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영철은 최근 디제이, 가수, 예능인, 영어강사 등으로 활동 보폭을 넓히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개그맨? 가수? 아님, 디제이(DJ)? 영어강사? 김영철(43)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1999년 <한국방송>(KBS) 14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뒤 <개그콘서트> 원년 멤버로 맹활약했다. 지금은 <제이티비시>(JTBC)의 <아는 형님>에 출연하는 예능인으로 <김영철의 파워에프엠(FM)>(에스비에스)의 디제이로, ‘따르릉’을 부르는 가수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 7월엔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순방에 초대돼 대통령 전용기를 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제가 살면서 이런 기회가 또 올까요? 독일 교민과 함께한 행사 때문에 공군 1호기 전용기 다 타보고 그것도 대통령과 함께”라며 감격스러운 소감을 적기도 했다.
지난 8월28일 오전 서울 청담동의 한 북카페. <김영철의 파워에프엠> 생방송을 마치고 온 김영철이 김성일에게 물었다. “왜 나를 인터뷰하려고 해?” “톱스타잖아.” “하긴 내가 요즘 좀 ‘핫’ 하긴 하지? 그나저나 톱스타인데, 오늘 톱을 안 가져왔네.” “하하하. 넌 정말 뼛속까지 웃기는 애야!”
김영철은 그런 사람이다. 평소에도 입을 쉬지 않는다. 무슨 말이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수다쟁이다. 방송에서보다 일상에서 더 웃기는 개그맨 중 하나다. 김성일은 “10여년 전 (가수) 황보를 통해 “엘피(LP) 틀어주는 막걸리 집에서 처음 만났다”며 “‘하춘화 흉내 내주면 안 돼?’ ‘양희은도?’ 등 무리한 부탁도 기꺼이 들어주며 분위기를 맞춰준 성격 좋고 유쾌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김성일(이하 김) 너는 나랑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아. 박학다식한 거. 단, 나는 얕은 지식에 만족하는 데 반해 넌 뭔가에 꽂히면 박사처럼 깊게 파헤치는 스타일이지. 만능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에 가장 적임자가 김영철. 직업이 몇 개야?
김영철(이하 철) 칭찬인 거지? 근데 개그맨은 다 만능이어야 하지 않아? 하하. 운 좋게 직업이 개그맨에서 라디오 디제이, 예능방송인, 희극인, 방송인, 가수로 늘어난 거지. 얼떨결에 ‘개가수’(개그맨+가수)로 불리고. 그런데 난 그냥 지금도 개그맨 김영철이야.
‘박학다식’하다는 김성일의 칭찬답게 김영철의 가방 속에는 신문들이 빼곡했다. 지난해 10월24일 <김영철의 파워에프엠> 디제이를 맡고 나서부터 신문 5개를 구독 중이다. 보수지와 진보지 각 2개, 영자지 1개다.
철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됐어. 뉴스 외에도 각종 생활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 깊이는 결여될 수 있으나 두루두루 필요한 정보를 청취자들한테 알려줄 수 있어 유익하더라고. 신문 안 읽었다면 ‘적폐청산’이라는 단어도 몰랐을걸?
김 신문을 꼼꼼하게 읽는 편일 것 같은데. 넌 한시도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지 않으니까. 그만큼 준비된 방송인이니까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잡을 수 있었던 거지.
철 한 매체에 금나나 인터뷰 기사가 실렸더라고. ‘왜 그렇게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하냐?’는 물음에 ‘저도 대답을 못 하겠어요’라고 금나나가 답했어. 읽고 난 다음 ‘나는 왜 자기 계발을 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어. 형이 나한테 똑같이 물어볼 것 같았거든.
김 그랬더니?
철 첫째,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결여된 감성이 있을지도 몰라. 하늘과 별을 보고 감수성을 키웠지만 도회적 감수성은 없으니. 둘째, 가난해서. 셋째 부지런한 엄마를 닮아서. 아버지가 어머니께 지어준 별명이 ‘백바쿠(백바퀴) 여사’야. 오지랖도 넓고, 동네 정보에도 밝았지. 깊지는 않지만 박학다식한 호기심,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마음이 편해져. 엄마 성격을 많이 닮은 것 같아.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사진 오른쪽)이 김영철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김영철은 <뻔뻔한 영철영어>를 책을 내고, 대학에서 영어강사로 활약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탁월하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영어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인 <김영철의 펀펀 투데이>(에스비에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진행 중인 <김영철의 파워에프엠>의 한 코너인 ‘김영철,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진미영)는 팟캐스트에서도 인기다.
김 영어 공부, 지금도 꾸준히 하지?
철 영자신문 읽고, 라디오 방송 전 매일 아침 전화영어 20분 하지. 그걸 해야 마음이 편해져. 오타쿠처럼 집에서 텔레비전 보고, 게임하는 성격이 못 돼. 무조건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려. 피겨도 배웠지.
김 평창동계올림픽 시즌에 맞춘 예능을 대비하려고?
철 하하. 그러려면 쇼트트랙을 배웠어야 하지 않아? 2년 전 우연히 모 호텔 아이스링크에서 피겨 타는 분들을 봤는데, 너무 귀엽더라고. 그래서 배웠지. 지금은 초급.
김 계속 배울 거야?
철 초급 다음엔 등급이 1~8급까지 있다고 해서 고민 중이야. 중급, 고급도 아니고, 너무 많잖아?
김 다방면에 도전하는 모습 보기 좋아. 그런 도전이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게끔 도와줄 것도 같아.
철 그래서 내가 안 질리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다행이구나 싶기도 해.
김영철은 가수 홍진영이 작사·작곡한 ‘따르릉’이란 곡으로 지난 5월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김 원래 가수가 꿈이었지? 희열이 대단했겠다. 기분이 어땠어?
철 운이 좋았지. ‘천운 김영철’이라고 합니다.(웃음)
김 엠비시(MBC) <라디오스타> 때문에 성사된 거지? 홍진영이 ‘따르릉’ 노래 다른 가수에게 줬는데 다 거절했다고 하니까, 윤종신이 우리 그거 영철이한테 주자 해서 순식간에. 그거 보고 영철이라면 너무 잘하겠다, 무릎을 쳤어.
철 개그맨으로 한참 인기를 얻을 때 음반을 내고 싶었어. 안 됐지. 이번엔 2주 만에 앨범이 나온 건데, 연금술사가 도와준 거지. 조만간 두 번째 곡이 나올 거 같아. 기대해줘~
( 김영철에겐 원칙이 하나 있다. 일요일은 철저하게 ‘나만의 ㅣㅁ성일시간’을 갖는 것. 도산공원을 산책하거나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전부다. 말은 최소화한다. 그는 서천석의 ‘마음의 에너지 총량법칙’을 믿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능률을 올리는 대신 일요일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주 월요일부터 다시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쌓이기 때문이다.
김 법이 생겨서 한 개의 직업을 택해야 한다. 그러면 개그맨, 가수, 예능인, 디제이, 영어강사…. 이들 중에 뭘 고를 거야?
철 노래도 부르고 싶고, 연극이랑 뮤지컬도 하고 싶어. 나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때가 가장 좋아. <아는 형님>에서 나를 ‘노잼’이라고 몰아가는데, 난 거기서 최선을 다하거든. 하나를 고른다면 다 포기하고 개그맨!
김 디제이, 해보니 어때? 참 매력적인 거 같아.
철 에스비에스 방송국 임원이 그랬대. 내 라디오에선 따뜻함이 묻어난다고. 난 그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해. 내 얘기까지 나누면서 청취자들과 공감대를 넓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거야. 예를 들면 이런 거야. 청취자 중에 애인이 연하여서 결혼 허락을 못 받을까봐 염려했는데, 기우였다는 사연이 있었어. 그때 우리 친누나 얘기를 들려줬지. 20년 전 애숙이 누나가 연하를 사귀었는데, 엄마한테 ‘미친 가시나’ 소리 듣고 헤어졌거든. 지금은 우리 엄마가 ‘그때 시집보낼걸’ 땅을 치고 후회하신다고. 우리 모두 지레 겁먹고 걱정하기보다는 매사 긍정적으로 살자. 내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긍정의 힘 덕분이고.
김 나도 꿈이 라디오 디제이였던 적이 있었어. 음악 좋아하고. <별이 빛나는 밤에>와 <밤을 잊은 그대에게> 애청자였지. 전화 퀴즈에 응모해 기타를 타기도 했지. 듣다 보면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때가 부지기수였어. 네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생방송인데,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해?
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생방’이라 술을 마셔도 9시30분~10시엔 집에 꼭 들어가. 몸 관리 안 한다는 모습 보여주기 싫어. 가끔 (신)동엽이 형 만났을 땐 12시까지 마시기도 하지만. 이런 때는 다음날 꼭 목이 갈라져. 청취자 게시판에 ‘술 드셨나 봐요~’ 댓글이 어김없이 달리지. 귀신같이 안다니까. 원키로 “치얼 업 베이베, 치얼 업 베이베”(트와이스의 노래 ‘치얼업’) 부를 때 안 올라가면 ‘빼박’이지.
김 ‘철업디’(디제이 김영철 애칭). 내가 당신 프로그램 팬이야! 특히 박지선 나오는 코너, 너무 웃겨. 엄마 연기를 어쩜 그렇게 잘하니?
철 그래서 그런가? 라디오 순위가 전체 4등이야. 하하. <김어준의 뉴스공장>, <두시 탈출 컬투쇼>,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다음이야.
김 2주 전, 양희은 선생님 생신이셨지?
철 축하 전화를 드렸어. ‘영철아, 라디오 너무 잘 듣고 있어. 너무 잘하더라. 너 1등 자격 있어’라고, 오히려 담임선생님처럼 나를 칭찬해주시는 거야. 감사하다고 장문의 문자를 드렸지. 원래 양희은 샘이 칭찬에 인색하시거든. 답장이 왔어. 뭐라고 왔는지 알아? ‘너 내 목소리 흉내 낼 땐 내 스타일대로 정확히 해줘. 각주 달지 말고 딱 양희은이라고 생각하게 모사해 달라고.’ (그는 이 말을 양희은 성대모사로 얘기했다.)
김 와우, 대선배한테 폭풍칭찬 받은 거네? 앞으로 디제이 30년은 더 하겠다. 진짜.
철 내 발음이 새지 않는다면!
개그맨 김영철이 재치 넘치는 표정으로 김성일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김영철은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44살이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겼다. 김성일 역시 아직 미혼이다. 자연스럽게 둘의 대화 주제가 결혼으로 이어졌다.
김 부모님이 결혼 얘기 안 하셔? 내 부모님은 마흔 넘으니까 포기하시던데.
철 나도 마찬가지. 지금은 안 해. 어머님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혼을 하셨고 불완전한 결혼생활을 보여준 것에 대해 여전히 미안해하시는 것 같아. 나 역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지만, 큰누나가 결혼해서 잘 사는 것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어. 서른아홉 때인 2013년 1월2일 내 열애 기사가 뜬 적이 있어. 7개월 만났을 때였는데, 기사화된 뒤 여자친구가 너무 싫어하더라고. 잘 안됐지. 그거 알아? 내 열애 기사가 비와 김태희 열애 기사랑 같은 날 떴던 거.(웃음) 소개팅이 안 들어오는 건 아닌데, 지금은 일단 홀딩. 송은이랑 가상결혼 상태인데, 할 수 없잖아.(제이티비시 <님과 함께2-최고의 사랑>에 출연 중이다.) 아무리 예능이라도 진정성은 있어야지. 종영하면 밀린 소개팅 싹 다 할 거야.
김 방송인으로서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어?
철 영화? 드라마에 출연했던 것처럼 해봤자 주인공 친구 역할이겠지만. 영화는 아직 안 찍어봐서.
김 자기 계발 측면에서 배우고 싶은 건?
철 항공 조종! 몇 해 전 에스비에스 <잘 먹고 잘 사는 법> 출연 당시 경비행기를 타고 마라도를 한 바퀴 둘러볼 기회가 있었거든. 매력적이고 멋져 보였어. 호주(오스트레일리아)의 조종학교 출신 조종사께서 용기를 주시기도 했고. 쉰이 넘어도 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이륙하고 착륙할 때 관제사와 영어로 대화 나누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 카리스마 작렬!
김 항공기에서 기장 방송이 더 멋있는 것처럼?
철 그렇지. 캡틴 스피킹!
갑자기 김영철이 항공기 기장이 된 듯 영어로 안내방송 멘트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역시 성대모사의 달인이자, 뼛속부터 끼가 철철 넘쳐흐르는 개그맨답다.
철 그나저나 인터뷰 나 잘한 거야?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진득하게 한 우물 안 파고 기웃거리며 간만 보는 애 같지 않아? 박학다식을 다르게 표현하면 뿌리 없이 왔다갔다 하는 애, 정체성 없는 애 같잖아.
김 너의 다양한 끼와 재능을 보여줄 수 있어서 더 좋은 거야. 네 스스로도 네 삶이 지겹지 않고, 너를 보는 사람들도 너를 지겨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신하는 모습에 지금처럼 기꺼이 박수를 보내줄 거야.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