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바이크와 함께 도는 인생의 코너링

등록 2016-03-23 20:17수정 2016-03-24 09:17

북한강을 따라 난 391번 도로 라이딩에 앞서 마주한 해질녘 풍경. 라이딩을 시작하고서는 모퉁이 구간을 통과하느라 풍경을 즐길 새도 없었다.  MOLA 제공
북한강을 따라 난 391번 도로 라이딩에 앞서 마주한 해질녘 풍경. 라이딩을 시작하고서는 모퉁이 구간을 통과하느라 풍경을 즐길 새도 없었다. MOLA 제공
[매거진 esc] 그럼에도 바이크
모퉁이 구간을 유독 좋아한다. ‘코너링’이라고 부르는 그 구간. 코너링을 즐기게 된 것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부터였다. 쭉 뻗은 고속도로보다는 주변 마을과 산과 강이 어우러진 한산하고 굽이진 길 위를 달리면, 거기에 좋아하는 음악까지 함께라면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게다가 곳곳에 새싹이 돋는 그런 봄에 드라이브를 하고 나면 겨울 끝자락의 눅진한 우울감이 지워졌다.

코너링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굽이진 국도의 분위기와 더불어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차체를 의도대로 조정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랄까. 회전 구간의 시작점에서는 속도를 줄여 진입하고 돌아나올 때는 가속페달을 살짝 밟으며 부드럽게 치고 나오는 그 순간! 이런 쾌감을 논하기엔 자동변속 차량을 몰고 있다는 게 좀 쑥스럽긴 하지만….

바이크 코너링의 즐거움은?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뒤 두 달 정도는 똑바로 안전하게 운전하는 데만 신경쓰기에도 바빴다. 여기저기서 깜박이도 제대로 켜지 않고 툭 튀어나오는 자동차나 버스, 택시를 경계하느라 녹초가 되곤 했다. 코너링의 즐거움을 욕심내기엔 벅찼다.

바이크 라이딩 4개월차, 이제야 고개를 슬쩍 드는 것이다. 바이크로 능숙하게 코너링 구간을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북악스카이웨이를 오르내리면서 짧게나마 ‘슥-스윽-삭’ 회전 구간을 달리고 나면 ‘피식’ 웃음이 나곤 했다. 짜릿하고 뿌듯했다. 그 짧은 순간의 즐거움이 잊히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 길을 나섰다. 목적 따위 없었는데, 출발하고 나서 목적이 생겼다. ‘즐거운 코너링,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강을 따라 달렸다. 신청평대교를 지나서 북한강변에 바짝 붙어 난 391번 도로로 진입했다. 직선 구간이 드문, 모퉁이 구간으로 이어진 길이 남이섬 선착장까지 30㎞가량 나 있다. 오른쪽에 펼쳐진 해질녘 강변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고즈넉함을 느낄 새는 40여분 동안 불과 5분 정도? 나머지 35분 동안은 정신없이 돌고 돌고 또 돌았다.

뿌듯하기보다 답답했다. 바이크 운전이 미숙한 건 분명한 터, 욕심이겠으나 좀더 부드러운 코너링을 하고 싶었다. 바이크 마니아 친구들의 이런저런 조언이 이어졌다. 모두 소화하기에도 벅찬 코너링 공략법이 쏟아진다. 코너링에서 작용하는 힘의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선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모퉁이 구간에 진입하며 굽이진 곳을 집중해 보면 공포심에 긴장은 더 하게 되고 핸들 조정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바이크 바로 앞이 아니라, 좀더 멀리 시선을 두라는 조언이었다.

다양한 공략법 중 문득 ‘시선 처리’에 시선이 갔다. 코너링뿐일까, 시선을 좀더 멀리 두어야 할 때가. 고속도로처럼 뻗은 미래는 ‘없다’. 굽이굽이 인생의 모퉁이 구간은 시도 때도 없이 닥치고 만다. 내비게이션을 켜서 확인해볼 수도 없다. 너무 굽이질 게 분명한 인생의 한 구간 앞에서 온 정신이 아득해지고 어느 방향으로 마음을 둬야 할지 몰라 당황하곤 한다. 지나온 인생의 코너링을 돌이켜보면 크게 사고가 난 적도 있고, 작은 부상에 그친 적도 있었다.

지금은 큰 사고에 쓰러졌다 겨우 일어서는 중이다. 그러다 바이크를 만났고, 바이크와 함께할 좀더 먼 미래의 시간을 그리게 됐다. 핸들을 다시 고쳐 잡는 중이다. 코앞에 견뎌야 할 일들과 시간들이 닥치겠지만, 이제는 조금 부드럽게 그 구간을 지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인생의 코너링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괴로운 순간도 분명히 있다. 괴롭다는 말로도 설명하기 부족한 그런 때가. 다만 조금 더 멀리, 저 앞에는 그 시간을 함께 지켜본 이들이 박수치고 있을 거다. 그런 환호를 보내주고 싶던 이가 있었다. 그가 떠난 뒤 지금이라도 늦은 환호를 보낸다. 진짜 멋지게 달리는 인생이 참 멋졌다고. 잊지 못할 거라고.

바이크에 빠진 MOLA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