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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지리산, 청춘을 만나다

등록 2017-09-07 11:02수정 2017-09-08 17:37

도시 생활에 지친 2030세대 지리산 찾는 이 늘어
천왕봉에서 ‘웨딩 세러머니’하는 이도
‘1박2일 따라하기‘·’미친앤등산‘ 등 등산 카페 부쩍
지리산은 능선이 포개진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강나연 객원기자 제공
지리산은 능선이 포개진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강나연 객원기자 제공
근육통과 산행 사진이 아니었다면 지리산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작 1박3일 지리산 종주였는데도 몇 주간 먼 나라를 떠돌다 온 느낌이랄까. 당신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지긋지긋한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고?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장기여행이나 외국여행은 불가능하다고? 그럴 땐 지리산이 제격이다. 지리산이 당신을 위로할 별천지다. 여기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지리산을 즐기고, 누리고, 사랑한 사람들이 있으니 잠시나마 만나보길 권한다. 어느새 지리산행 버스표를 알아보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힘드셨죠? 얼른 와서 같이 먹어요.” 지난달 26일 저녁, 지리산 세석 산장으로 간신히 ‘골인’하는 순간, 정은겸(32)씨와 김태은(39)씨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산장의 식탁 위에는 고기와 소시지, 마늘이 익어가는 중이었다. 맛깔스러운 갓김치와 무초절임도 보였다. 한라산소주까지 있었다. 체면이고 뭐고 따질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젓가락을 들었다. 내겐 그들과 공유할 식량이 라면과 깻잎뿐이었지만, 그런 걸 따지기엔 본능적인 욕구가 앞섰다. 두 사람은 음식을 권하며 말했다. “편하게 드세요. ‘산 친구’고, 비슷한 또래잖아요.”

종주 코스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퍼지는’ 벽소령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다. 그때도 두 사람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지친 기색도 없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2030(이십대와 삼십대)’ 등산동호회에서 인연을 맺은 커플로, 정씨에게는 지리산 종주가 생소한 경험도 아니었다. “잘 살고 있나 점검해보려고 1년에 한 번씩 종주를 해요. 남자친구랑 같이 등반한 건 처음이지만요.” 첫 술잔을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들 커플의 구체적인 사연을 들었다. “내년 2월에 결혼하거든요. 결혼하기 전에 계절마다 빛깔과 풍경이 달라지는 산들을 두루 다니는 중이에요.”

그들은 이미 올해 1월1일 태백산 정상을 밟았고, 5월에는 설악산 종주를 마쳤다. 가을에는 월출산, 겨울에는 소백산에 오를 예정이다. 말하자면 산으로 맺어진 커플이, 산에서 벌이는 ‘웨딩 세리머니’쯤 되겠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그들의 창의적인 ‘세리머니’ 중 ‘여름 편’에 속한다. “천왕봉에서 간단하게나마 웨딩 촬영을 하려고 베일과 보타이를 가져왔어요.” 예비 신랑인 김씨가 고기를 굽다 말고 말했다. “산을 타다 보면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돼요. 카페에서 조용히 나누는 대화도 좋지만, 산에서 하는 대화가 친밀감을 쌓는 데는 더 좋아요.”

천왕봉에서 ’웨딩 세리머니’를 하는 정은겸(사진 오른쪽)·김태은씨 예비 부부. 정은겸씨 제공
천왕봉에서 ’웨딩 세리머니’를 하는 정은겸(사진 오른쪽)·김태은씨 예비 부부. 정은겸씨 제공
사실, 지리산 종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이 커플을 비롯한 ‘산 친구’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끼봉 구석에서 지친 나머지 잠을 청하던 나에게 귀한 복숭아를 나눠준 ‘한겨레신문 10년 독자’ 부부가 있었고, 나와 보폭을 맞추면서 걸어준 백종천(53) ‘유명산악회’ 대장이 있었고, 바위에 퍼져 있는 나를 보더니 “안색이 안 좋다”며 아스피린을 건네준 여성 산악인도 있었다. ‘산 친구’들의 연령대는 다양했으나, 무엇보다 2030세대가 예상 밖으로 많았다. 그들은 놀라울 만큼 적극적으로 지리산을 즐기고 있었다.

울산에서 온 최송이(27)씨도 그랬다. 최씨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지리산 홍길동’이라고나 할까.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처럼 기나긴 다리로 성큼성큼 산을 타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지리산 종주를 하는 ‘지리산 마니아’였다. 최씨에 따르면 “지리산은 사시사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도시에서는 사람과 환경 때문에 지치잖아요. 반면에 지리산은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곳이에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토끼봉에서 자고 있던 나를 걱정해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완주가 힘들어지니 절대로 퍼지면 안 된다”고 당부하는 최씨에게 지리산 종주를 왜 하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성취감도 성취감이지만, 종주가 단순히 높이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여정이라 좋아요. 산이랑 호흡하는 느낌이 들어요.”

산에서 내려와 현실로 돌아올수록 자꾸만 생각나고 하염없이 그리워질 만큼 지리산 종주가 매력적인 여정임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종주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천왕봉의 일출 보기, 피로를 단박에 씻어줄 한신계곡에서의 물놀이, 지리산 주능선 중 가장 멋진 구간으로 알려진 연하선경길 따라 걷기 등도 큰 즐거움을 준다.

지난달 27일 장터목에서 만난 ‘2030 등산·여행 카페’인 ‘1박2일 따라하기’ 회원들은 천왕봉 일출 보기, 한신계곡 여행 등을 즐겼다. 종주를 하지 않고도 말이다.

대체로 ‘각 잡힌’ 아웃도어 룩보다 스냅백과 반바지 같은 캐주얼 차림을 한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리산의 매력이 뭘까요?”

“예약이 힘든 장터목산장이 예약됐다는 말을 듣는 즉시 가기로 마음먹었다”는 전지혜(31)씨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지리산에 오면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어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어요.” 그 옆에 있던 이나연(26)씨도 말했다. “힘들 때 오면 잡념이 사라져서 좋아요. 개운해져요. 저는 지리산이 좋아요.” 고맙게도, 또 신기하게도, 이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내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바야흐로 종주 코스 중 마지막인 천왕봉만 남겨두고 있을 때였다.

‘1박2일 따라하기’ 외에도 2030세대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산 카페는 많다. ‘산의 품으로’, ‘미친앤등산’, ‘코앞의 정상’, ‘깔딱고개’, ‘하늘마루2030산악회’ 등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2030’ 등산 카페다.

김승규 ‘하늘마루2030산악회’ 회장은 “40~60대가 주를 이루던 등산 동호회가 이제는 20~70대로 연령층이 다양해졌다”며 “과거엔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많았는데 연령층이 다양해지면서 시민의식도 높아지고 ‘엘엔티(LNT. 흔적 남기지 않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올바른 등산문화가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리산/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Jirisan

1967년 12월 한국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 1호.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 남악, 두류산, 방장산으로도 일컬음.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1915.4m의 천왕봉.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3개 도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483.022㎢에 이름. 동식물 1200여종이 서식하는 한반도 생태계의 보고이자 등산 애호가들의 성지.


지리산 반달곰.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지리산 반달곰.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지리산 반달곰 이야기

△ 반달곰은?

본디 이름은 반달가슴곰이다. 몸은 검은색. 가슴에 ‘브이’(V) 자 형의 흰 무늬가 있다. 도토리·다래·산딸기·꿀·밤 등을 즐겨 먹는다. 곤충과 작은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노루·산양 등을 공격하기도 한다. 깊은 산 나무둥치 밑 굴이나 바위굴, 조릿대숲 등에서 겨울잠을 잔다. 2~3월에 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1982년 천연기념물(제329호)로 지정됐다.

△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은 몇 마리?

현재 지리산에 47마리의 반달가슴곰이 방사돼 살고 있다. 러시아에서 들여와 2004년부터 방사를 시작했다. 여기에 본디 살고 있던 야생 곰이 더 있을 수 있다. 국내에서 야생 반달곰이 마지막으로 잡힌 것은 1983년이다. 설악산 마등령에서 밀렵꾼 총을 맞았다. 2000년엔 지리산에서 한 방송사 무인카메라에 반달곰이 촬영되기도 했다.

△ 지리산 주변에서 반달곰 볼 수 있는 곳은?

구례 화엄사 입구 종복원기술원(061-783-9120)의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과 하동 의신마을의 ‘의신 베어빌리지’(055-883-3580) 2곳이다. 종복원기술원에 13마리, 의신마을에 2마리가 있다. 주로 야생 적응에 실패해 돌아온(회수된) 곰, 다친 곰들이 관리를 받고 있다. 종복원기술원 생태학습장에서는 4~11월, 매일(월 휴관) 5차례(10시, 11시, 13시30분, 2시30분, 15시30분) 해설사의 안내로 반달곰 생태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인터넷 예약 및 현장 접수. 회당 50명 제한. 1시간 소요. 무료. 의신 베어빌리지에선 하루 2회(11시, 14시) 운영(월 휴관)한다. 예약 필수. 40분 소요. 회당 30명 제한. 1인 3000원.

△ 산에서 반달곰을 만난다면?

최근 지리산 반달곰이 김천 수도산으로 두 차례나 이동했다가 포획돼 관심을 끌었다. 지리산과 주변 산에서 곰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2014년엔 지리산 벽소령 대피소에서 탐방객들이 실제로 반달곰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곰은 100m를 7~8초에 주파할 정도로 민첩하다고 한다. 곰과 마주칠 경우 행동요령은 이렇다. 멀리서 곰이 다가올 경우엔 호각을 불거나 큰 소리를 내 인간 존재를 알린 뒤, 재빨리 그곳을 벗어난다. 갑자기 곰과 마주쳤을 땐 시선을 피하지 말고 천천히 곰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행동을 크게 하거나 도망치면 곰의 공격을 유발할 수 있다. 가까이에서 공격해올 경우엔 큰 물건이나 도구를 사용해 적극 저항해야 한다. 이미 저항이 어려운 상태라면 머리 등 급소를 보호하는 자세로 엎드려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미리 곰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하고, 2인 이상 동행하되 방울 등을 달아 인기척을 내도록 한다.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의 비박·야영·취사는 매우 위험하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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