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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람이 전하는 누룽지 디저트 수다!

등록 2016-05-18 20:26수정 2016-05-19 10:36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셰프들의 제주 맛 향연
아시아 최고 여성 페이스트리 셰프의 제주 사랑…‘제1회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 찾은 재니스 웡, 성현아 셰프와 달콤한 요리 시연
딱 3초였다. 3초 만에 방긋방긋 웃던 재니스 웡의 얼굴이 폐휴지처럼 구겨졌다. 갓돔의 쓸개를 깨물어 먹었기 때문이다. 곁에 있던 성현아 페이스트리 셰프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난 13일 저녁 7시, 싱가포르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인 재니스 웡과 한국의 떠오르는 샛별 성현아 셰프가 저녁 식사를 위해 제주시 ‘도두해녀의 집’을 찾았다.

재니스 웡은 저녁 식사로 제주 향토음식 성게물회를 즐겼다. 사진 박미향 기자
재니스 웡은 저녁 식사로 제주 향토음식 성게물회를 즐겼다. 사진 박미향 기자

“씹지 마시라! 삼키시라!” 이 자리에 함께한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도 갓돔 쓸개에 손을 뻗는 재니스 웡을 향해 격하게 외쳤건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며칠간 허탕 쳐, 빈 테왁(해녀바구니)을 둘러멘 배고픈 해녀 할망조차 거들떠도 안 보는 게 갓돔 쓸개다. ‘아시아 최고의 디저트 여신’은 처음 경험한 맛에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재니스 웡은 지난 5일부터 열흘간 열린 ‘제1회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의 본행사(12~14일) 참여차 제주를 찾았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서울 신사동의 디저트 카페 ‘소나’를 운영하며 20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성현아 페이스트리 셰프가 친구가 돼주었기 때문이다.

재니스 웡은 지난 11일, 서귀포시 중문동의 ‘한라산 청정촌’을 찾아 제주 토종 종자인 푸른콩(푸르대콩)으로 만든 된장 맛을 봤고, 12일에는 류태환, 이찬오, 토드 잉글리시 등 11명의 국내외 유명 셰프들과 함께 제주 식재료로 뷔페식을 차렸다. 화력을 내뿜는 근육질의 남성 셰프들 사이에서 섬세한 솜씨를 발휘했다. 그는 제주산 카라향과 영귤 과즙을 사용해 ‘오렌지 둥지’를 만들었다. 디저트의 모양이 마치 동그란 새둥지 같아 지은 이름이다. 새콤한 동시에 보드라운 질감이 혀에 닿았다. 성현아 셰프도 이날 ‘한라녹차크림이 채워진 오징어먹물 쿠키슈와 카라향 소르베’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제주의 식재료인 영귤과 카라향에 홀딱 반했다.

디저트 ‘오렌지 둥지’. 화려한 색이 눈길을 끈다. 재니스 웡의 솜씨. 사진 박미향 기자
디저트 ‘오렌지 둥지’. 화려한 색이 눈길을 끈다. 재니스 웡의 솜씨. 사진 박미향 기자

누룽지디저트, 숭늉에서 영감 얻어
탱탱한 제주 영귤이 맛 살린 슈거볼
달콤한 수다에 빠진 두 여성 셰프
전복·군소·갓돔 등 제주 식재료에 반해

성현아 셰프가 만든 ‘슈거볼’. 사진 박미향 기자
성현아 셰프가 만든 ‘슈거볼’. 사진 박미향 기자

가장 주목을 받은 행사는 13일 이 둘이 펼친 ‘마스터 셰프들의 요리 시연’ 마지막 세션. 각자 자신있는 디저트를 선보였다. 재니스 웡은 전날 뷔페식에서 선보였던 ‘오렌지 둥지’와 우리 누룽지를 활용한 디저트를, 성현아 셰프는 먹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예쁜 슈거볼을 만들었다. 슈거볼(설탕 반죽에 바람을 불어 공 모양으로 만든 디저트) 안에는 달콤하고 상큼한 스파클링 와인과 제주산 영귤로 만든 거품, 알록달록한 식용 꽃이 들어갔다. 연단에 올라와 직접 맛을 본 한라대 호텔조리학과 학생들은 “전혀 달지 않고 고소하면서도 구수하다”고 평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즉흥적으로 재니스 웡이 자신이 개발한 ‘팝콘 티’와 숭늉을 섞은 음료를 만들어 시음할 이를 찾자 장내에선 순식간에 “여기요, 여기요”가 터졌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학생은 “향은 너무 달콤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맛을 보니 단맛은 없다”며 신기해했다. 성현아 셰프도 질세라 자신의 슈거볼은 “깨서 먹는 것”이라며 작은 망치를 들고 나와 맛볼 학생을 불러 모았다. 행운의 주인공이 된 생머리의 앳된 여학생은 “진짜 맛있다”고 감탄했다. 시연이 끝나고도 페이스트리 셰프가 되고 싶은 20대 지망생들의 상담이 줄을 이었다. 1시간 반을 훌쩍 넘긴 시연행사를 마친 이들은 이날 저녁 7시가 돼서야 식당에 자리를 잡고 제주전통음식전문가인 양 원장과 ‘디저트 수다’를 이어갔다. 군소(연체동물의 한 종류), 전복, 물회, 성게미역국, 갓돔회 등이 쏟아져 나오는 식탁에서 재니스 웡의 호기심에 불을 댕긴 건 갓돔 쓸개였다. “나는 맛의 기억의 창고가 있다. 쓴맛, 단맛 등 맛을 레벨로 정리해둔다. 쓸개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고 수준의 쓴맛이다. 오렌지 껍질은 중간 레벨이다. 이런 식의 기억은 내 혀를 섬세하게 만든다. 어떤 맛도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제주산 멸치조림, 젓갈, 전복이 맛있다며 연신 젓가락질을 하던 그는 갓돔 쓸개 맛을 이렇게 평했다. 설탕 0.001g의 차이로도 디저트는 다른 맛의 세계를 펼친다. 겸손하게 스스로를 “한국적인 맛에 갇혀 있다”고 말한 성현아 셰프는 “맛의 조화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고, 지나치게 달지 않도록 산미를 첨가하더라”고 재니스 웡의 과감한 도전과 실험정신에 찬사를 보냈다.

재니스 웡과 성현아 셰프가 먹은 제주도산 전복. 사진 박미향 기자
재니스 웡과 성현아 셰프가 먹은 제주도산 전복. 사진 박미향 기자

 재니스 웡이 만든 일명 누룽지 디저트. 사진 박미향 기자
재니스 웡이 만든 일명 누룽지 디저트. 사진 박미향 기자

“그의 누룽지 디저트는 상상도 못했다.”(성현아) 이날 시연에서 재니스 웡이 선보인 일명 ‘누룽지 디저트’는 돌솥비빔밥 숭늉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다. 찹쌀로 누룽지를 만들고 그 누룽지에 ‘팝콘 티’를 부어 졸였다. 누룽지로 오목하게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메줏가루 커스터드(우유나 달걀노른자, 설탕 등을 섞은 크림처럼 부드러운 과자)를 넣었다. 푸른콩으로 만든 메줏가루다. 만약 눈을 감고 맛을 봤다면 결코 제주에 생애 첫발을 디딘 이가 만든 디저트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친숙한 맛이었다. 한복을 곱게 입은 어머니의 젖꼭지를 문 채 자장가를 듣던 한두 살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향한 칭찬에 머쓱해진 재니스 웡은 성 셰프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한국의 전통에만 매달리지 않고 세계인도 놀랄 만한 영귤을 사용하는 등, 새로운 디저트를 시도하는 성 셰프가 놀라웠다.”

영귤 얘기가 나오자 양 원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를 시작했다. “귤의 한 종류인 영귤은 한때 사라졌던 종자다. 다행히 살려내 나도 영귤 콩피(시럽 등에 재료 넣 오래 끓이는 조리법)를 시험 삼아 만들고 있다.” 알고 보니 양 원장도 20여년간 제과제빵 아카데미를 운영한 페이스트리 셰프였다. 모친인 김지순 선생이 제주향토음식 장인이라서 그는 향토음식 지킴이를 겸업하고 있다.

“달콤한 디저트라서 여성 페이스트리 셰프가 많을 것 같지만 아니다. 최고라고 손에 꼽히는 여성은 더 적다. 여성이라고는 믿기 않을 정도로 과감한 재료 선택을 하는 재니스 웡이나 자신이 원하는 맛을 찾고자 완벽한 조리법에 매달리는 성현아 셰프 모두 대단하다.” 동종업계 대선배가 여성 후배들을 앞에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 원장은 올해 2월 재니스 웡의 ‘2에이엠: 디저트바’(2AM: DESSERTBAR)에 가 직접 맛을 봤었다.

재니스 웡도 “같은 여성과 협업을 해서 좋았다. 여성들끼리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며 “나의 할머니에게 영감을 받았듯이 성 셰프와도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자기 분야에서 확고하게 경력을 쌓아가 는 이들이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고 이구동성 말했다. 갑자기 ‘세계여성대회’로 빠지려는 찰나, 재니스 웡이 양 원장에게 폭풍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의 발효음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양 원장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제주도는 육지에서 1년 걸릴발효 기간이 3개월이면 된다. 항상 상온이 유지되고 평균 습도가 높아 발효 조건이 좋다. 흙도 귀해서 얇은 옹기 항아리를 만들어 쓰고, 유약도 귀해서 안 발랐는데 이제는 그것이 제주도 장의 장점이 되었다.” 재니스 웡은 동그랗게 눈을 치켜뜨고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귀를 쫑긋 모았다.

양 원장은 “중국 진나라시대의 기록에 한국의 된장에 관한 기록이 있다. 역사가 오래된장 문화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서양의 치즈, 햄 같은 발효가 아닌 콩, 장아찌 등 채소 발효는 우리가 원조국이다.” 밤이 깊어가도 좀처럼 재니스 웡은 자리를 뜰 생각을 안 했다.

재니스 웡(왼쪽)과 성현아 셰프.  사진 박미향 기자
재니스 웡(왼쪽)과 성현아 셰프. 사진 박미향 기자

밤 10시쯤, 식당 주인이 영업이 끝났다고 말하자 그제야 이들은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페이스트리 셰프를 꿈꾸는 여성후배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용기를 가지고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집중해라. 지나치게 트렌드에 민감해하지 마라. 빠르게 변하는 페이스트리 세계에서 일하다 보면 쉽게흔들릴 수 있다. 예쁜 모양이나 아름다운 장식보다 ‘맛’이 중요하다. 자신의 성장을 도울도전에 정진하라!”(재니스 웡) “현장에서 잘참는 법을 배워라.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도잘 참으면 짧은 시간에 자신의 길을 찾을 수있다.”(성현아)

제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재니스 웡 재니스 웡은 독특한 성장 과정을 거친 셰프다. 3살까지는 할머니와 싱가포르에서 살았지만 이후 7살까지 독일계 금융회사를 다닌 부친을 따라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성장했다. 이후 홍콩 지점으로 발령난 부친을 따라 홍콩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부모는 어린 그에게 스시 맛을 보게 할 정도로 모험심이 강한 이들이었다. 그는 달콤한 슈크림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2014년 권위있는 레스토랑 평가 행사인 ‘아시아 베스트 50 레스토랑’에서 ‘아시아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뽑혔다. 그의 나이는 이제 33살이다.

성현아 심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항공사 직원, 온라인 쇼핑몰 운영 등을 한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한계를 느끼고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떠올렸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미국 요리학교 시아이에이(CIA)로 유학을 갔다. 그림에 소질이 많았던 그는 화가와 유사하다고 생각한 페이스트리 셰프를 선택한 것이다. 만화영화보다 요리 프로그램을 더 좋아했던 어린 시절 경험이 작용했다고 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프랑스 셰프 조엘 로뷔숑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실력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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