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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외국인, 한식 만들며 ‘진짜 한국여행’

등록 2017-01-04 19:41수정 2017-01-04 21:05

[ESC] 커버스토리
체험여행 프로그램 ‘제리코 레서피’ 참가한 여행자들
호스트(집주인) 백지혜씨의 요리 설명을 듣고 있는 게스트(손님)들. 사진 왼쪽부터 샬럿 리, 루청, 미요시 미카, 다카하시 아이, 백지혜씨.
호스트(집주인) 백지혜씨의 요리 설명을 듣고 있는 게스트(손님)들. 사진 왼쪽부터 샬럿 리, 루청, 미요시 미카, 다카하시 아이, 백지혜씨.

“초행일 텐데 걱정이네요. 주소와 지도를 메일로 자세히 보내긴 했는데….” 지난달 20일 낮 12시, 지하철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앞에 선 백지혜(41)씨가 초조한 눈길로 출구 쪽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백씨가 기다리는 건 그가 준비한 요리 체험여행 ‘제리코 레서피’의 참가자들이다.

그는 숙박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가 지난해 11월 세계 12개 도시에서 시작한 ‘체험여행’의 호스트다. 체험여행은 숙박이 아니라 요리, 야경 촬영, ‘케이(K)뷰티’ 체험처럼 호스트가 직접 정하고 구성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서비스다. 백씨가 준비한 제리코 레서피는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 요리 강좌다. 2014년부터 2년간 서울 연남동에서 ‘제리코 바 앤 키친’을 운영했던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서교동으로 둥지를 옮겨 요리 강좌 ‘제리코 레서피’를 진행하고 있다. 2시간 반가량 이어지는 강좌에서 참가자들은 음식을 통해 교감하고, 다양한 문화를 배운다. 백씨는 이렇게 “나만의 요리를 누군가와 나누는 게 좋아”, 외국인 여행객들에게도 체험여행 서비스를 해보자는 에어비앤비 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날 백씨가 기다린 이들은 그가 에어비앤비에 등록한 이 프로그램을 보고 직접 신청한 한국 여행자들로, 일본인 미요시 미카(32)와 다카하시 아이(32),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중국인 루청(24),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학 중인 대만인 샬럿 리(20) 등 4명이었다.

백씨의 설명을 듣고 식재료를 손질하는 샬럿 리.
백씨의 설명을 듣고 식재료를 손질하는 샬럿 리.

30분쯤 지나자 ‘게스트’(손님)들이 한꺼번에 도착했다. 백씨의 안내에 따라 이들은 서울의 숨겨진 골목길 정취를 감상하며 백씨의 집까지 걸었다. 1970년대풍의 철문과 17㎡(5평) 남짓한 마당,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은 66㎡(20평)의 작고 아담한 빈티지풍 집이 나타났다. “50년도 넘은 오래된 집입니다. 지하에는 방공호도 있어요.” 게스트들이 “오” 함성을 질렀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자 백씨가 직접 바느질한 거실 깔개, 벽에 걸린 프랑스풍의 조리도구들, 간편하게 박음질한 얇은 문짝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스트의 취향을 물씬 느끼기에 충분했다. 백씨는 “낯선 이들끼리 밥을 먹는 일은 불편할 수도 있죠.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공간 구성으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 문제를 해결했어요”라고 말했다. 게스트들은 집을 둘러보며 ‘여행하기’ 바빴다.

요리 강좌 운영하는 백지혜씨가
‘에어비앤비’에 등록한 프로그램
두시간반 요리하며 ‘식문화 체험’
“기품 넘치는 한식…한국문화 더 알고파”

백씨가 만찬을 즐기는 식탁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정성스럽게 영문으로 작성한 조리법을 나눠주고 준비한 한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 요리는 다국적, 무국적이 콘셉트입니다. 오늘 요리는 모던 한식이죠. 발효 과정을 거친 건강한 음식이에요.” ‘매운 돼지고기 볶음’, ‘콩으로 만든 드레싱을 뿌린 어린 채소 샐러드’, ‘구운 가지 초무침’, 굴밥, 된장찌개 등이 백씨가 준비한 메뉴였다. 게스트들이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에 처음 왔다는 미요시는 “프랑스에서 요리 배웠어요. 먹는 일이 제일 즐거워서 기대가 커요”라고 했다. 벌써 두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리는 한식을 제대로 배우겠다는 각오가 단단했다.

음식이 완성되자 게스트와 호스트가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음식이 완성되자 게스트와 호스트가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아 유 레디!”(준비됐나요!) 백씨가 외쳤다. 주방에서 신나는 요리 강습이 펼쳐졌다. “직접 해봐야 기억에 오래 남아요”라며 백씨가 루에게 칼을 건넸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삐뚤빼뚤 마늘을 자르는 루에게 백씨의 조언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칼등이나 칼날이 아니라 평평한 칼면으로 마늘을 눌러 으깨죠.” 리는 파를 듬성듬성 느리게 잘랐다. “노, 노!”(아니, 그렇게 말고요) 백씨가 칼을 잡았다. 1초도 안 돼 파를 손톱의 3분의 1 크기로 자르는 신공을 펼치자 리가 “소 패스트!”(정말 빨라요!)라며 웃었다. 백씨가 쌀을 씻어 작은 솥에 넣자 게스트들은 발꿈치를 들고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쳐다봤다. “쌀뜨물로 얼굴을 씻으면 고와진다는 말이 있어요.” 백씨가 말을 꺼내자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이 물로 얼굴을 씻는다고요? 한국 여성들의 피부가 고운 데는 이유가 있군요.”(다카하시) 주방에 퍼지는 웃음 사이로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백씨는 간단한 요리 비법도 알려줬다. 그가 큼직한 가지를 삼등분해 감자 가루가 든 봉지에 넣고 흔들었다. “이렇게 하면 만들기가 편해요”라고 설명했다. 봉지에서 꺼낸 가지는 부침가루에 다시 굴린 뒤 올리브유가 가득 든 프라이팬에 투하했다. 살짝 튀긴 가지는 여러가지 채소, 양념과 함께 버무려 식탁에 나간다. “루, 한번 해보세요.” 루는 여전히 어색한 표정이었다. 미요시와 다카하시가 응원했다. “화이또!” 인간은 본래 선하고, 타인에게 우호적이며 적대감을 갖지 않는 개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현장이었다. 이미 9만원을 선결제한 게스트들은 돈이 아깝지 않은 경험이라고 했다.

(왼쪽)매운 돼지고기 볶음, (가운데)구운 가지 초무침, 백씨와 게스트들이 함께 만든 된장찌개.
(왼쪽)매운 돼지고기 볶음, (가운데)구운 가지 초무침, 백씨와 게스트들이 함께 만든 된장찌개.
드디어 만찬이 시작되었다. 10여분간 “음!” 하는 외마디소리 말고는 침묵만 흘렀다. 누군가 “원더풀!” 하고 외쳤다. 리가 말했다. “엄마가 한국 드라마의 열성팬이라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음식은 문화의 한 부분인데, 제가 오늘 경험한 한식은 기품이 넘치는군요.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로 정말 맛있어요. 직접 체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이게 바로 ‘진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콘텐츠가 제 전공인데, 학교로 돌아가면 한국문화를 더 연구해보고 싶어요.” 밤에 갈 만한 맥줏집을 소개해 달라, 백반이 뭐냐 같은 한국문화와 관련한 수다가 이어졌다. 국적은 달라도, 체험여행을 매개로 한 우정이 깊어가는 밤이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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