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에스비에스>(SBS)의 <동상이몽>에 출연해 30여년 연기 인생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은 최수종.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들어서는 그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20여년 전 텔레비전에서 봤던 장난기 많고, 짓궂은 사람이 아니었다. 눈매와 표정에 선한 인상은 남아 있었지만, 진중했고 모든 행동에서 남을 배려하는 사려 깊음이 느껴졌다. 30여년의 연기생활 동안 잡음(?) 없이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을까? 최근 <에스비에스>(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에 출연해 아내이자 배우인 하희라와의 결혼 생활을 공개한 최수종(56)을 김성일이 만났다.
김성일(이하 김) 꽤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 20대 중반인가….
최수종(이하 최) 그렇지.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으니 스물여섯이었지.
김 연기자 지망생이 아니었을 텐데, 어떤 계기로?
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경제적으로 어려웠어. 우연한 기회에 고3 여학생 과외를 하게 됐는데, 그 아버지가 <한국방송>(KBS) 예능국장이셨어. “혹시 배우 할 생각 없냐?” 묻기에 “그런 건 없는데, 돈 주냐?”고 내가 되물었지. 일종의 아르바이트쯤으로 생각했어. 내 형편이 그만큼 절박하고 힘들었어. 그 국장님의 소개로 만난 분이 <사랑이 꽃피는 나무> 감독이었지.
김 천운이었네.
최 송재호, 김창숙, 최재성, 손창민, 이상아 등 당대 최고 배우가 출연했어. 4개월 만에 내 처지가 확 뒤집어졌지. 연기의 ‘연’ 자도 모르던 내가. <젊음의 행진> 엠시(MC) 제안이 오고,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 디제이(DJ) 제안도 오고, 청춘영화 출연 제의도 오고.
김 딱 하룻밤 자고 났더니, 세상이 천지개벽했다?
최 그런 셈이지. 친구 역할로 나온,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어린 최재성이 많이 도와줬어. 연기 지도를 해줬지.
김 당시 드라마 촬영장 분위기는 가족 같았지?
최 그럼, 화기애애했지. 점심 다 같이 먹고. 촬영 끝나면 포장마차 가고. 선배들의 연기 조언도 듣고, 작품 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친분이 쌓이고. 요즘은 그런 자리가 거의 없어. 가끔 드라마 출연 중인 선배들이 “녹화 중”이라며 전화를 해. 근데 “왜 전화하셨어요?” 물으면 “점심시간인데, 나만 두고 다들 식사하러 갔네?” 그러시거든. 촬영장 분위기가 참 많이 변한 거지.
김 최근 <리턴> 사태도 결국은 이런 친밀함과 가족 같은 분위기, 즉 패밀리즘 정신이 부재했기 때문 아닐까?
최 내가 판단할 수는 없어. 서로 간에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상대방을 좀더 배려하고 이해하고 양보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해.
김 젊은 배우와 원로 배우의 중간에 있는 분들이 교량 역할을 잘해야겠네. 촬영장에서 서로의 벽을 허물고,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도록.
최수종씨가 웃으며 30여 년 연기 인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젊음의 행진‘ 엠시, 청춘 멜로영화 출연은…
김 데뷔 해 인기를 얻어 곧바로 <젊음의 행진> 엠시를 맡았지?
최 제안이 왔을 땐, 자신 없어 망설였어. 근데 여자 엠시가 궁금한 거야. “누굽니까?” 물었는데, 하희라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갈게요”라고 했네.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그녀를 너무 보고 싶었거든.
김 진짜 이상형이랑 결혼한 거야?
최 맞아.
김 그땐 하희라가 학생이었지?
최 ‘고3’이었어. 학생이기도 했고, 하희라씨 어머님이 매니저 역할을 하셔서 쉽게 다가가진 못했지.
김 친해진 계기는 영화 출연?
최 그런 셈이지. <있잖아요 비밀이에요>(1990), <너에게로 또다시>(1990), <별이 빛나는 밤에>(1991)를 연이어 함께 작업했어. 영화 출연 제의가 올 때마다 “여배우는 하희라로 해달라”고 요청했거든.
김 기자들이 둘 사이 뭐가 있다 눈치채지 않았어?
최 그때는 둘이 ‘케미’(사람들 사이의 조화나 호흡)가 좋으니까 감독들이 우리 둘을 캐스팅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김 지금껏 부부싸움 정말로 단 한번도 안 했어? 여러 의혹들이 루머처럼 돌았잖아.
최 응. 방송에서 충분히 얘기했어.
김 남편으로서는 그렇다 치고, 아빠로선 스스로 어떤 것 같아?
최 아이들 자랑하면 팔불출인데, 참 착해. 지금도 나는 아이들한테 어릴 적부터 존댓말을 썼어. 호칭도 ‘최민서씨’, ‘최윤서씨’라고 부르고. 아빠가 자신들을 한결같이 한명의 인격체로 존중해준다고 아이들이 여기는 것 같아. 둘 다 사춘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히 넘어갔고, 아이들도 부모를 더 존중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김 아빠로서도 너무 멋진걸!
최 결혼하고 아이가 바로 생겼으면 달랐을지도 몰라. 네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얻고 보니, 너무 소중한 거야. ‘그냥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축복이자 선물이구나’ 싶어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었지.
김 아들, 딸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인물이 출중한데, 배우가 된다고 한다면?
최 말려야지. 너무 힘드니까. 배우도 공인이어서 사생활이 노출되고, 그러다 보니 평생 성직자처럼 살아야 하는데. 다행히 지금은 둘 다 배우에 관심이 없어.
김 올해가 은혼식인데, <동상이몽> 출연 말고 ‘깜짝 파티’ 같은 것 준비하는 게 있어?
최 둘만의 파티가 아니라 9월 중에 400~500분들의 독거노인들을 초청해 식사대접을 하려고 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최수종이 김성일을 바라보면서 30여 년 연기 인생을 얘기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훈남 청춘스타→사극 전문배우→새 캐릭터는?
김 청춘스타에서 지금은 왕 전문 배우가 됐는데,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꼽으라면?
최 <태조 왕건>이지. 30대 중반까지 젊은 역할만 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운 좋게 캐스팅 제안이 온 거지. 경기도에서 광고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태조 왕건>에 캐스팅됐다”는 연락을 받았어. 망설임 없이 넙죽 “고맙습니다” 하고 받았지. 당시엔 ‘최수종이 왕 역할을 한다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참 많았어.
김 쌍꺼풀에 미소년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최 그런 셈이지. 다행히 방영과 동시에 우려는 조금씩 사라졌지. 배우는 꾸준히 자신의 캐릭터를 연구해야 하는 직업이야. 연기력도 키워나가야 하고. 당시 난 국어사전 갖고 다니면서 대사 읽는 연습을 할 정도로 치열하게 매 작품에 임했어. 지금은 국어사전 대신 국어사전 앱을 활용하고 있어. 2년 전 <임진왜란 1592> 출연할 당시에도 그랬고. 심지어 선배한테 전화해서 “이 대사 한번만 읽어주세요”라고 부탁까지 했었다니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게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이 하나도 없더라.
김 어느덧 ‘최수종’도 50대 중반이야. 아빠, 아저씨 역할을 슬슬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최 그렇지. 지금은 아빠, 아저씨 역할보다 악역 제안이 더 많아. 내 고민은 ‘악역에 대한 당위성’이 있느냐 없느냐야. 이유 없이 악인인 캐릭터가 아니라 그 인물이 왜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납득할 만한 인물이면 언제든 출연할 용의가 있고, 또 출연하고 싶어.
김 드라마 <품위 있는 여자>의 김선아 역할 같은?
최 그런가? 조급하게 작품을 선택하지 않으려고 해. 공백기가 길어질 수도 있는데, 60대 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작품이니 신중할 수밖에.
김 지금 자신의 삶이 행복해?
최 만족 그 자체야.
김 <동상이몽>에 출연한 게 참 의외야.
최 방송국의 오랜 설득이 있었지. 하하.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어. 젊은 부부들한테 우리 부부의 모습이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결국 수락했지. 스페셜로 3회만 하자 했는데, 방송 횟수가 늘어났어. 편집을 거의 안 했나 봐. 하하.
김 방송 나가면서 최수종이 모든 남성의 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지 않았어?
최 그것보다 우리 실체가 드러나면 하희라씨가 손해 볼 거 같다는 얘기를 우리끼리 하긴 했어. 나는 애교 많고, 사랑 표현도 자주 하는 데 반해 하희라씨는 반대니까. 강직하고 현명한 장군 같은 스타일이잖아.
김 그게 뭐가 중요해? 꼭 여자만 애교 있으란 법은 없잖아?
최 맞아.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 해시태그를 자주 쓴다고 한다)이니까 그걸로 된 거지.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이해해주고. 부부의 금실을 유지하는 비결도 실은 별것 없어. 자신이 조금 손해 본다 싶어도 받아들이고, 더 배려하고 양보하고 사랑하면 탈 날 일이 없어.
김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최 어디에서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고 싶어. ‘에스엔에스’(SNS)를 할 때마다 항상 ‘#선한 영향력’, ‘#축복의 통로’라는 태그를 쓰는 이유지.
■ 최수종 프로필
1962년 서울 출생.
1987년 한국방송(KBS2)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 데뷔와 동시에 청춘스타로 주목.
1988년 문화방송(MBC) <조선왕조 오백년 한중록> 사도세자 역으로 첫 사극 도전.
1990년 문화방송 <조선왕조 오백년 대원군> 철종(강화도령) 역을 통해 연기력을 겸비한 청춘스타 반열에 오름.
1992년 문화방송 <질투>에서 고 최진실(유하경)의 상대역 이영호를 맡아 열연. 당시 56.1%라는 높은 시청률에 이른 이 작품을 통해 청춘스타로 입지를 굳힘.
1992~1993년 문화방송 주말드라마 <아들과 딸>에 출연해 김희애, 채시라 등과 환상의 연기 호흡을 보여줌. 시청률 61.1%에 이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함.
1993년 11월20일 배우 하희라와 결혼. 신성일-엄앵란 커플 이후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받음.
1996년 한국방송(KBS2) 주말드라마 <첫사랑>에서 성찬혁 역을 맡아 열연. 최고 시청률 65.8%로 역대 한국 드라마 중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 기록.
1998년 한국방송(KBS2) 주말드라마 <야망의 전설> 이정태 역으로 ‘케이비에스 연기대상’ 수상.
2000~2002년 한국방송(KBS1)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60.2%)에서 주연을 맡아 혼신의 연기 펼침. 사극 전문 배우로 인정받으며 배우 인생에 전환점을 맞음. 2001년 <태조 왕건>으로 ‘케이비에스 연기대상’ 수상.
2002~2007년 <태양인 이제마>(KBS2), <해신>(KBS2), <대조영>(KBS1) 등 연이은 사극 출연을 통해 절정의 연기력을 보여줌. 2007년 <대조영>으로 ‘케이비에스 연기대상’ 수상.
2012년 한국방송(KBS1) <대왕의 꿈> 태종무열왕 역으로 출연. 당시 낙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연기 펼침.
2016년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드라마로 재구성한 5부작 국내 최초의 팩추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KBS1)에서 이순신으로 열연.
2017년 2월6일부터 현재까지 한국방송 라디오(해피FM 106.1㎒) <매일 그대와 최수종입니다> 진행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