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물안개가 잔뜩 꼈던 충주호에서. MOLA 제공
배경에는 아이슬란드 뮤지션 시규어 로스(시귀르 로스)의 음악이 흐르고 아이슬란드 1번 국도인 ‘링 로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카메라는 도로 앞 풍광을 응시한다. 가까운 곳엔 낮은 언덕들이 부드럽고, 먼 곳엔 험준해 보이는 산들이 날카롭다. 흰색, 보라색 꽃들이 도로 옆을 메우고, 그 뒤엔 너른 초원 지대가 펼쳐진다. 시귀르 로스는 ‘라우트 원’(Route One)으로 이름지은 이 영상을 24시간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했다.
지난 6월21일,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었다. 아이슬란드에 어둡지 않은 밤, 백야가 이어지던 날이었다. 신비롭고 아득해지는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시귀르 로스의 음악은 안개가 깔린 환상 속으로 나를 자꾸만 끌어당기는 느낌이다.
그렇게 꿈을 꾼다. 아이슬란드의 링 로드를 달리는 것을 상상한다. 바이크를 타고, 하얀 밤 속을 달린다? 어느 때보다 경이로울 밤바리일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화산 지형으로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이슬란드라니 말이다. 언젠가 하지에 아이슬란드에서 바이크를 타고 밤바리를 하는 것, 불가능한 일일까?
바이크를 타기 전 많은 꿈을 꾸었다. 국내 곳곳을 누비고 싶었다. 그 꿈을 절반 정도는 이룬 것 같다. 바이크를 타자마자 경기도, 전라북도, 강원도, 충청북도, 제주도까지 다녔다. 지난해 12월 초 시작한 바이크는 8개월 만에 주행거리 7000㎞를 넘었다. 추운 겨울 유명산의 굽이진 국도, 꽃이 만개한 제주도 중산간의 오름 사잇길, 한여름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 동해의 도로. 겨우 세 계절을 한 번씩 경험했을 뿐인데 잊힐 수 없는 길이 이렇게 많다. 예기치 않게 들어선 길의 아름다움에 벅찼던 기억은 셀 수 없다.
많은 지인들이 여전히 바이크를 타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 위험한 걸 아직까지 타고 다니냐는 뉘앙스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절반 정도는 이해한다. 바이크를 타면서 얻은 즐거움과 행복 때문에 나머지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되받아 바이크를 한 번 타보면 달라질 것이라고 답한다. 지금 여기, 달라진 사람이 있으니까.
모험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나 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모험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기는 참 어려운 일이니까. 여러 번 뒤로 물러섰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이크를 만났고, 그렇게 도로 위의 모험을 시작했다.
시작된 모험은 끝이 없다. 끊임없이 다른 길을 상상하게 한다. 당장 이번 겨울에는 타이에서 바이크를 타고 싶다. 따듯하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동남아의 겨울을 바이크 위에서 느껴보고 싶다. 내년 여름에는 아이슬란드에 갈 것이다. 바이크를 빌려 타고 캠핑을 하며 링 로드 일주하는 것이 목표다.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하루 걸러 비가 온다고 하고, 저녁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캠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러나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모험의 여정에 그런 어려움은 빠지지 않는다. 기꺼이 극복해내는 수밖에.
바이크는 많은 장점이 있다.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꿈을 꾸게 한다’는 점이다. 달리면서 그 공간의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바이크 라이딩은 모험을 재촉한다. 아마 달리지 않은 길이 있다면 끝없이 꿈꿀 것이다. 영원히. 도로 위 수많은 위협과 위험에도 내가 멈추지 않는 이유, 그럼에도 바이크다. <끝>
바이크에 빠진 M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