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이 만난 완소 피플
한국 대표 좌완투수
130㎞대 느린 구속으로 4년간 55승
넥센 서건창이 가장 어려운 상대
한국 대표 좌완투수
130㎞대 느린 구속으로 4년간 55승
넥센 서건창이 가장 어려운 상대
“제 배가 좀 나왔죠?” 활짝 미소를 머금은 채 유희관(31)이 먼저 말을 건넸다. 텔레비전에서 볼 때만큼이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상이 선하다. 김성일이 말했다. “내가 희관이를 왜 좋아하는 줄 알아요? 착하고 똑똑해서야. 하지만 순진함은 없어.” “제가 형님 앞에서 연기를 잘했네요? 하핫.” 서로 건네는 농담이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친밀하단 뜻일 게다. 둘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포츠캐스터인 임용수씨 소개로 인연을 맺은 뒤 ‘유쾌함’이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지금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김성일(이하 김) 희관이 제대 직후에 처음 만났지. 그땐 잘 못나갔어. 지금이야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투수지만. 내가 키운 것마냥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니까.
유희관(이하 유) 형이랑 있으면 재밌어요. 박학다식하고. 제가 ‘김이버’(김성일+네이버 검색)라고 부를 정도니까. 패션과 야구 외에 그 어떤 얘기를 해도 코드가 맞아요. 오랜만에 만나도 안 어색해요. 시간 가는 줄도 잘 모르겠고.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인 유희관은 요즘 ‘핫’한 투수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55승을 거뒀다. ‘느림의 미학’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로도 꼽힌다. 투수의 생명이 스피드가 아니라 제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150㎞(시속) 안팎이라면 그의 구속은 130㎞대에 불과하다.
김 얼마 전 배명고와 서울고 야구 경기를 봤는데, 곽빈과 강백호 선수 직구가 155㎞까지 나오더라. 반면 넌 20㎞나 스피드가 느리잖아. 그런데도 공이 강하게 포수에게 꽂힌다는 느낌이 있어.
유 몇몇 선수들도 그렇게 말해주더라고요. 스피드가 안 좋지만, 볼끝이 좋아 체감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고.
김 그동안 느린 공 때문에 마음고생 좀 했지?
유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 스피드 때문에 고교 졸업하고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하는 좌절을 맛봤고, 대학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느린 스피드가 늘 따라다녔으니까. 대학 졸업 후 프로밖에 갈 곳이 없는데, 선택을 못 받으면 어쩌나… 절실함도 맛봤고. 수없이 좌절도 하고.
유희관은 2009년 두산 2차 6라운드 42순위로 두산에 입단했다. 당시 연봉은 2000만원. 이후 2000년 2500만원, 군대를 다녀온 뒤인 2013년에도 2600만원이라는 최저 연봉을 받았다. 2014년 1억원으로 연봉이 오른 뒤 2015년 2억, 2016년 4억에 이어 올해 연봉이 5억원을 기록했다.
김 매년 100% 이상의 연봉 인상률, 대단해!
유 (쑥스러워하며) 연봉이 전부는 아니지만, 선수의 실력을 평가하는 잣대죠. 구단이 잘 봐줘서 성적 이상으로 연봉을 많이 올려준 것 같아요.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야죠.
김 좌절을 이겨낸 원동력은?
유 상무(군대)에서의 경험이 컸어요.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죠. 오롯이 훈련만 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고. 스피드에 대한 미련 버리고, 제 강점인 제구력에 초점을 맞춰 훈련한 시기죠.
김 ‘느리지만 내 공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 덕분이네. 배영수(한화 이글스)도 너 같은 경우잖아. 전성기 시절 150㎞대 구속을 부상 이후 버렸지만 지금 더 잘나가잖아.
유 야구선수면 누구나 슬럼프를 겪어요. 나이 먹을수록 실력은 떨어지는데 그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부상당하기도 하고. 전 그냥 그런 변화와 약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한 거죠.
김 과거 OB베어스 장호연 선수가 너랑 비슷했어. 프로야구 최초로 노히트 노런을 한 선수지. 공은 안 빨랐는데 제구력이 좋고, 포수에게 공을 정확하게 집어넣었지. 너처럼 장 선수도 두뇌 싸움을 참 잘했어.
유 하하. 너무 칭찬만 하는 거 아니심? 문패 바꿔요. ‘김성일의 칭찬합시다’로.
김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욕먹는다니까.
유희관은 예의가 바르다. 누구에게나 90도로 먼저 인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구단 직원들 사이에서도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선수”로 통한다. 팬을 대하는 태도도 남다르다. 뇌병변장애 보디빌더 1호인 김민규씨가 시구를 하는 날, 직접 시구 지도를 하고 사비를 털어 고급 휠체어까지 선물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 인사를 잘하는 건 설정이야, 몸에 밴 거야?
유 운동을 떠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인사 교육만큼은 철저히 받았지. 워낙 개구쟁이여서 더 그랬어요. 지금은 그게 습관이 돼서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먼저 인사를 하는 편이죠.
김 ‘유희관 나야나’는 뭐야? 연관 검색어도 있던데?
유 ‘2016 카스포인트 어워즈’의 홍보대사 당시 춘 ‘프로듀스101’ <나야나> 춤 때문에….
김 봤어. 엄청 귀엽더라. 춤도 잘 추고. 확실히 끼가 있다니까. ‘유희관 결혼’도 연관 검색어로 뜨던데?
유 진짜? 우리 나이로 32살, 나이가 있으니까요. 또래 선수들 대부분 결혼을 해서, 하고 싶긴 하죠. 그렇다고 결혼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여자친구도 없는데, 당장이라도 좋은 사람 만난다면 모를까.
김 검색어 ‘유희관 뒷태’는 뭐야?
유 엉덩이가 포동포동해서? 귀여워서? 내 체형이 운동선수 몸매와 살짝(?) 다르잖아. 키는 작고, 배는 나오고. 균형감도 없고. 운동선수 몸매에 대한 환상을 확~ 깨버리긴 했지. 내 별명 바나나우유야. 올라프도 있고.
김 신기하다. 그런데도 몸이 꽤 유연하잖아. 부상도 한 번도 없었지?
유 어깨나 팔꿈치 수술 받은 적 없죠.
김 부상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자기관리를 잘했다는 뜻이야. 부상 때문에 한 방에 훅 간 선수들이 얼마나 많아?
유희관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좌완 선발투수다. 그럼에도 낮은 구속 탓에 그의 실력을 향한 검증의 잣대는 엄격한 편이다. 4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해 여론이 잠잠해지고 있으나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는?
유 넥센 서건창 선수. 어느 곳으로 던지든 무조건 안타야. 거의 7~8할? 심리적 요인 때문인 것 같아요. 서 선수를 만나면 잘 던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공이 잘 안 들어가기도 하고. 반면 서건창 선수는 더 자신있게 배트를 휘두르고. 상대적인 거지.
김 오른손 거포인 최정이나 왼손 거포인 최형우 선수는 어때?
유 최정 선수는 반반이고. 오히려 최형우 선수한테는 안타를 잘 안 맞아. 상대적이라니까.
김 지난 4년간 성적이 좋았잖아? 근데 국가대표에 선발된 적은 한 번도 없더라?
유 구속 때문이지. 나야 늘 국대(국가대표) 소집 때면 찬반 논란의 주인공이었죠. 국내 선수들이야 워낙 경험이 많지만, 외국 선수들에게는 구속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근데 신기한 건 외국인 선수와의 전적이 더 좋다는 거.
김 억울하지 않았어?
유 다른 부족한 게 있으니까 안 뽑힌 거지.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김 유희관에게 국가대표는 뭐야?
유 태극마크는 꿈이죠. 가문의 영광이고. 언젠가 꼭 국가대표로 뛸 기회가 있었으면 해. 국제대회에서는 어떻게 던질까 궁금해. 하하.
김 에프에이(FA·프로야구의 자유계약선수제도)는 언제?
유 앞으로 3년 남았죠. 대학 4년, 군대 2년. 남들보다 프로 데뷔가 최소 6년은 늦은 셈이니까.
김 좀 멀었네? 그건 그렇고 에프에이 몸값이 거품이란 비난은 어떻게 생각해?
유 돈 얘기라 민감할 수 있는데,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게 몸값이니까 뭐라 하기가….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기도 하고.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팬 서비스도 잘하면 그런 논란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김 유희관은 팬 서비스 1등 선수 아니냐? 팬 서비스 왕자잖아. ‘유희왕’ 별명처럼.
유 어? ‘유희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인데. 글러브에 새길 정도로. ‘왕’자가 들어가 최고란 느낌을 주니까. 빠른 공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파이어볼러’라는 별명도 있는 거 모르시죠? 다 저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니까 고맙죠.
김 안티는 없어?
유 호불호가 있어요. 안티는 많이 줄었죠.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니까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김 야구 안 할 때 주로 뭐 해?
유 영화 보기. 개봉 영화는 다 챙겨 봐요. 장르를 꼽으라면 로맨틱 코미디.
김 절친 있어?
유 김현수(메이저리그 야수)랑 친했죠. 지금은 떨어져 있어서. 한남동 패션 국가대표 김성일 선수랑 친해요. 하하.
인터뷰는 7월21일 잠실구장 내 두산구단에서 진행됐다. 다음날 그는 한화전 선발투수로 등판할 예정이었다.
김 징크스 있어?
유 시합날 입는 유니폼이 따로 있어요. 팬티, 양말, 모자까지. 내일 시합 왠지 잘될 것 같아요.
다행히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유희관이 선발로 나선 22일 경기에서 두산은 한화를 17-1로 대파하며 3연승을 기록했다. 유희관은 제구를 바탕으로 호투하며 7이닝 7피안타 1실점으로 시즌 7승에 성공했다.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평균 구속이 130㎞(시속)대에 불과한 두산의 에이스 유희관은 투수의 생명력이 속도가 아닌 제구력이라는 것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유희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유희관의 사인볼.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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