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용품을 검색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고 나서였다. 피의자 김씨는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범행 전 공용화장실에 들어왔던 남성들은 손대지 않았다. 오직 여성이었던 피해자에게 칼을 휘둘렀다. ‘여성혐오’ 범죄다. 너무도 명확하게 피의자 김씨가 스스로 짚어주지 않았는가. 남성들은 왜 여성혐오 범죄인 것을 부정하려 드는 걸까? 잠재적 범죄자군으로 취급받는 게 억울해서? 일반화의 오류라서? 여성으로서, 억울하다 주장하는 남성들의 외침이 참으로 한가한 징징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호신용품을 검색하다가도 오싹하다가 한숨이 나온다. 호신용품이나 호신술이나 체급 차이가 나면 별 소용없다는 조언들이 등장한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여성혐오자의 칼부림에 속절없다.
친구들과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은 뒤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인 친구들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시간과 공간은 다양하다. 대중교통은 성추행, 성희롱 온상지다. 가해자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대담한지. 학창 시절 몇몇 선생님, 교수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일터는 또 어떠한가. 맥줏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는 일상적인 성희롱에 너무도 괴로워하는 중이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순간은 바이크를 타는 친구들의 ‘간증’(?)을 들을 때다. 그들은 바이크를 타면서 길거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겪는 성희롱과 성추행이 거의 없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마찬가지의 경험을 하고 있다. 번화가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 시간은 정말 악몽과도 같다. 여성 일행들끼리 있으면 치근덕대는 남성이 없는 경우가 거의 없다. 팔까지 끄집는 경우도 다반사다. 정색을 하고 팔을 밀쳐내도 소용없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바이크를 타고 나간다. 악몽과도 같은 시간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서 누군가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크게 줄었다. 택시를 기다리며 성희롱당하는 일은 줄었다. 대중교통 안에서 누군가의 몸이 밀착되는 기분 나쁜 경험은 이제 없다. 묵직한 헬멧은 쓰고 있거나 들고 있으면 든든한 느낌이다.
물론 바이크를 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바이크를 타는 여성들을 향한 성차별적인 언행이나 시선들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인데 이런(매뉴얼) 바이크를 타세요? 예쁜 스쿠터 타시지.’ ‘여자고 바이크고 몸매가 잘 빠져야 해!’ 따위의 말들을 듣게 된다. 이런 식의 성차별 언행을 지적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여성 라이더들이 트위터에 ‘남자분이 바이크 타세요?’(@namjagabiketane)라는 계정을 운영하면서 바이크를 타면서 겪는 성차별 언행을 미러링의 방식을 차용해 기록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긴 머리를 헬멧 밖으로 보였을 때와 감췄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극적으로 다르다. 긴 머리를 내보이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람을 여럿 보게 된다. 또 바이크 뒤를 바짝 쫓거나 깜빡이를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드는 자동차도 많아진다.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으며 주행하는데도 위협 운전을 하곤 한다. 그들도 스스로를 여성혐오와는 관련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행동은 ‘살인’뿐만이 아닌데도 말이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그렇게 살기 힘들다. 여성 그리고 여성 바이크 라이더들의 송곳 같은 외침이 더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하고 또 생각하게 했으면 한다. 끊임없이 떠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생존을 향한 간절함을 조금이라도 이해받고 싶다. 살아남고 싶다. 참 절망스러운 소망이다.
바이크에 빠진 M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