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출근하면서 좌석을 선택할 수있도록 한 ‘퍼시스’ 광화문센터. 퍼시스 제공
한국인에게 사무실은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 1인당 노동시간은 세계 2위다. 그만큼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사무실은 개인에게 편안한 공간일까? 주변을 둘러보자. 칙칙한 실내 조명, 누런 페인트로 된 벽, 그리고 낡은 책상과 의자. 그게 사무실의 전부다. ‘파티션 벽’이라도 추가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파트 인테리어만큼의 공간 디자인이 적용된 사무실도 흔치 않은 실정이다. 빈 곳은 복도요, 나머진 책상과 의자일 뿐. 이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무실 환경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스마트 오피스’로 표현되는 자율형 사무공간과, 기존 사무실 임대 시장을 흔들고 있는 공유 오피스가 그것이다.
사무용 가구 회사인 퍼시스의 광화문센터는 조금 독특하게 설계됐다. 스마트 오피스라 표현되는 자율형 사무공간을 구축한 것이다. 애초 스마트 오피스라고 하면, 정보기술(IT)이 접목된 가구와 제품이 들어찬 사무실을 말했다. 하지만 최근엔 의미가 확장돼, 자유자재로 사무실의 용도와 구조를 변경할 수 있고, 직원이 원하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자율성 확대에 초점을 둔 곳을 말한다. 말 그대로 ‘똑똑한’ 사무실이다. 물론 유에스비(USB)나 스마트폰 무선 충전, 자동 높낮이 조절 기능이 있는 책상은 기본이다.
직원이 출근하면서 좌석을 선택할 수있도록 한 ‘퍼시스’ 광화문센터. 퍼시스 제공
직원이 업무환경 선택
애초 광화문센터는 사무가구 구매자들에게 상품 견본을 보여주는 쇼룸으로 기획됐지만, 한쪽엔 직원들이 일을 하는 사무공간이 있다. 본사가 있는 서울 송파구 오금동이 시내 중심가에서 먼 이유로, 일부 영업사원들이 이 광화문센터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출근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선택하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자율형 좌석제를 도입해, 앉고 싶은 자리를 자신이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 소지품은 곳곳에 배치된 사물함에 보관하면 된다. 자율형 좌석제는 일부 기업이 이미 도입한 상태지만, 이곳의 차별점은 자율형 좌석제가 가진 단점을 보완한, 각기 다른 콘셉트의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는 것이다.
자율형 좌석제의 가장 큰 단점은,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업무집중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단점 때문에 광화문센터는 업무집중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파티션 벽을 조합해 작은 방 안에서 혼자 있는 것처럼 만들기도 하고, 1인용 높낮이 조절 책상을 비치하거나, 아예 도서관처럼 칸막이가 돼 있는 곳을 설치했다. 집중해서 업무를 할 때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퍼시스 광화문센터의 한 직원이 높낮이 책상이 설치된 업무집중 공간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퍼시스 제공
광화문센터 관계자는 지난 26일 기자와 만나 “한동안 소통을 강화할 목적으로, 파티션 벽도 치우고 여럿이 함께 모여 근무하는 오피스 환경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집중력 저하 등 부작용이 나오면서 직원들 스스로 업무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형 오피스가 최근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형 오피스의 핵심은 결국 직원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공간도 이런 환경 변화에 맞춰 변경이 손쉬워야 한다. 커다랗고 무거웠던 예전 가구들도 점점 얇아지고 가벼워지는 추세다. 최근 파티션 벽의 경우 과거보다 얇아지고 가벼워졌다. 언제든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퍼시스에 따르면 최근 가장 판매가 잘되는 제품들도 이동이 편한 무게가 가벼운 제품들이라고 한다.
한편, 사람이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이 사람에 맞춰 변하는 첨단 사무실도 최근 등장했다. 지난해 사무실을 이전해 새로 문을 연 서울 삼성동의 지에스(GS)리테일 동북부본부 사무실이 대표적이다. 지난 27일 직접 방문해보니, 한창 신입사원 면접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범한 기존 사무실과 다른 점이 없었지만 회사 관계자가 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 한쪽에 몰려 있던 벽을 당기자 금세 회의실이 2개로 분리됐다. 본래는 강당 목적의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지만 최대 10개의 회의실로도 만들 수 있다. 미리 천장에 설치된 레일에 따라 벽이 움직이는 ‘무빙월’(움직이는 벽) 시스템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많이 사용된, 좌우로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간이형 칸막이가 아닌 유리로 된 제대로 된 벽을 움직여 사무실을 해체·재조합할 수 있다는 것이 무빙월의 특징이다.
무빙월이 설치된 지에스리테일 서울 동북부본부.(설치 전) 지에스리테일 제공
무빙월이 설치된 지에스리테일 서울 동북부본부.(설치 뒤) 지에스리테일 제공
지에스리테일 관계자는 “외근이 많은 영업 직군이 많이 이용한다. 영업 직군이 회사에 들어오는 그날그날 상황에 맞춰 다양한 사무실로 바꿔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200인실에서 10인실까지 다양한 변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조사해보니, 사무실을 새로 바꾼 뒤 직원들의 90%가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의 모듈형 사무실. 현대카드 제공
나눠 쓰는 게 좋다…공유 오피스
일반 기업에서 자율형 오피스가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면, 스타트업이나 벤처 같은 작은 기업에선 공유 오피스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공유 오피스란, 부동산중개소를 통해 사무실을 임대해 입주 회사가 직접 관리하는 개념이 아닌, 미리 잘 차려진 사무실에 사람만 들어가는 형태다. 임대료가 비싼 미국 뉴욕 등지에서 한 사무실을 여러 기업이 공유하던 문화가 있었는데 이를 사업화한 것이다. 뉴욕 등의 공유 오피스 문화가 2~3년 전부터 우리 기업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월 사용료만 내면 사무실 관리 걱정 없이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며 출퇴근을 할 수 있는데다, 여러 회사가 입점해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네트워크 형성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최근 외국계 회사나 스타트업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최근 공유 오피스로 사무실을 옮긴 한 외국계 회사 간부는 “비용이 다소 비싸긴 하나 업무 환경이 좋아 다들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료 음료, 파티 등 여러 부가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기존 사무실 임대보다 비싼 건 사실이지만, 사용료가 1인당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소규모 스타트업은 오히려 쌀 수도 있다.
국내 중소형 업체들이 운영하던 공유 오피스는 ‘위워크’ 같은 외국계 글로벌 공유 오피스가 공격적으로 시장을 파고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 외국계 공유 오피스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글로벌 네트워크 제공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카나페 같은 한입에 쏙 들어가는 간단한 먹을거리와 맥주를 제공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입주자들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서울 강남에 몰려 있던 공유 오피스는 서울 광화문이나 을지로 등 강북 지역에도 파고들고 있다. 특히 최근엔 유럽계 공유 오피스인 ‘스페이시즈’가 서울 광화문에 2000㎡(605평) 규모로 문을 열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18일 방문한 스페이시즈는 유럽계 회사다운 북유럽풍의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특히 공유 오피스의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사무실 간 소음을 차단벽을 설치해 방지했다는 점이 장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의 라운지.현대카드 제공
한국계 공유 오피스는 지난해 5월 문을 연 현대카드의 ‘스튜디오 블랙'이 돋보인다. 국내 업체에 후발 주자라는 약점을 딛고, 수면실, 샤워실, 차량 대여 서비스 등 외국계와 차별화된 프리미엄 서비스를 내세워 시장에 안착했다. 특히 기존 외국계 공유 오피스가 갖고 있던 장점과 약점을 파악해 구축한 인테리어는 기능적이나, 심미적으로도 우수한 편이라는 평이다. 스튜디오 블랙의 강점은 사무실이 모듈형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블록을 쌓고 빼는 것처럼 벽을 자유자재로 옮기며 변신이 가능하다. 사무공간의 확장과 축소가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공유와 상호작용을 위해 정교하게 공간을 구축하고, 다양한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입주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전해주는 확고한 철학을 지닌 공간”이라고 차별점을 설명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