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3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옥탑방에서 ‘집콕족’(집 안에 콕 박혀 지내는 사람들) 김태진(40)씨를 만났다. 그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특집과 <나 혼자 산다>, <능력자들>에 출연해 얼굴이 꽤 알려진, 인디밴드 ‘내 귀에 도청장치’와 ‘연남동 덤앤더머’의 기타 연주자다.
그는 주변인들에게 “내 꿈은 장판”이라며 ‘농반진반’ 얘기한다. 그만큼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한다. 최근엔 개, 그것도 남의 개를 산책시키다가 손가락이 부러져 더 외출을 안 한단다. “2주 동안 집 밖에 안 나간 적도 있어요.” 그는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가물가물한 듯 말했다. 한 사람이 누우면 거의 꽉 들어차는 단칸 옥탑방 안에 있을 건 다 있었다.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기, 만화책, 악기들…. 밖에 안 나가도 심심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그는 아침 7~8시 사이에 일어나 전날 작업한 곡을 모니터링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주로 배달음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뒤엔 게임을 하거나 뉴스를 챙겨 본다. 낮잠 한두 시간은 필수다. 키우는 고양이 덕구, 덕삼이와 놀다 게임을 하거나 기타와 첼로를 연습한다. 최근 새로운 악기를 배우고 싶어진 그는 “앉아서 하는 악기를 찾다가” 첼로를 구입했다. 저녁이 되면 평상에 앉아 고기를 구워 저녁을 해결한 뒤, 곡 작업을 한다. 저녁이나 밤에 곡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잠이 잘 오기 때문”이다. “공부하면 졸리잖아요. 똑같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합주 연습이나, 공연이 아니고선 집 밖에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일본어) 아니냐”고 묻자 “아니다. 집에 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면 히키코모리지만, 난 곡을 만들고 기타 연습을 하는 등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고 또박또박 반박한다. “왜 집 밖으로 안 나가냐”고 물으니, “내 집이 무릉도원이다. 있을 거 다 있고,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왜 나가나”라고 반문한다.
휴가 때도 집콕족들은 집을 떠나지 않는다. 최근엔 휴가를 집에서 보낸다는 의미의 ‘홈캉스’(홈+바캉스), ‘스테이케이션’(스테이+베이케이션)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에 맞춰 업체들도 다양한 상품을 쏟아냈다.
집콕족들 대부분이 1인가구이기 때문에 이들을 겨냥한 ‘솔로 이코노미’도 주목받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5년이면 한국 전체 가구의 34%가 1인가구가 된다. 1인가구는 2020년엔 전체 민간 소비의 15.9%를 차지할 전망이다.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싱글페어’는 이런 사회의 흐름을 보여준다. 28일 찾아간 전시장엔, 스마트폰을 끼워 누운 채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종이상자부터, ‘혼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주는 앱, 1인용 사우나 등 아이디어 상품이 많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샤니볼’이라는 희한한 물건이 눈길을 끌었다. 고무공 안에 엘이디(LED)등을 넣어 빛이 나게 만든 일종의 ‘탱탱볼’이다. 아무리 봐도 어린이용 같은 물건인데, 업체 대표는 “주로 어른들이 사간다”고 했다. “추석 다가오면 혼자 사는 사람들 심심하잖아요. 방에 불 꺼놓고 이걸 던지면서 놀면 시간 금방 가요”란다.
다 큰 어른이 불 꺼놓고 탱탱볼 갖고 논다고 웃거나 한심하게 볼 게 아니다. 한국은 이미 형형색색의 공만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됐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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