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마스크를 쓰고 헬멧을 그 위에 썼다. 공기질이 ‘매우’ 나쁜 지난 일요일 경기도 양평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바이크를 자주 타는 친구들과 함께였다. 출발지는 미사리조정경기장 입구. 8명의 바이크 라이더는 제 위치를 정하고 강원도로 향하는 길이 나 있는 6번 국도를 타기 위해 팔당대교를 건넜다.
여러 명이서 함께 바이크를 탈 때는 일종의 역할 분담이 있다. ‘로드’. 대열의 맨 앞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 대열 전체 움직임을 판단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윙어’. 대열의 중앙쯤에서 전체 일행이 로드의 움직임에 안전하게 합류할 수 있도록 다른 일원들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임무가 있다. ‘리어’. 대열의 맨 끝에 선다. 전체적인 대열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뒤에서 오는 위협 요인은 없는지 판단하고, 리어와 함께 라이더 전체가 안전하게 로드를 따를 수 있도록 한발 빠르게 움직이기도 해야 한다.
미사리조정경기장에서 양평의 한 펜션으로 갈 때는 4번째 자리였다. 로드도, 윙어도, 리어도 아니었다. 그 역할을 맡지 않는다고 해서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로드의 방향 전환과 앞뒤 라이더들과의 간격 유지 정도를 신경 쓰면 되는 위치이니 많은 긴장을 하진 않아도 됐다. 6번 국도 오른쪽으로 펼쳐진 푸르고 푸른 풍경에 감탄을 했다. 한 달 전쯤 달렸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빛의 강변 풍경이었다. 햇살은 또 무섭게 따가웠다. 봄 냄새와 여름 냄새와 미세먼지가 섞인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 뒤로는 아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펜션 진입까지 짧은 구간에서 ‘로드’를 잠시 맡았다. ‘로드’를 하던 친구의 스마트폰이 충분히 충전되지 않아서였다. 스마트폰 거치대가 있고, 충전이 안정적으로 가능하며, 길 안내 음성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을 수 있었기에 짧고, 차가 많지 않은 구간이니 “내가 (로드를) 해도 된다”고 일행에게 이야기했다. 극도의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로드를 거의 도맡아 하는 친구가 있다. 이제 그 짐을 함께 나눠 들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선 길. 바로 후회했다. 식당에서 나서자 길이 막혔다. 막힌 길이기에 큰 위험요소는 없는 상황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두뇌가 풀가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호를 비롯한 도로의 사정, 일행의 움직임 등을 쉼 없이 파악해야 했다. 써놓고 보니 간단해서 조금 억울한 느낌이다. 사이드미러 확인을 비롯해 고개를 어깨 너머로 돌려 다시 한번 도로 사정을 확인하고 대열의 움직임을 짧은 시간에 판단해야 했다. 북한강 풍경을 보며 상쾌하게 식었던 머리가 뜨거워져 오는 느낌이었다.
다음날인 월요일 낮 1시30분. 묵었던 펜션을 떠나며 위치를 정했다. 다시 한번 ‘로드’ 역할을 하게 됐다. 늦게 합류한 친구까지 9명이 1차 목적지인 남양주시 덕소면을 거쳐 2차 목적지인 서울 장지역을 향해 달려야 했다. 항상 막연한 자신감을 장착한 채 살아가기에 ‘그래, 해보지 뭐!’라고 속으로 외쳤으나,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평일 오후였지만 도로의 차량은 꽤 많았다. 쌩쌩 달리는 덤프트럭이 옆으로 지나갈 때는 간이 좁쌀만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이크 주행 연령 만 4개월의 로드 역할은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퍼졌다. 몸과 정신 모두. 멀쩡한 건 타고 달리던 바이크뿐이었다. 오는 길의 풍경도 갈 때와 같이 분명히 좋았을 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스치는 것은 덤프트럭과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의 사체와 바로 앞에서 시속 50㎞로 달리다가 추월을 하려니 70㎞로 달리던 그 차뿐이다. 그럼에도 달린다. 여럿이 달린다. 또 로드를 하겠냐면? 그건 좀 더 생각해볼 일이다.
바이크에 빠진 M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