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커버스토리_대중문화의 중심, 힙합의 매력 속으로
프로듀서 ‘피터 유’가 들려주는, 힙합 음악 만드는 법
랩은 래퍼, 비트는 프로듀서가 맡아
비트 4마디 연결한 루프 완성되면
랩 가사 쓰고 멜로디 넣기도
1년 정도 연습하면 프로듀싱 가능
프로듀서 ‘피터 유’가 들려주는, 힙합 음악 만드는 법
랩은 래퍼, 비트는 프로듀서가 맡아
비트 4마디 연결한 루프 완성되면
랩 가사 쓰고 멜로디 넣기도
1년 정도 연습하면 프로듀싱 가능
힙합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직접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가의 장비를 가진 스튜디오가 있어야 녹음과 음원 제작이 가능했던 과거와 다르게 최근엔 홈레코딩이 대세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전문가용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과 비슷한 음질의 음원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힙합 음악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많이 나와 있다. 일반인의 접근이 그만큼 쉬워졌다.
23일, 프로듀서 ‘피터 유’(29·사진)의 서울 망원동 작업실을 찾아가 힙합 음악을 만드는 ‘한 수’를 청했다. 그는 <쇼미더머니 3>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인상을 남긴 래퍼 진준왕의 데뷔 앨범을 제작했다.
작은 작업실엔 방음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힙합 음악 제작에 많이 쓰이는 제네렉 모니터링 스피커, 작곡할 때 쓰는 롤랜드 키보드도 눈에 띄었다. 그는 이곳에서 녹음 작업까지 한다. 전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 것이 좋기야 하겠지만, 언더 뮤지션들은 대부분 유씨처럼 프로듀서의 작업실에서 녹음을 한다. 이 작은 방의 모든 것이 홈레코딩 시스템인 셈이다. 월 임대료는 40만원. 얼마 전까지 미아동의 월 20만원짜리 작업실을 쓰다, 음악의 메카 ‘홍대’에 입성했다. “아무래도 주변에 음악인들이 많아 정보 교류가 원활하다”고 했다.
힙합 음악을 만들 때 중심이 되는 것은 랩과 비트다. 보통 랩의 가사는 래퍼가 쓰고, 프로듀서는 비트를 만드는 ‘비트 메이커’의 역할을 한다. 래퍼가 직접 비트를 만들거나 프로듀서가 랩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구분해서 작업을 한다. ‘전문 분야’에 맞게 제일 잘하는 걸 나눠서 하는 거다. 작곡가는 작곡을, 작사가는 작사를 주로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프로듀서가 4마디 정도의 비트를 만드는 것으로 곡 작업이 시작된다. 이 4마디의 비트를 ‘루프’라고 부르는데 컴퓨터로 만들 수 있다. ‘에이블톤 라이브’라는 프로그램이 주로 쓰인다.
유씨가 작은 피아노 모양의 ‘미디 컨트롤러’ 건반을 몇 차례 누르자, 금세 비트가 만들어졌다. 미디 컨트롤러는 컴퓨터와 연결해 다양한 소리를 입력할 수 있다. 그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드럼 소리가 나면서 컴퓨터에 비트가 입력됐다. 어떤 버튼을 누르면 스네어 드럼 소리가 났고, 다른 버튼에선 하이햇 심벌즈의 소리가 났다. 드럼이나 심벌즈가 없어도 미디 컨트롤러만 있으면 어깨가 들썩이는 비트는 만들 수 있다.
꼭 정확하게 박자를 맞춰서 입력할 필요도 없다. 나중에 박자를 보정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완성된 비트를 갖고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하는 등 수정 작업을 한다. 기본 비트 위에 샘플링(기존 음원에서 일부분을 따서 쓰는 것)된 다양한 소리를 추가하고, 온라인상에 무료로 배포되는 비트들을 조합하기도 한다. 이미 다양한 비트가 무료배포되고 있는 ‘비트의 홍수’ 속에서 눈에 띄는 ‘신박한’ 루프를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다.
루프가 완성됐다면, 래퍼가 이를 듣고 가사를 쓰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프로듀서가 적합한 래퍼를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미리 작업할 래퍼를 염두에 두고 루프를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래퍼가 먼저 랩을 만든 뒤 프로듀서를 찾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흔치 않을뿐더러 대부분 프로듀서의 손을 거쳐 수정을 한 뒤 음악이 제작된다. 랩의 중심은 래퍼지만, 음악 제작의 중심은 프로듀서다. 루프가 래퍼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엔 루프의 수정을 요구할 때도 있다. 거꾸로 프로듀서가 곡 분위기에 맞춰 랩 가사의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곡 하나를 만들 때도 역할을 분담하기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하진 않는다. 이렇게 프로듀서와 래퍼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므로 서로의 궁합도 중요하다. 작업을 진행하다가 두 사람이 서로 안 맞으면 아예 곡 자체를 엎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래퍼와 프로듀서는 러닝메이트 관계다. 좋은 러닝메이트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다. 여러 차례 작업해야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온다. 늘 결과가 좋은 건 아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중간에 멜로디가 있는 노래가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될 땐, 추가로 작곡을 한다. 사전에 미리 작곡을 할 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녹음을 하면서 ‘중간에 멜로디가 있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추가로 만든다고 한다.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면 3~4일 만에도 음원 제작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프로듀서가 녹음과 믹싱(녹음된 소리를 섞는 과정), 마스터링(출시 직전 최종적으로 소리를 만지는 과정)까지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유씨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출발해도 1주일이면 가능하다. 최근 홈레코딩의 수준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완성된 음원은 음원 유통사를 통해 서비스된다. 꼭 대형 음원 유통사의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된다. 최근엔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에스엔에스(SNS)도 큰 몫을 한다.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음원 공유 사이트도 힙합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기다. 뮤지션들이 만든 음원을 올리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프로듀서의 기본인 각종 장비 조작법은 3개월 정도면 익힐 수 있다고 한다. 음악에 끼가 있는 사람의 경우엔 1년 정도 꾸준히 연습하면 어느 정도 프로듀싱을 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 성공을 꿈꾸는 힙합 뮤지션 지망생들에게 해줄 말은 없을까. 유씨는 “이 바닥이 너무 경쟁이 심하고 힘들다. 우스갯소리로, 래퍼로 성공하는 것보다 서울대 가는 게 쉽다는 얘기도 한다. 생각하는 것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홈레코딩이라 해도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미디 장비나 컴퓨터, 모니터링 스피커 구입 등에도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그러니 나만의 힙합 음악은 만들고 싶지만 전문적인 음악인에 도전할 게 아니라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힙합패드’는 미디 컨트롤러 없이 비트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앱이다. ‘오토랩’은 평범한 문장을 말하기만 해도 비트를 깔아줘 그럴듯한 랩으로 만들어준다. 다운로드가 1000만건에 달한다니 랩의 인기를 실감케 해준다. 물론 프로 뮤지션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사용을 지양해야 할 앱이다.
글·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힙합 프로듀서 피터 유. 피터 유 제공
문장을 녹음하면 랩으로 바꿔주는 ‘오토랩’. 구글플레이 갈무리
턴테이블 없이 디제잉이 가능한 디제이 마우스. 옥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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