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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서 별일 없이 산다

등록 2016-11-03 11:15수정 2016-11-03 11:50

[ESC] 커버스토리
네 집 중 한 집 1인 가구 시대, ‘나홀로’는 어떻게 지내나
교통·혼밥 편의성이 거주지 조건…2인 가구보다 월 10만원 더 써
기업들엔 ‘중요한 고객층’ 미래 불안해하지만 만족도 높아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직장인 ‘나홀로’라고 해요. 나이는 30대라고만 해두죠. 서울 관악구 12평 빌라에 월세로 살아요. 모두들 제가 1인 가구 표본모델이라고 하더라고요. 주거지, 나이, 생활방식 등이 거의 대한민국 표준이라나, 뭐라나.

혼삶족은 2호선에

왜 하필 관악구냐고요? 우선 관악구는 교통이 편해요. 고향이 대전인데, 버스를 탈 땐 서울 강남버스터미널에 가고, 기차를 탈 땐 서울역에 가죠. 둘다, 관악구 바로 옆 사당역에서 지하철 타면 30분 안팎이면 갈 수 있어요. 또 관악구엔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아 고시촌이나 원룸 등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집들이 밀집돼 있어요. 회사가 강남이니, 강남에 살면 좋겠지요. 하지만 언감생심, 강남은 주택 임대료가 너무 비싸잖아요. 관악구는 서울에서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니, 저 같은 사람이 살 만한 동네죠.

다른 혼삶족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부동산 중개 앱 ‘직방’ 자료를 보니까, 20~30대가 혼자 살기 좋은 원룸이나 투룸, 오피스텔 매물을 가장 많이 검색한 지역이 서울 신림역과 서울대입구역이었어요. 그다음이 건대입구역, 수유역, 사당역이었죠.

공통점이 있다고요? 맞아요. 수유역을 빼곤 전부 2호선이에요. 2호선 라인에 1인 가구들이 몰려 있다는 건 이미 많은 통계로 확인할 수 있어요. 2호선에 대학이 몰려 있어 자취하기 좋고, 지방 갈 때도 편한 거죠. 한마디로 혼자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보면 돼요.

혼밥·혼술 하기 좋은 홍대 앞이나 연남동, 합정동도 전부 2호선이에요. 새로 뜬다는 문래동, 상수동도 2호선이죠. 2호선을 중심으로 상권이 개발되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예요. 그래서 2호선 역세권은 부동산업계에서도 ‘황금상권’이라고 불려요.

누가 궁상맞대?

소맥제조기 `소맥탕탕' 옥션 제공
소맥제조기 `소맥탕탕' 옥션 제공
옛날엔 혼자 살면 궁상맞다고 했죠? 지금은 달라요. 저 같은 1인 가구가 오히려 씀씀이도 커요. 2인 가구(부부 가구)에서 한 사람이 한 달에 105만원을 쓰는데 1인 가구는 114만원을 써요. 월 10만원을 더 쓰는 거죠.

저도 비슷해요. 월급은 250만원 정도인데, 한 달에 60만원을 일단 월세로 내요. 주거비 부담이 가장 크죠. 나중에 결혼이라도 할 생각으로 작은 적금을 하나 붓고 있어 나름 아낀다고 아끼는데요, 그래도 살 거 사고 먹을 거 먹으면 항상 빠듯해요.

씀씀이가 크니까 기업들도 우리 혼삶족을 주목하는 것 같아요.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에서 이런 자료를 냈더라고요. 영화관에서 표 한 장을 결제하는 비율이 2011년엔 19.1%였는데 2015년엔 24.4%로 뛰었대요. ‘혼영’이 그만큼 늘었단 얘기죠. 혼밥 결제 비율은 같은 기간 3.3%에서 7.3%로 두 배가 넘게 높아졌어요. 경기가 나빠져 전반적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흐름 속에서 1인 가구는 기업들에 ‘호갱’…, 아니 ‘황금알을 낳는 고객’이 될 수 있는 거죠. 오죽하면 2017년 트렌드 전망서들에서 혼밥·혼술·혼영을 넘어 무한 확장되는 1인 경제를 지칭하는 ‘1코노미’(1인+economy)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겠어요.

실제 인터넷 쇼핑몰 한번 검색해 보세요. 혼삶족을 겨냥한 상품들이 무궁무진해요. 너무 기발해서 제가 사면서도 즐거울 정도라니까요. 혼술 할 때 요긴한 소형 유에스비(USB) 냉장고나 ‘소맥’ 제조기는 히트 아이템이에요. 전 소맥 제조기에 꽂혔어요. 소맥은 원래 누가 말아줘야 맛있는데, 제조기 덕분에 간편하게 혼술 소맥이 가능해졌어요. 방아쇠를 잡아당기면 막대기가 순간적으로 흔들리면서 거품이 이는데 보는 재미도 있어요. 쌀과 물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밥이 되는 조리기나 혼고기를 먹을 때 좋은 1인용 화로, 2리터 생수병을 끼워서 쓰는 정수기도 오픈마켓에서 잘 팔린다고 해요.

USB 혼술 냉장고. 지마켓 제공
USB 혼술 냉장고. 지마켓 제공

도시락 판매도 엄청나죠. 편의점에서 경쟁적으로 백종원 도시락이니, 김혜자 도시락이니 나오잖아요. 이런 도시락은 최근 올해 초보다 2~3배 넘게 팔린대요. 저도 밥해 먹기 귀찮다 싶을 땐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해요. 집으로 주문해서 먹는 도시락 상품도 많아요. 다이어트나 저염식 등 미리 지정한 콘셉트에 맞춰 매일 아침 집으로 배달해주는 제품도 있어요.

요즘은 가구까지 1인 가구의 좁은 주거 공간에서 맞게 진화하고 있어요. 소파로 썼다가 침대로도 쓸 수 있는 멀티형 소파는 옛날에도 나온 제품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유에스비 충전 단자를 달아 ‘최신식’으로 변신한 제품이 요즘 인기래요. 상판 높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멀티 테이블도 인기죠. 테이블로도, 식탁으로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니 가구를 많이 들일 수 없는 혼삶족에게 적합하죠. 가구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가족을 위한 식탁, 대형 소파, 장롱 등이 많이 판매됐는데 최근에는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한 멀티형 가구 판매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1인 가구도 행복해요

청소 신청 앱 ‘와홈’.  구글플레이 갈무리
청소 신청 앱 ‘와홈’. 구글플레이 갈무리
스마트폰이야말로 우리 혼삶족에게 가장 쓸모있는, 내밀한 친구라는 건 다들 공감하시죠. 1인 가구를 겨냥한 스마트폰 앱만 잘 활용해도 혼삶의 질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어요. 우선 맛집을 찾아주는 ‘얍플레이스’는 식당을 검색하면서 ‘혼자’ 옵션을 설정할 수 있도록 했어요. 혼밥이나 혼술 식당 검색이 가능하도록 한 거죠. 자취인의 영원한 숙제인 청소를 해결해주는 앱도 있어요. ‘와홈’은 시간당 9900원에 청소 서비스를 제공해줘 인기가 많아요.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면 전문 헬퍼가 직접 방문해 집을 청소해주는 거죠. 기본적인 청소에 옵션으로 냉장고나 창틀 청소까지 추가할 수 있어요. 세탁소 가는 일을 도와주는 앱도 있어요. ‘우리동네세탁소’나 ‘세탁특공대’는 집 주변의 세탁소를 찾아 수거, 세탁, 배달까지 해줘요. 혼자 사는 여성을 고려해 세탁물을 수거할 때 직접 만나지 않고 문 앞 또는 택배 보관함에서 가져가는 옵션도 있고요.

1인 가구를 위한 상품이 이렇게 많으니, 혼삶 뭐 살 만해요. 걱정거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죠. 서울시가 지난해 1인 가구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걸 보면, 1인 가구 10명 가운데 6명이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어요. 건강관리를 잘 못해서인지 26.2%는 건강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했고요. 노후생활이 걱정이라는 응답도 25.8%에 달했어요.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낸 보고서도 같은 내용을 지적했죠. “재무설계관리, 건강관리, 생활도우미 등 1인 가구 관련 산업의 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다”고요.

하지만 혼삶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에요. 서울시 조사를 보면 1인 가구의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64%였어요. 혼자 사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지키고 싶다는 의미도 있겠죠? 이제 혼삶족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고 외치는 캔디가 아니에요. 트렌드를 넘어선 사회의 중심 구성원이라고요. 브라보 혼삶!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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