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헐~
나는 지하철 대림역 인근에 산다. 2005년에 연고가 하나 없던 이 지역에 ‘집값이 서울에서 가장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사 온 이래로 14년째다. 이 동네의 자랑이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싼 아파트값이다. 이는 내가 현재까지 학군, 교통, 녹지 등 주거환경이 더 나은 곳으로 이주하지 못하는 이유지만, 그렇다고 굳이 이사를 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소득 수준과 형편이 비슷한 사람이 모여 있어서인지 이웃 간의 소소한 정과 배려하는 마음이 살아 있다. 음식을 나눠 먹는 일, 이웃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낯설지 않다.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어 물가도 저렴하고, 늦은 밤이 되어도 신도시처럼 동네가 암흑천지가 되는 일도 없다. 더운 여름밤 자정에도 팥빙수와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는 이곳에 난 정감이 간다.
하지만 현실은…. “거기 살기 괜찮아요? 무섭지 않아요?” 대림역 인근 주민이라고 밝힐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되돌아오는 질문들이다. 워낙 중국동포가 많은 지역인데다, 지난해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가 연이어 개봉한 뒤, 그런 우려의 시선을 더 많이 받는다. “영등포구 대림동이 범죄가 자주 일어나 경찰도 손대지 못하는 위험한 곳”(<청년경찰>)이라거나 ‘중국의 마피아가 터를 잡은 곳’(<범죄도시>)으로 이 일대가 묘사됐다. 불행히도 지난해엔 대림역 인근에서 중국동포끼리 ‘묻지마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곳엔 외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한번 발을 들이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신비의 마력(?)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이웃 중에는 이 지역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토박이가 다수고, 나처럼 한번 이사 온 뒤엔 웬만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는 이도 많다. 자녀 교육 목적으로의 이주가 있긴 하지만, 이 지역 내에서 월세-전세-매매 순으로 옮기는 이들도 꽤 된다. “바깥의 시선과 달리 안전하고 살기 좋다”는 게 그 이유이고, 실제 그렇다.
다민족이 섞여 살아가는 요즘 시대엔 서울 어디서나 중국동포를 접할 일이 많아졌다. 영화 속 허구와 현실은 분명,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중국동포들이 모두 마피아이거나 범죄자는 될 수 없다. 이들 중에는 고학력·고소득의 전문직도, 한국에서 자수성가한 이들도 많다. 이들의 사는 모습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림역 인근에 사는 한국인, 중국동포를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중국동포를 객관적이고 긍정적으로 그린 영화를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봄 햇살이 비추고 있는 서울 대림역 인근 아파트. 평화롭다. 김미영 기자
영화 <범죄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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