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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건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등록 2016-01-06 20:42수정 2016-01-07 13:43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우아하게 나이 먹기
노년과 청년에게서 들어본 나이듦의 의미
모두가 똑같이 한살씩 먹는 게 나이지만, 그 무게와 속도는 제각기 다르다. 그 나이에 해결해야 할 과제도, 하고 있는 고민도 다르다. 안 올 것 같은 노년을 향해 가고 있는 청년과,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청춘의 시간을 축적한 황혼의 나이 먹기 역시 다를 터. 올해 예순여섯이 된 박미정(가명)씨와 스무살이 된 최영진(가명)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미 그 시간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이에겐 공감과 성찰의 기회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살고 있는 이에겐 위로와 조언이 되지 않을까.

스포츠 댄스를 즐기고 있는 노년층. 김경호 기자
스포츠 댄스를 즐기고 있는 노년층. 김경호 기자
 

예순여섯살 박미정씨

-무슨 일을 하세요?

“자식 넷 기르면서 전업주부로 살았고, 지금은 그냥 할머니죠. 지인이 하는 무용 공연에 참가하게 돼서 1월엔 한달 정도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이고요.”

-무용 공연이요?

“내가 흥이 많아요. 친정 식구들 중에 제일 나대요.(웃음) 옛날부터 다시 태어나면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남의 공연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동네 복지관에 가서 연극을 해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대사가 안 외워져요. 한줄도 못 외우겠어. 이것도 다 때가 있나 보다 싶어 접었죠. 그런데 우연히 무용 공연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즉흥공연 같은 거라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고, 공짜로 외국 구경도 할 수 있으니 가겠다고 했죠.”

-춤 잘 추시나봐요.

“(전문적으로) 춤을 춰본 적은 없어요. 그냥 여행 가서 바닷가 모래사장을 보면 몸짓이 나오고, 마룻바닥을 보면 춤이 나오고. 태양, 바람 이런 걸 보면 내가 갈대나 자연의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내 흥에 겨워 움직이는 거예요.”

-인생을 즐기시는 것 같네요.

“즐기는 게 아니라 즐거워하면서 살고 싶어요. 내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시어머니를 15년 모셨는데 굉장히 머리가 좋으셨고, 애들 아빠도 그래요. 스물아홉에 청상과부 된 홀어머니의 외아들이죠. 시집살이를 호되게 했어요. 남편은 대학을 나왔는데 전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다고 시어머니한테 받은 구박은 말로 다 못 해요. 남편은 저한테도 자식한테도 애정 표현 같은 거 안 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전 우리 애들이 1등을 해도 기쁘지가 않았어요. 애들이 공부를 잘했는데, 바보는 저 혼자 괴롭지만 똑똑한 사람은 여럿을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만날 구름 낀 날 같고, 즐겁지가 않았죠. 그런데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살아보니까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실현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즐거운 날도 계속 있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인생이 그런 거라면 즐거울 때 마음껏, 흠뻑 즐거워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생각을 하시기까지 오랫동안 고통을 겪으신 거군요.

“몇년 전엔 위암 수술도 했고, 남편과 별거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미끄러운 길에서 몸이 휘청거릴 때 안 넘어지려고 하면 오히려 크게 다치지만, 몸이 움직이는 대로 맡기면 많이 안 다치잖아요? 나이 드는 것도 그래요. 늙음도 삶의 과정이죠. 우리가 박제된 것처럼 (젊은 채로) 머물러 있다가 죽는 게 아니잖아요. 주름이나 흰머리 갖고 난리를 칠 게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릴 때가 다가오는구나. 내 여행 보따리에 뭘 담고 뭘 버릴까’ 생각하는 거죠. 늙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현재 상황을 즐거워하면서 살 수 있어요.”

-나이를 먹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착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거예요. 젊었을 땐 애들한테 좋은 엄마가 되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인간 본성은 노력한다고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에요. 억지로 노력하면 가식의 가면을 쓰게 되고, 지쳐요. 화가 나도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먹거나 상대가 상처받을까봐 표현 못 하고 혼자 속상해하죠. 그렇게 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 속이 곯아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조곤조곤 얘기해줘야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 없어요.”

“늙음을 받아들이고 죽음 생각하면
지금을 즐거워하며 살 수 있어요”
“나이 든다는 건 경험을 얻는 것
뭐든 열심히 하며 꿈을 찾고 싶어요”

만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층. 박미향 기자
만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층. 박미향 기자

스무살 최영진씨

-무슨 일을 하나요?

“영문과를 다니는 대학생이에요. 봄이면 2학년이 되는데 지금은 방학이라 구청에서 하는 어린이 영어캠프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스무살이 된 기분이 어때요?

“우리 나이로 하면 스물한살이 되는 건데, 좀 이상해요. 아버지 사업 때문에 어릴 때부터 미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학교를 다녔거든요. 학년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은 저보다 한살 많아요. 그러면 제 나이도 친구들 나이처럼 생각하게 되잖아요. 열아홉살인데 스무살처럼 느끼면서 재수를 하고 대학에 왔는데 이번엔 진짜 스무살이잖아요. 그렇게 2년을 스무살로 지내고 또 한살 먹게 되니까 ‘진짜 나이가 드는구나’ 싶어요. 늘 스무살일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진짜 나이가 든다’는 게 뭘까요?

“‘경험을 얻는 것’ 같아요. 나이라는 게 숫자로는 한살을 더 먹는 거지만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그 나이에 맞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을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와 대학에 들어와서 제가 느끼는 감정이 다르더라고요. 왜 사람들이 어릴 때 이런 거 저런 거 해보라는지 알 것 같아요. 대학 들어온 뒤로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공부를 하고 싶은 대로 못한 ‘한’이 있거든요. 미국에선 공부를 잘했는데, 한국 돌아오고 나선 언어 장벽 때문에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대학 온 뒤로는 열심히 놀기도 했지만 공부도 열심히 해서 두 학기 모두 성적 4점대 찍었어요. 다른 것도 열심히 했죠. 학교에서 치어리더도 했고, 영어캠프 교사도 방학 때마다 하고 있고, 올해 열릴 신입생 캠프에선 리더도 맡았어요. 바쁘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이 아니면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보고, 이런 감정을 언제 느껴보겠어요?”

-흔히 말하는 ‘스펙 관리’ 차원에서 하는 활동 아닌가요?

“아니에요. 그냥 바쁘게 사는 게 좋습니다. 사실 아직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집에서 언니랑 오빠를 보면 알차게 사는 게 좋아 보여요. 지나고 나서 ‘그때 이거 해볼걸, 잘할걸’ 후회하지 않도록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한다는 건, 무언가에 강박을 느끼는 것처럼 보여요.

“음…. 고등학교 때 성적이 떨어지면서 불안감이 너무 컸고, 자존감도 낮아졌어요. 욕심, 성취 욕구는 큰데 잘 안되고, 언니·오빠들이랑 비교도 되니까요. 사실 제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게 가장, 항상 혼란스러운 일이에요. 제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요. 바쁘게 살다가도 ‘너무 열심히 살아도 잘 안되는 사람이 많은데’ 싶어서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죠. 그래도 지금은 그 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니까 현재에 충실하면서 뭐든지 다 해보고 싶어요.”

-지금보다 나이든 자신의 모습이 어땠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늘 생각해요. 자기만의 기준은 뚜렷하지만 이해심 있는 사람이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잖아요. 자기 색은 뚜렷해야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 거짓말 안 하고 솔직한 사람이기도 해야겠죠.”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나잇값’ 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누구나 먹는 나이, 좀더 건강하고 우아하게 먹을 수는 없을까? 청년과 노년을 위해 전문가들이 제시한 조언을 참고해보자. 두 조언은 각기 다른 연령대를 겨냥한 것이지만, 대부분은 ‘나잇값’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당장 실천해도 좋을 내용이기도 하다.

▶건강한 노화를 위한 12가지 지침

1. 항염증 다이어트(채소, 통곡물 등 건강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만성적 염증을 막고,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에 몸이 저항하고 적응하도록 하는 건강한 생활방식)를 실천하자.

2. 영양보조제를 현명하게 활용해 몸의 방어기능과 자연치유력을 강화하자.

3. 예방의학을 지혜롭게 활용하자. 노인성 질환에 걸릴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적절한 검진과 예방접종을 받자.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면 이런 문제는 조기에 치료하자.

4. 규칙적인 신체활동을 생활화하자.

5. 적당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자.

6. 자신을 스트레스에서 보호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자.

7.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단련하자.

8.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지적 활동을 유지하자.

9. 몸과 마음의 유연성을 기르자. 상실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버리자.

10. 노화가 가져오는 장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런 장점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시도해보자.

11. 노화를 부정하지 말고 현실로 받아들이며, 노화를 막는 데 정력을 낭비하지 말자. 노화의 경험을 영적인 각성과 성장을 위한 자극으로 활용하자.

12. 살면서 얻게 되는 교훈과 지혜, 자신이 지닌 가치를 꾸준히 기록하자. 인생에서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그 기록을 다시 읽어보고, 내용을 덧붙이고, 고쳐쓰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하자.

참고: 앤드루 와일 <건강하게 나이먹기>

▶스무살을 맞는 그대들에게 예순네살 먹은 ‘헤라니’ 할머니가

1. 세상에 태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2. 스무살이 되도록 탈없이 살아있는 것을 고마워하겠습니다.

3. 스무살이 되도록 낳아주고 키워주신 분들에게 고마워하겠습니다.

4. 나와 함께 놀아준 친구들에게 고마워하겠습니다.

5.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6. 잘난 친구를 시샘하지 않겠습니다.

7.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의미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겠습니다.

8. 불안을 젊음의 특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겠습니다.

9. 하루에 단 몇페이지라도 좋은 책을 찾아 읽겠습니다.

10. 하루에 한번씩은 꼭 하늘을 쳐다보겠습니다.

11. 내 몸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12. 모든 생물체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13.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찾아내겠습니다.

14. 내가 먹을 밥은 내가 번다는 생각을 잊지 않겠습니다.

15. 일이 안될 때 남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16.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겠습니다.

17. 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18. 가능한 한 여행을 많이 하겠습니다.

19. 악기 하나를 꾸준히 익히겠습니다.

20.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늘 마음을 열어두겠습니다.

참고: 박혜란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정리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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