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밤 11시, 서울 도심의 기온은 영하 15도. 바이크를 타고 한강변의 노들길을 달렸다. 체감온도? 모르겠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영하 15도 공기 속에서 시속 수십㎞로 바람을 안고 달릴 때의 체감온도라. 최소한 영하 20~30도는 됐겠지. 어떤 급한 일이 있었나 싶겠지만 전혀 없었다. 오직 이 칼럼을 위해서였다고 정리해두자. 서정민 esc팀장은 그로부터 며칠 전 만난 자리에서 “제일 추운 날 바이크 한번 타봐야겠네”라고 넌지시가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주문을 했다. 애초 입방정이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그 한파에도물론 지난 주말 같은 추위는 아니었지만바이크를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꺼낸 내가 잘못이다.
온갖 매체에서 지난 주말의 추위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정부는 이 추위가 ‘재난’이라며 친절하게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무시했다. 까짓 극한지방도 아닌 지역에서의 한때 추위야 며칠 견디면 어느새 지나가기 마련이지 호들갑스럽기는, 쯧쯧. 딱 이런 마음이었다. ‘슈퍼 한파’ 대비 방법이 여기저기서 떠돌자 그제야 살짝 걱정됐다. 어떻게 하면 이 한파를 무사히 보낼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다. 이 추위에 과연 바이크를 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 시간이 지날수록 살짝이 아니라 많이 걱정하게 됐다. ‘괜히 극한 라이딩 체험을 한다고 했나봐….’
일요일 오후 6시,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바이크를 탄 이래 처음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10분 정도 지나서야 시동 스위치를 누름과 동시에 스로틀을 살짝 당기자 “부르릉” 소리를 들었다. 바이크한테도 큰 시련이 될 것을 예감하고 출발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문제가 생겼다. 신호 대기 중 기어 변속이 되지 않았다. 길가에 바이크를 대고 기어 변속 페달을 힘껏 밟길 10여차례. 속으로 ‘이런 추위에는 바이크를 타지 말라는 신호인지 모른다’며 슬쩍 반갑게 포기하려는 순간, 기어는 바뀌고야 말았다. 기온은 점점 떨어졌고, 밤 10시가 넘어서는 달리던 바이크의 시동마저 꺼지는 증상까지 겪었다.
밤 11시, 한강변 노들길에 들어섰다. 한강대교 남단에서 성산대교 남단 구간의 노들길은 바이크도 주행할 수 있다. 윗옷은 5벌, 바지는 3벌을 껴입었다. 하체 보온을 할 수 있는 바이크 전용 레그커버도 씌웠다.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풀페이스 헬멧을 썼고, 그 안에 코까지 막아주는 버프를 두겹 착용했다. 장갑은 두켤레를 꼈고, 손등이 추울까 핫팩도 붙였다. 손바닥이 닿는 손잡이에는 열선을 깔았다.
문제는 이마였다. 헬멧은 당연하게도 눈과 코 부위가 뚫려 있고, 이 부분엔 투명한 재질의 가리개가 있다. 헬멧 본체와 가리개 사이로 바람이, 칼바람이 들.어.왔.다. 어느새 노들길을 달리며 헛웃음과 함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이마 피부 아래 두개골 아래 뇌의 작동이 걱정되는 찰나, 웃음이 터져나왔다. “미쳤어, 미쳤어!” 그럼에도 보이더라. 한강 수면 위 투명한 얼음이, 어느 때보다 맑게 빛나는 빌딩 숲이. 영하 15도에 시속 60㎞로 성산대교를 가로지르자 꽁꽁 언 풍경이 눈에 와 박혔다. 슈퍼 한파 라이딩은 그렇게 끝났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헬멧을 벗고 이마의 안녕부터 챙겼다. 그리고 떠오르는 서정민 팀장. 원망스럽진 않았다. 그냥 떠올랐다. 물론 그런 권유를 해서 고맙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가 꼭 다음 겨울에는 바이크를 타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미쳤나봐”라고 혼잣말하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에서 비롯한 바람이다. 정말 순식간에 esc(ape)다. 아마 우주에 던져진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면? 춥지만, 그럼에도 바이크다. 슈퍼 한파는 지났다. 그리고 봄은 오니까. 오고 있으니까.
바이크에 빠진 M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