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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와인’ 맛보며 ‘송중기 와인’을 찾다

등록 2016-04-20 20:35수정 2016-04-21 09:46

그리스 와인을 즐기는 이. 사진 박미향 기자
그리스 와인을 즐기는 이.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그리스 와인·음식 탐방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나라 그리스 토착 품종만 300가지 넘어
혀는 기억력이 뛰어나다. 더구나 연인과 나눈 맛이라면 인공지능 ‘알파고’의 능력을 넘고도 남는다. 한국방송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도 그리스 와인을 잊지 못한다. 밤비가 들이치는 부대 주방에서 연인 ‘강모연’과 입술로 나눠 마신 붉은 술은 그리스 와인이다.(4회) <태양의 후예>의 국외 촬영지가 그리스 자킨토스섬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드라마에 등장한 와인은 그리스 와인(생산량 기준 세계 17위)일 터! 유시진 역을 맡은 배우 송중기가 마신 ‘그 와인’이 궁금해, 지난달 25일 그리스로 향한 와인 탐방 여정에서 ‘송중기 와인’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스는 와인의 시작

그리스는 고대 유적지에서 와인의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유서 깊은 와인생산국이다.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와인을 마셨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시간의 길이만 따지면 와인의 종주국인 프랑스가 형님으로 모셔야 할 판이다. 술(와인)의 신 디오니소스 신화도 그리스가 배경이다.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는 “양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에는 프랑스 와인이 오히려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술로 테루아르(포도 재배지의 토양이나 기후)의 한계를 극복한 프랑스에 비해 그리스는 신들의 나라답게 포도 재배에 매우 적합한 날씨였던 것이다. 그는 “과일 향이 풍부하고 도수가 높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긴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그리스 와인은 은둔자를 자처했다. 국외 시장을 넘볼 필요가 없었다. 국내 소비가 활발해 고작 3%만 수출했다.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와인마스터인 콘스탄티노스 라자라키스는 “4~5년 전부터 매년 10%씩 수출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불어닥친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계기가 됐다. 국가 재정파탄의 한 해결책으로 8년 전에 비해 주세를 15%나 올리자 와인 소비가 줄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 등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패기 넘치는 와인생산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 와인업계는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와인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토착품종이 많다는 점은 든든한 발판이 됐다. 현재 토착품종은 300개가 넘는다.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말하는 라자라키스는 국제시장에서 저평가됐던 그리스 와인이 기지개를 활짝 펴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이트 와인 산미 높고 과일향 풍부
고대 와인 생산 방식 암포라 인기
면류관 닮은 포도나무 해풍 막는 구실
유명한 빈산토 와인의 고향도 그리스
‘송중기 와인’은 자킨토스섬 와인 추측

예수의 가시 면류관처럼 생긴 산토리니의 포도나무. 사진 박미향 기자
예수의 가시 면류관처럼 생긴 산토리니의 포도나무. 사진 박미향 기자

‘송중기 와인’의 첫번째 여행지는 산토리니

지난달 27일(현지시각) 하늘과 바다가 편 가르기를 멈춘 듯, 같은 푸른색으로 빛났던 산토리니. 와이너리 ‘도멘 시갈라스’의 와인생산자인 파나요타 칼로게로풀루가 포도밭으로 안내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유명 와이너리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처럼 생긴 둥근 모양의 포도나무들이 땅바닥에 붙어 있었다. 칼로게로풀루는 “화산섬인 산토리니의 전통 방식으로 ‘쿨루라’(kouloura. 그리스어로 ‘바구니’란 뜻)”라며 “줄기가 자랄수록 가지치기를 자주 해 둥근 형태로 만들어주면, 포도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 마치 커다란 우산처럼 되어 지나치게 뜨거운 햇살과 거센 바람을 막아준다”고 말했다. 포도 잎 아래서 알이 영근다. 이어 그가 땅에 손을 얹어보라고 주문했다. 땅은 신기하게 따스했다. 화산섬이라 가능한 온도였다. 그는 “땅속에 있는 작은 돌멩이들은 수분을 머금고 있다”고 말했다. 포도 알이 익기에 충분한 신의 선물이다. 그의 와인은 전날, 레스토랑 ‘쿠쿠마블로스’에서 시음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토착품종인 아시르티코 100%로 만든 화이트 와인 ‘카발리에로스’와 레드 와인인 ‘마브로트라가노’(토착품종 마브로트라가노 100%로 제조), 스위트 와인 ‘빈산토’ 등을 맛봤다. 아시르티코는 산미가 매우 강하고 미네랄과 오렌지 등 과일 향이 풍부한 품종이다. 병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미네랄이 증가한다. 산토리니에 정착했던 페니키아인이 고대 국가 아시리아에서 포도나무를 가져와 심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카발리에로스는 라벨이 독특한 와인으로 유명하다. 병을 뒤집으면 그리스 고대 문명의 인간석상을 형상한 그림이 드러난다. 그리스의 와인평론가 그레고리 미하일로스는 “산도가 높은 아시르티코는 스시, 튀김 등 아시아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는 “마브로트라가노는 ‘검고 상큼하다’는 뜻”이라며 “상큼한 산미와 블랙커런트, 다크초콜릿 향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그리스 어디를 가나 쉽게 발견하는 빈산토는 황금색으로 달콤하다. 이탈리아 디저트 와인으로 알려진 빈산토의 실제 출발점은 그리스였던 것이다.

이날 와이너리 가발라스, 아르기로스 농원 등을 포함한 6군데 와이너리의 15가지 맛을 시음하고, 다음날도 20가지를 시음했지만 ‘송중기 와인’은 없었다. 산토리니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80%는 화이트 와인이다.

고대 와인 생산 도구인 암포라(와인 숙성 토기). 사진 박미향 기자
고대 와인 생산 도구인 암포라(와인 숙성 토기). 사진 박미향 기자

헤라클레스의 도시, 네메아와 암포라
와인의 파트라스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얼굴은 동쪽에 위치한 도시 네메아다. 그리스신화의 최고 영웅 헤라클레스 전설의 주무대다. ‘시골의사’ 박경철은 자신의 책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서 네메아의 와인을 극찬했다. 그는 크레타산과 더불어 네메아의 와인을 그리스인들은 최고로 꼽는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와이너리 세멜리에 도착하자 10개의 와인생산업체가 각각 3~4병을 들고 맞이했다. 디오니소스 어머니의 이름을 딴 세멜리는 2시간가량의 와인투어(www.semeliwines.gr 참조)도 진행할 정도로 세련된 와이너리다. 맛과 향에 한껏 취해도 포도밭을 몇 발자국 걸으면 취기가 사라진다. 가시권 안인 코린토스만의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 때문이다.

와인평론가 미하일로스는 “네메아에서는 토착품종 아기오르기티코 100%로 만든 레드 와인만이 피디오(PDO. 그리스 와인 등급 중 고급) 판정을 받는다”고 말했다. 네메아가 주산지인 아기오르기티코는 아시르티코, 레드 와인 품종인 크시노마브로, 화이트 와인 품종인 모스코필레로와 더불어 그리스 와인의 네 기둥이다. 세멜리에서 생산한 ‘나시아코스 만티니아’(모스코필레로 100%로 제조)와 ‘세멜리 네메아 레제르브’(아기오르기티코 100%로 제조)를 맛봤다. 후자는 검은 과일 향이 솔솔 퍼지면서 벨벳 같은 타닌이 느리게 혀를 마비시켰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아기오르기티코의 매력에 푹 빠지는 순간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죽인 사자의 피가 자양분이 돼 자란 품종이라는 전설이 허투루 생긴 것이 아니었다. 맛이 매우 다양해 전문가들도 정의내리기 쉽지 않다는 아기오르기티코가 어쩌면 ‘송중기 와인’일지 모른다. 배우 송중기와 닮았다. 장미 향이 강한 나시아코스 만티니아는 달지 않은 리슬링 와인(미네랄 맛이 강한, 독일 등이 주산지인 와인)을 연상시켰다.

이날 시음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와이너리는 ‘크티마 첼레포스’. 주인 야니스 첼레포스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수학한 이로 자신이 와인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것은 “그리스 품종의 순수성”이라고 말했다. 수출가 4.5유로인 그의 와인 ‘만티니아 첼레포스’와 ‘크티마 드리오피 레제르브’는 현장 주문이 쇄도했다.

와인잔에 비치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 사진 박미향 기자
와인잔에 비치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 사진 박미향 기자

와인산지 파트라스에 위치한 와이너리 테트라미토스에서는 뜻밖의 와인을 만났다. 800년 된 암포라(amphora.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을 숙성시킨 토기)에서 고대 그리스 방식 그대로 생산하는 와인 ‘레치나’(retsina. 그리스어로 ‘송진’이란 뜻)였다. 지하 숙성실에는 수백개의 암포라가 있었다. 고대에는 암포라에 담긴 와인을 이동할 때 와인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레치나를 발랐다. 맛의 보존제 구실도 했다. 송진 향이 밴 와인은 특이한 맛으로 인기를 얻었다. 포도품종 로디티스 100%로 만든 테트라미토스의 레치나는 개성이 매우 강해 호기심이 많은 이가 아니라면 덤빌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독특한 맛이다. 살짝 도는 솔 향은 우리네 술 ‘솔송주’를 연상시켰다.

파르테논 신전이 권하는 와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앞에 있는 식당 ‘디오니소스’에서 사바티아노 와인을 맛볼 기회를 지난달 30일 잡았다. 사바티아노는 그리스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다. 미하일로스는 “덥고 건조한 아테네의 기후를 잘 이겨낸 화이트 와인 품종”이라고 말했다. 한없이 발랄하기만 한 사바티아노 와인이 ‘송중기 와인’일 리 없었다. 아테네의 향토식당인 ‘콜리아스’에서 희망이 보였다. 자킨토스섬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섬 케팔로니아에서 생산되는 와인 ‘겐틸리니 로볼라’를 만났다. 고급 등급인 피디오 와인이 3개나 될 정도로 최근 떠오르는 와인산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것도 상큼한 화이트 와인이었다. 와인교육기관 더블유에스이티(WSET)의 그리스분교인 더블유에스피시(WSPC)에서 만난 와인마스터 콘스탄티노스 라자라키스에게 자킨토스섬의 와인에 대해 물었다. 그는 “20여가지의 토착품종을 섞어서 만든 와인이 주로 생산되고, 알코올 도수와 산도가 매우 높으며 향신료 향이 강하다”며 “오랫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자킨토스섬도 그리스의 다른 지역처럼 개성이 강한 와인을 생산한다. 심지어 산악지대에서는 흑색 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와인도 있다.

한국에서 그리스 와인을 판매하는 곳은 헬레닉와인(hellenicwine.co.kr)과 그리스와인센터(greekwine.co.kr) 두 곳이다. ‘송중기 와인’ 찾기는 서울에서도 이어진다.

산토리니·네메아·아테네/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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