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두근거렸던 때가 있었을까. 도심 속 은행나무 가로수에 연두색 새싹이 비칠 때쯤이면 봄기운의 시작에 코끝이 간질거렸다. 날로 따뜻해지는 봄볕이 반가웠다. 여름, 가로수의 짙은 녹음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봄이 너무 짧아 안타까웠다. 연두색 새싹의 나날은 찰나에 가깝다. 짧은 봄날은 반가웠지만 역시 기대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같은 봄이니까. 그런데 이번 봄은 다르다.
점점 날씨에 민감해진다. 스스로 예민하다 싶을 정도다. 하루에 몇 번씩 내일 날씨와 다음 한 주 날씨를 알아보는 탓도 있을 것이다. 언제 비가 오는지, 기온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바이크를 타는 데 날씨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물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이크를 탈 수 있다. 아주 춥거나, 아주 더워도 탈 수 있다. 그러나 365일 바이크를 타기로 스스로 굳은 약속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레 날씨에 맞춰 바이크를 탈지 말지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봄, 외투를 바꿔 입어야 하는 날씨가 되고서야 ‘아, 봄인가?’ 했다. 그리고 그 짧은 봄을 누릴 새도 없이 따가운 햇볕이 피부를 쏘아댔다. 바이크를 타고 나서 맞는 봄은 다르다. 사람들이 ‘봄은 아직 멀었어’라고 할 만큼, 늦겨울의 긴 추위에 피곤해질 무렵이었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2월 중순부터 기온이 조금씩 올랐다. 오른 기온이래봤자 최저 기온은 0도 근처에 머무는 나날이었다. 추위가 반짝 풀릴 때면 최고 기온이 10도 안팎을 오갔다. 2월 말 한낮의 따뜻한 햇볕이 반가워 경기도 파주까지 달렸다. 그날 해가 지고서는 오싹한 추위을 견뎌야 했지만. 바이크 라이더에게 봄은 이렇게 한발 앞서 온 느낌이다.
기온이 본격적이고 안정적으로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비가 내렸다. 바이크를 탈 수 없으니 참 속상한 날이었어야 했는데, 그 세찬 빗소리를 웃으며 들었다. ‘이제 깨어나겠지. 이 봄비에는 무엇이든 견딜 수 없어, 깨어나고 말 거야.’ 하늘은 먹구름에 어두워졌는데, 마음은 이미 갠 하늘이었다. 비 온 뒤 갠 하늘은 곧 미세먼지가 덮고 말았지만.
그래, 봄이 왔으니 무엇을 할 것인가? 두 가지 계획이 있다. 우선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은 지난 초겨울 달렸던 산속 길을 달려보고 싶다. 유명산이라는 곳에 갔다. 동이 완전히 트기 전 유명산 복판의 임도를 바이크를 타고 달렸다. 자세히 본 적 없는 초겨울의 낯빛은 생각보다 더 어두웠다. 곳곳의 소나무와 잣나무마저 푸르다고 표현하기엔 어두운 짙은 녹색을 띠고 무겁게 앉아 있었다. 내린 눈은 녹지 않아 드문드문 쌓여 있었다. 개울은 마르지 않았지만, 곧 말라갈 것처럼 보였다. 그 숲을 떠올려 본다. 봄이 오면, 창백했던 그 산길은 어떤 모습일까. 알 수 없는 잡풀과 잡목의 새싹은 또 어떤 연둣빛일까. 그 가운데서 바이크를 타고 달리면 어떨까. 다시, 두근댄다.(두번째 계획은 다음 칼럼에 소개하겠다.)
당장에 쓸 일은 없을 것 같은 캠핑 장비를 괜히 꺼내본다. 딱 한 번 썼거나, 아니면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장비들이다. 봄이 오면 쓰겠다고 지난겨울 차곡차곡 마련해뒀다. 장비를 마련하며 지난겨울 추위가 한창일 때 바이크를 함께 타는 친구들과 곧 맞이할 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목표도 없다. 그저 따뜻한 공기 속에서 바이크 타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봄이 다가온 기분이었다. 상상했던 봄날이 코앞이다.
이번 봄이 다른 이유는 단 하나다. 바이크가 있는 봄이라는 것. 바이크가 있는 첫봄이기에 이런 두근거림이, 이런 기대가 생겨나는지 모르겠다. 아마 올 한 해는 내내 이런 설렘에 중독되어 살는지 모른다. 바이크가 있는 첫여름, 첫가을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참 기분 좋은 중독이다.
바이크에 빠진 M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