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사진 송곳 작가 제공
[매거진 esc] 이우성의 좋아서 하는 인터뷰
시인이자 출판사 편집자 김민정…시인들이 세월호 희생자 목소리로 쓴 ‘생일시’ 책으로 펴내기도
시인이자 출판사 편집자 김민정…시인들이 세월호 희생자 목소리로 쓴 ‘생일시’ 책으로 펴내기도
가장 잘하는 일은 사람 보듬는 것
가장 못하는 일은 자신 돌보는 것
“아프지 마, 누나” 나는 말한다 “결혼하지 않은 걸 처음 후회해봤네. 남편이 있으면 하소연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할 텐데. 늙은 부모한테 와서 그런 거 다 받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녀는 모른다. 그녀 옆에 많은 사람이 있다. 그녀는 전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아프면 당장 달려와줄 거다. 내가 아니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프면 당연히 달려갈 거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전화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그녀는 건강해지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녀 자신을 위해서겠지만, 더 큰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하게 전화하기 위해서겠지. “퇴원했어. 많이 좋아졌는데, 계속 조심해야지. 완벽하게 낫는 게 아니니까.” 이상해.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착한 사람은 왜 아플까? 그런 사람이 왜 외로울까? 나는 그녀의 병을 떼어다가 나쁜, 내가 너무 싫어하는 사람에게 붙여주고 싶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시를 쓸 수 없어. 나는 더 못 쓰겠어.” 그녀는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두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는 명징하고 명확한 시집이다. 이 시집이 겨냥하는 것은 간단하다. 시, 뭣도 아니다. 시, 그까짓 거. 이딴 마음이다. 그것이 그녀가 시를 숭배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미 김민정이 시를 더 쓰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뭘 더 얘기하지 않아도 김민정은 우리 문학사에 남는다. 김민정은 시라는 허울을 벗기고, 자신의 시를 발견했다. 그렇지만 너무 아픈 말이지 않은가. 시를 쓸 수 없다니, 더는 못 쓰겠다니. 이 말이 단순히 시적 재능이 소멸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할 리 없다. ‘아이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은 후에 사람들이 조금씩 그 참사를 잊어갔다. ‘생일시’라는 게 있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시를 써주는 것이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의 음성으로 겨우 살아가는 엄마, 아빠, 동생, 언니, 오빠, 형을 일일이 호명하는 시를 시인들이 썼다. 김민정이 그걸 했다. 시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시를 더 못 쓰겠다는 김민정의 말을 알 것 같다. 우리에게 더 이상 무엇이 남아 있는가? 그러나 김민정은 늘 “살아라”, “건강해라”, “잘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프지 마, 누나”라고 나는 자주 말한다.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면서. 그런 김민정을 만났다. 병원에서 퇴원한 김민정이 고기를, 무려 한우를 사주겠다고 했다. 내가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먹었다. 그녀가 언제 행복한지 알기 때문이다. “우성아아, 잘 살아라. 잘돼라. 기죽지 말고. 더 먹어. 밥 먹지 말고 고기 먹어.” 나는 그 많은 고기를 다 먹었다. 누나가 더 시켜줘서 더 먹었다. 누나가 언제 배불러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꾸 울컥했다. 소중한 사람이 나를 떠날까봐 두렵다. 누나가 없으면, 착한 우리 누나가 더 아파서 지금보다 더 마르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된다. “그런데 우성아아….” 누나가 망설이며 말했다. “누나, 상 탔어. 현대시문학상. 아까 전화 받았어. 시도 못 쓰는데 상을 왜 주시나 모르겠네. 너한테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거야.” 아…. 시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직하게 삶을 살며 정의롭게 세계를 지키는 것, 그것이 시인이, 작가가, 아니 어른이 할 일 아닌가. 아마 저 상은 그녀의 마음을 향해 내리는 감사의 뜻이 아닐까, 나는 자꾸만 우기도 싶은 것이다. 잘됐어, 잘됐다고. 이우성 시인 ▶팟캐스트 디스팩트 시즌2 : 123정은 결정적인 순간 세월호 구조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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