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연락처·SNS 등 정리하며 ‘새출발’ 하기
명절이면 싱글족은 괴롭다. “아직도 혼자니?” “결혼은 언제 할래?” 오지랖이 넓은 친척들의 촌스럽고 과도한 관심에 일일이 답변하는 일도 귀찮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한테 치이는데 명절까지? 동굴이 있어서 도망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유우정(가명·35)씨는 며칠 전 가족과 친척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이번 설은 나 혼자 있게 제발 내버려두세요. 저 결혼시키고 싶으면!” 지난 10년 명절마다 유씨도 어지간히 시달렸더랬다. 참다못해 이번엔 ‘건들지 말라’고 선수를 친 것이다. 단지 불쾌한 오지랖에서 벗어나려는 게 아니다. 오롯이 홀로 연휴를 보내며 ‘관계 디톡스’를 하는 게 그의 계획이다. 말 그대로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내 생각만큼 다 친밀한 것은 아니고, 내 바람만큼 모든 이들이 날 좋아하는 것도 아니죠. 상대한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 서운해한 적도, 반대로 오해받은 적도 있고요. 폭넓은 인간관계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연애도 잘 안 되고.” 지난해 <버리는 즐거움>(야마시타 히데코 지음, 생각정거장 펴냄)을 읽고 일본에서 유행하는 ‘단샤리’(斷捨離)를 접한 것이 계기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단순한 삶’을 뜻하는 단샤리는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집착을 버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관계 디톡스라 하니 거창할 것 같지만, 실천법은 간단하다. 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명함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관계를 지속해야 할 사이라면 이미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남아 있을 게 분명하다. 다음으로는 바로 이 연락처 정리. 유씨의 휴대폰엔 1천여명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다. 같은 이름으로 2~3개가 저장돼 있기도 하고, 전화번호 없이 에스엔에스 친구여서 자동으로 정보가 저장된 사례도 있다. 유씨는 이번 연휴 동안 1년 이상 연락하지 않은 이들의 전화번호를 삭제할 계획이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 친구 관계도 정리할 참이다. 게시물에 ‘좋아요’ 한번 안 누르는 사람, 동의할 수 없는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이 정리 대상이다.
평소 디지털기기에 파묻혀 살았다고? 그렇다면 연휴 동안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 사용을 전면 중단하는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해 보자. 명상이나 사색, 독서 등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며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관계 디톡스도 실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관계 디톡스는 ‘남이 아닌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를 사랑하고, 나한테 자신감이 생기면 인간관계에서 받는 상처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야 후회 없는 인간관계도 가능해진다. 이참에 과식, 음주, 수면 부족 등으로 쌓인 몸의 독소를 배출하는 ‘몸 디톡스’도 같이 해보면 어떨까? 절식·단식, 금주 등을 통해 몸의 변화를 살피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니.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평소 과다한 업무와 인간관계 때문에 지치고 힘든 이들이라면 이번 설 연휴에 ‘관계 디톡스’를 시도해보길 권한다. 말 그대로 ‘인간관계 정리’인데, 실천법은 간단하다. 서랍 속 명함과 휴대전화 속 전화번호를 과감하게 지우는 것이 그 시작이다. 픽사베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