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낭독회·직접쓰기·필사·팟캐스트 등 시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들
낭독회·직접쓰기·필사·팟캐스트 등 시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들
시 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
고요한 방. “눈으로 먼저 볼게요.” 분홍 셔츠를 입은 사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0~30대 남녀 9명이 코를 박고 하얀 종이를 쳐다봤다. 사내는 시인 김언. 지난달 30일 모인 이들은 음반회사 파스텔뮤직이 운영하는 ‘처음학교’의 시 쓰기 수업 수강생. 종이엔 각자 적어온 과제물 ‘나의 대리물을 찾기 위한 자유산문’이 적혀 있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전에, 사물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 권영숙(29)씨부터 읽어볼까요?” 김언의 말에 권씨가 종이를 손에 쥐었다. 침 삼키는 소리도 부끄러울 정도로 조용한 교실에 권씨의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음반회사 파스텔뮤직이 운영하는 ‘처음학교’의 시쓰기 교실 풍경. 지난달 30일 시인 김언이 수강생들에게 시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센터 시쓰기 교실도 문전성시
SNS·웹에서도 시가 ‘대세 콘텐츠’
“공들여 쓴 좋은 글의 잠재력” 발휘 시 서점, 시 놀이터가 되다 서울 신촌기차역 인근의 시 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은 정식으로 문 연 지 두 달이 채 안 됐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입소문을 타고 20대들 사이에선 벌써 명소로 자리잡았다. 주인 유희경씨는 시인 겸 출판편집자다. 그는 “20~30대 여성들이 많은 편”이라며 “시는 이제 트렌드”라고 했다. 위트앤시니컬은 ‘카페 파스텔’ 안에 있다. 차를 마시며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제일 먼저 접할 수도, 시인을 직접 만날 수도 있어 찾는 이가 많다. 주인이 시인이다 보니 이곳을 제집 드나들듯 찾는 시인이 많다. 우연히 마주치면 독자들은 사인을 부탁한다. 지난달 30일 이곳을 찾은 시인 오은은 활짝 핀 얼굴로 사인을 해주기 바빴다. 매주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시 낭독회가 열려 독자와 시인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유씨는 “저변 확대를 위해 음악 등을 결합한 다양한 시 관련 기획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의 ‘다시서점’도 시집을 중심으로 꾸린 독립서점이다. 동그랗게 뚫린 벽 등 독특한 실내 공간이 매력인 이곳은 시화전 ‘우리는 시도 없이 살아갈 수 없어’를 열고, 전시를 기념해 만든 포스터와 엽서도 판다. 판매수익금은 용산구 결식아동을 위해 쓴다고 한다. 서울 문래동의 ‘청색종이’, 대구 동인동의 ‘시인보호구역’ 등은 시인들이 최근 문을 연 시 전문 서점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시스타그램과 시 웹툰 국문학과 2학년 박나현(20)씨는 요즘 하루 3~4개의 시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손으로 직접 필사한 시와 펜을 사진으로 찍고, 해시태그 ‘#시스타그램’을 달아 자신의 계정 ‘신지별(sinzybyul)’에 올린 게 벌써 2년째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마음의 위로가 필요해” 시를 필사하기 시작했는데, 가끔씩 올린 시 사진에 ‘좋아요’ 수가 늘고,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생기면서 재미가 붙었다. 요즘은 팔로어가 6000명이 넘는다. 서울과 경상도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청년 작가모임 ‘말그래’에서는 함께 활동하자는 쪽지도 보내왔다. 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했다. 2007년 등단한 시인 신미나(39)씨는 ‘시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종이책이라는 틀이 답답해” 지난해 11월 네이버 ‘도전만화’(누구나 창작만화를 올릴 수 있는 게시판)에 도전했다.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시 한 편을 소개하는 만화를 올렸다. “시의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시작은 했지만, ‘시는 어렵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댓글조차 달리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신씨의 우려를 깨고, 시 웹툰은 한 회에 1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를 눈여겨본 출판사 ‘창비’는 그에게 창비 블로그에 본격 연재를 제안했고, 최근까지 26화를 게재했다. 지금은 출간 작업을 위해 잠시 시 웹툰을 멈춘 상태다.
‘시스타그램’으로 스타가 된 대학생 박나현씨의 인스타그램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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