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심야책방인 ‘북티크’에서 밤 10시 책을 읽고 있는 시인 이우성. 박미향 기자
지금은 10시. 당연히 밤 10시다. 심야책방에 와 있다. 서울 논현역 근처에 있는 ‘북티크’라는 ‘콜라보 서점’이다. 뭘 컬래버레이션, 즉 협업한다는 걸까? 이곳에선 매일 독서 모임이 열린다. 한국 문학을 읽는 모임도 있고, 미뤄둔 책을 함께 읽는 모임도 있고, 경영학 책을 읽는 모임도 있고, 시 읽는 모임도 있다. 작가를 초청해 낭독 행사도 한다. 그러니까 독자와 책과 작가가 함께 만드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콜라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책과 사람의 컬래버레이션일 수도 있겠고.
금요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문을 여는 서점, 북티크의 심야책방에 지난 19일 다녀왔다. 신기하다, 금요일 밤인데, 지금 여기 책 읽는 사람이 있다. 12명. 이 중 여자 둘은 시험공부를 하는 것 같다. 어떻게 아냐고? 세상의 모든 참고서는 참고서같이 생겼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문을 여니, 밤새 공부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도 좋은 공간이 될 것 같다, 라고 적는 순간 유리문을 열고 여자 셋이 들어온다. 아이스라테 두 잔과 따뜻한 바닐라라테를 시키고 둘러본다. 어디 앉지? 이런 눈빛. 한 여자가 말한다. “저 벽 뒤쪽으로 돌아가도 자리 있어.” 그렇다, 아까 와서 둘러봤는데 좋은 자리가 있다. 등받이 높은 의자 여섯 개가 고요하게 놓여 있다. 그래서 숨은 기분이 든다. 아까 그 의자에 앉아서 책을 폈는데… 졸렸다.
지금 무지 졸린다 여기서 책 안 읽고 딴짓하는 건 나뿐이다 책 읽는 사람과 음악만 있다
시인 이우성이 ’북티크’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박미향 기자
나는 그렇다. 지금도 무지 졸린다. 아, 차 타고 올 때만 해도 모처럼 밤새 책을 읽겠노라, 마치 과거에 한 번이라도 그렇게 밤을 새운 적이 있기나 한 것처럼 의기양양했으나, 잠이 솔솔 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한 손에 책과 스마트폰을 같이 들고 서점, 아니 카페, 아니 서점…에 들어왔다(자세히 보니 남자가 들고 있는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다). 음료를 주문하고 벽면 책꽂이에 와서, 본다. 어떤 책이 있나. 사실… 음… 진열된 책들이 확, 눈길을 끌진 않는다. 나는 그랬다. 너무 일반적이다. 대형 서점 진열대에 꽂힌 책과 다르지 않다. 베스트셀러나 유명 작가의 책 위주랄까. 낯선 책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건 내 오만인가? 그렇다. 졸려서 책 한 장 못 읽은 내가 책 ‘셀렉션’을 딴죽 거는 건 이치에 안 맞는다.
관계자에게 저 책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건지 물었다. 일단 책은 판매용이다. 독서 모임 때 읽었거나, 독서 모임 회원에게 추천을 받았거나, 북티크 직원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골라 진열한 거라고 한다.
“대중적인 책이에요. 저희 대표님은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독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독자가 없으니까 책이 잘 안 팔리는 거잖아요. 새로운 독자를 만들려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부터 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테이블에 사람들이 다 찼다. 넷이 앉는 테이블이 5개, 혼자 앉는 테이블이 5개 있다. 그리고 대운동장 응원석 같은 계단이 네 칸 있고 이 중 두 칸에 사람이 앉는다. 그래서 여기 지금 대략 스무 명 정도가 있다.
시인 이우성이 심야책방인 ‘북티크’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박미향 기자
북티크의 박종원 대표는 출판사에서 일했다. 그는 사람이 올 수 있는 서점을 만들기 위해 북티크를 열었다고 한다. 북티크의 정확한 주소는 ‘서울 강남구 학동로 105’다. 고가의 가구를 파는 곳으로 유명한 길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지하공간이다. 알고서 굳이 찾아오는 사람만이 올 수 있다. 북티크는 책과 음료를 파는 서점이자 카페인 동시에 콘텐츠 생산 공간이다. 책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콘텐츠다.
예쁜 여자가 들어왔다. 눈길이 간다. 지금 여기서 책 안 읽고 딴짓하는 건 나뿐이다. 금요일 밤, 북티크에는 아무것도 없다. 책 읽는 사람과 음악만 있다. 대부분 여자다. 남자보다 여자가 압도적으로 책을 더 많이 읽는다던데, 뉴스에 나오는 통계가 맞구나.
남자 대표로 나라도 열심히 읽어야지, 마음을 다잡고 ‘LIBRARY’(라이브러리)라고 적힌 책꽂이에 갔다. 이곳에 있는 책은 꺼내서 읽어도 된다. 시집이 몇 권 꽂혀 있어서, 혹시 내 시집이 있나, 봤는데 없다. 안타깝다, 어떻게 내 시집이 없냐고! 민음사에서 나온 유계영 시집 <온갖 것들의 낮>을 꺼낸다. 유계영이 시집을 내고 사인을 해서 보내줬는데 꼼꼼히 읽지를 못했다. 옆에 <미생> 전집이 꽂혀 있다. <미생>도 집었다. 아무래도 만화가 부담이 적지…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와 <미생>을 읽기 시작한다. 금세 한 권을 다 읽었다. 자정이 되었다. 돌아간 사람도 있고 들어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왜 이곳에 올까? 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있고 둘, 셋이 온 사람도 있다. 연인도 있다. 책을 읽는 게 데이트가 될 수 있을까? 각각, 그러나 같이, 모르는 사이끼리, 연대하는 기분. 여기서 지금 우리는 손에 책을 들고 있다. 안 외롭네.
여자 두 명이 책을 읽는 친구 둘에게 나가자, 라고 말하며 이탈을 제안한다. 안 돼, 라고 대답한다. 둘은 떠나고 둘은 남는다. 그리고 또 누군가 들어온다. 노트북을 덮고, 나도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 심야에 <온갖 것들의 낮>을 읽을 차례다.
‘북티크’에서 만화 <미생>을 펼쳐든 이우성 시인. 박미향 기자
이우성 시인·<아레나> 피처에디터
kay0177@hanmail.net,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밤에 책보기 좋은 곳
모든 산책은 자신과의 데이트다. 유명한 사람이 말한 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 걷다 보면 생각하게 되고, 걸으며 생각하다 보면, 나와 말하게 된다. 고요히 생각하면 풍요로워진다.
산책과 생각을 도와주는 건 역시 책이다. 낮의 책보다, 밤의 책. 퇴근길에 걸어서 서점에 갈 때의 기분을 떠올려보자. 행복하다, 라고 굳이 적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혼자 걷는 게 외롭지 않다.
이태원 해방촌에는 작은 서점들이 있다. 19.8~23.1㎡(6~7평) 규모의 서점이고, 길에서 서점 내부를 들여다보면, ‘와, 예쁘다’라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인테리어를 특별히 한 게 아니다. 책꽂이와 책이 전부인데 예쁘다. 볼 때마다 미스터리야. 걷다 보면 서점과 서점 사이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문학전문서점 ‘고요서사’, 복합문화서점 ‘별책부록’,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이곳에 있다. 세 서점은 같이 약속해서, 한 달에 하루 심야책방을 연다. 자정까지 책을 볼 수 있다. 느슨한 형태의 이벤트가 열리기도 하지만 그런 게 없어도 좋다. 심야, 불 켜진 책방, 한둘이 서서 책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당신은 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다.
이우성 시인·<아레나> 피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