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공덕동 상가 입구에 세워진 피부관리실 홍보물.
김미영. 내 또래엔 이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다. 적어도 40년 전 ‘미영’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수지’, ‘나현’, ‘채현’, ‘유라’만큼이나 인기 있었다는 방증이다. 어릴 적 한 반에 두세 명은 ‘미영’이 있었다. 당시 나는 키가 작아 ‘작은 미영’이라 불릴 때가 더 많았다. 페이스북에 ‘김미영’을 검색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뜬다. 언론계에도 ‘김미영 기자’가 여럿이다. 그뿐인가. 스팸문자와 불법대출 하면 ‘김미영 팀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심지어 피부관리실 광고 문구에도 ‘김미영 팀장’이 등장한다. 나만 보면 “3천만원만 대출해 줘~”, “요즘 실적은 어때?” 농으로 친근감을 표시하는 친구와 선배도 종종 있다.
뭐, 까짓것! 이쯤은 운명이려니, 견딜 수 있다. 비극은 같은 신문사에 ‘김미영 기자’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이다. 그 기자의 이메일은
instyle@hani.co.kr. 아이디만큼이나 밝고 유행에도 민감한, 씩씩한 후배다. 문제는 그녀에게 가야 할 보도자료가 내 이메일
kimmy@hani.co.kr로 오거나 반대로 내게 와야 할 보도자료가 그녀에게 배달된다는 데 있다. 몇 년 전 그녀가 ESC팀에서 맡았던 스타일 분야를 내가 지금 담당하고 있기에 이런 현상은 최근 더욱 심해졌다.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잘못 오는 경우는 다반사다. “기사, 잘 보고 있다”는 취재원에게 “고맙습니다”라 답하고 얘기하다, 그 기사가 내 기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의 자괴감이란.
심각하게 필명을 고민했다. 내 이름으로 후배 미영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불편과 혼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송구스럽고, 미안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인간 김미영’과 ‘기자 김미영’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180도 다른 사람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부모의 성을 함께 써볼까? 전김미영? 김전미영? 둘 다 어색했다. 이름에서 한 글자씩 빼 김영? 김미? 이것도 영 아니올시다. 야노 시호를 좋아해서 ‘장시호’로 개명한 ‘장유진’처럼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넣어 ‘김유’로? 흠. 공유씨, 미안합니다. 어디, 괜찮은 필명 정말 없을까?
글·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