시티100’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무심코 검색을 해보았다. 편견 속 ‘배달 전용 오토바이’의 이미지는 지워졌다. 그리고 떠오르는 형용사들. 아름답고, 예쁘고, 귀엽고, 매력적인! 바이크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새롭게 각인되고야 말았다.
고민은 시작됐다. ‘내가 바이크를 타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타야 할 이유는 너무 분명했다. 바이크는 주차 걱정 없어 도심 속에서 편리하고,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리터당 50㎞ 넘는 연비로 경제적이다. 그 무엇보다 바이크를 타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재미를 준다는 데 있었다. 이런 합당한 이유들이 있음에도 주저했던 것은 딱 하나,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이크 사고로 가까운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고민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바꿔보았다. ‘세상에서 위험한 것은 무엇일까?’ 위험한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바이크가 아니라 수년을 운전해오고 있는 자동차나, 어렸을 때부터 타 온 자전거 모두 위험한 요소가 있다. 탈것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면 공포스러운 것은 헤아릴 수 없다. 특히 요즈음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생존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크게 느끼곤 한다. 수없이 이어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혐오 표현,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 그런 두려움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 요즘처럼 뼈저린 적이 없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결론은 나왔다. ‘바이크 주행의 공포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을 만든 것도, 깨는 것도 나의 몫, 나의 선택이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선배 바이크 ‘덕후’들의 영향도 있었다. 궁금함을 못 참고 빈티지 저배기량 바이크를 잘 사 모으는 이부터, 트위터 공간에서 ‘바이크 전도사’를 자처하는 배우 김꽃비씨, 바이크가 좋아 바이크 웹툰까지 그린 이지우 작가까지. 뜻하지 않게 오래된 바이크 한 대를 끌고 전국일주를 하게 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지우 작가의 웹툰 <로딩>은 결정타에 가까웠다.
그 뒤 바이크를 주문했고, 100여일을 기다렸다. 그 시간은 고행에 가까웠다. 밤마다 바이크 이미지를 검색하고, 주행 동영상을 찾아보고, 바이크는 오지도 않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사고 또 샀지만 바이크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10월 중순 오기로 했던 바이크는 미뤄지고 미뤄져 겨울을 코앞에 둔 11월 말에야 도착했다.
바이크는 타기 가장 힘든 계절에 내게 왔다. 흔히들 겨울이면 ‘시즌 오프’라며 바이크를 잘 타지 않는다고들 했다. 아직은 아니다. 늦은 밤이면, 게다가 바이크를 타고 달리면 체감온도는 영하임이 분명한 날씨지만, ‘시즌 오프’는 안 될 말이다. 아마 사계절 내내 ‘시즌 오프’는 없을지 모른다. 춥다. 분명히 추운데, 열심히 오른쪽 스로틀(자동차로 치면 액셀러레이터)을 당겨본다. ‘아직’ 웃을 만하다.
바이크에 빠진 MOLA
‘바이크 전도사’를 자처하는 배우 김꽃비씨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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