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가계부는 남성의 것이었다. 대부분의 여성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시대이니 당연한 결과다. 이 시절 가계부는 당시 물가와 생활 풍습을 알 수 있는 귀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계부는 흥미롭게도 ‘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작성했다. 1733년 영조 때 만들어진 <양입제출>이란 가계부다. 책은 곡식 생산량,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물, 농경지 경작료 등 수입을 기록하고, 매달 지출액을 자세하게 썼다. 이를 분석했더니 가장 지출이 큰 부분은 명절 쇠는 비용이었다. 한 해 동안 쌀 170섬을 쓸 정도였다. 그다음이 하인들의 새경(인건비)이었다.
책 앞에는 가장이었던 박문수의 지침이 적혀 있다. “흉년이 들어 백성의 생활이 곤궁하니 가계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라”는 내용이다. 실제 가계부엔 유흥비 같은 지출 내용이 없다고 한다.
조선 말기 학자 나암 박주대가 쓴 <과용하기>라는 가계부도 유명하다. 이 가계부는 1873년 나암이 장원급제하고 기분 좋게 술과 국수를 먹은 것부터 고향 잔치에 쓸 소 한 마리를 산 내용, 담뱃대, 가마 빌린 가격, 말 빌려 탄 내용 등을 깨알처럼 상세히 적었다. 조선시대판 ‘물가정보’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저상일용>은 무려 6대에 걸쳐 쓴 끈질긴 가계부다. 1834년 박한광이 시작해 1950년 박영래로 끝을 맺는다. 이 가계부는 단순 수입과 지출만 쓴 것이 아니라 기후변동, 농사일지, 길흉사 등 일상생활을 두루 담고 있다. 스마트폰 앱 등으로 가계부 작성이 훨씬 쉬워진 세상이지만, 과연 우리는 6대에 걸친 가계부를 쓸 수 있을까?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 갈무리
가계부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장부. 제3자의 시각에서 가족 혹은 개인의 소비습관을 파악할 수 있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기에 유용하다. 수입과 지출을 적은 뒤에는 분석과 반성,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종이가계부뿐 아니라 스마트기기용 가계부 앱도 많다. 한국 가계부의 시초는 어사 박문수(1691~1756) 집안에서 쓴 <양입제출>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