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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느님은 어떻게 사탄이 되었나

등록 2018-03-28 20:20수정 2018-03-29 10:57

[ESC] 커버스토리
신호등 치킨부터 오징어짬뽕 치킨까지
과일맛·과자맛·라면맛 등 ‘괴식 치킨’ 잇따라
식품업체 협업으로 탄생한 ‘튀는 맛’ 인기

치킨. 멕시카나 제공.
치킨. 멕시카나 제공.
2014년 8월 출시된 ‘허니버터칩’이 히트한 이후, 과자업계엔 시즈닝(식품에 첨가해서 음식의 맛을 돋우는 물질) 바람이 불었다. 스윙칩 오모리김치찌개맛, 포테토칩 맛짬뽕맛, 스윙칩 간장치킨맛 등 괴이한 과자들이 편의점 진열대를 채웠다. 치킨업계도 마찬가지다. 프라이드와 양념치킨이 이분하던 보수적인 치킨 시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희한한 시즈닝을 뿌린 치킨이 등장하면서 전에 없이 역동적인 실험장이 됐다.

2년 전 딸기와 바나나, 멜론 맛 가루를 뿌린 ‘후르츠 치킨’(일명 ‘신호등 치킨’)으로 치킨 마니아들을 충격에 빠뜨린 멕시카나는 롯데제과와 함께 ‘치토스 치킨’을 내놓은 데 이어, 올 2월에는 농심과 손잡고 ‘오징어짬뽕 치킨’을 선보였다. 그야말로 괴식 치킨의 지존으로 등극했다. 1980년대 말에 창업한 1세대 치킨업체에 속하는, 28년 전통의 멕시카나는 어떤 연유로 과자나 라면 맛 치킨을 출시하게 된 걸까? 지난 22일 염은선 멕시카나 마케팅기획실장과 치킨연구소의 최계호 차장을 만났다. 치킨을 연구하는 이의 이름에 ‘계’자가 들어가는 점이 재밌다. 최 차장은 “닭 ‘계’자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프라이드와 양념치킨, 둘 중에 하나만 고르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한참 고민할 정도로 치킨의 메뉴가 많아졌다.

염은선(이하 염) 5~6년 전 치킨 프랜차이즈 ‘비에이치시’(BHC)의 ‘뿌링클’과 네네치킨의 ‘스노윙치킨’처럼 치즈 맛 시즈닝을 뿌린 제품이 인기였다. 이후 굽네치킨의 ‘볼케이노’ 같은 히트 메뉴가 나왔다. 치킨업계도 다른 식품업계 못지않게 눈길 끄는 메뉴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그러던 중에 ‘신호등치킨’이 나오게 된 것이다.

멕시카나의 ‘후르츠 치킨’ 포스터. 일명 ‘신호등 치킨’. 멕시카나 제공.
멕시카나의 ‘후르츠 치킨’ 포스터. 일명 ‘신호등 치킨’. 멕시카나 제공.
―신호등 치킨이 궁금하다.

당시(2년 전) 시즈닝 치킨이 대세였고, 과일 맛 소주처럼 과일을 결합하는 것이 식품업계 트렌드였다. 치킨 프랜차이즈가 대략 300개 되는데 메뉴가 다 비슷했다. 스노윙치킨이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게 우후죽순 나왔다. 우리도 ‘눈꽃치즈치킨’이라는 비슷한 상품을 냈다. 경쟁이 치열했다. 차라리 매우 색다른, 이슈가 되는 치킨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탄생한 치킨이 딸기 맛, 멜론 맛, 바나나 맛의 ‘후르츠 치킨’이다. 세 가지 색은 신호등을 떠올리게 했다. 모델인 아이유가 건널목을 건너는 포스터를 만들었다. 출시 전에 포스터로 호기심을 끄는 데 성공하자, 출시하는 날 유명한 먹방 비제이(BJ) 밴쯔가 이 치킨을 먹더라. 보통 그는 다섯 마리씩은 먹는데, 이것만은 달랐다. 먹다가 중간에 포기한 치킨은 처음이라고 했다. 큰 화제가 됐다.

―영상은 반전이었다. “치킨을 딱 열어서 일단 기분이 안 좋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기존의 치킨과 달리 알록달록한 색감이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아서인 듯했다.

어쨌든 그 영상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사람들이 치킨을 ‘치느님’이라고들 부르지 않나. ‘(신호등 치킨은) 치킨계의 사탄’이란 별명을 얻었다. ‘치느님께 무슨 짓을 한 거야’란 소리도 돌았다. 물에 씻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동영상도 많이 돌았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평가하나? 요즘 거론되는 일종의 괴식이 아닌가 한다.

단종된 메뉴지만 이후 새로운 치킨을 개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30여년 역사의 멕시카나지만 신메뉴가 젊은 사람들에게 어필이 된 적은 없었다. 디시인사이드 치킨 갤러리나 유머 게시판 등에 ‘신호등 치킨’이 많이 언급되면서 청소년들에게까지 멕시카나를 알리게 된 계기가 됐다. 얼마 전엔 밴쯔가 ‘멕시카나는 우리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브랜드’라고 하더라.

먹방 비제이(BJ) 밴쯔가 ‘후르츠 치킨’을 먹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먹방 비제이(BJ) 밴쯔가 ‘후르츠 치킨’을 먹는 모습. 유튜브 갈무리.
―‘괴식’ 같은 맛의 조합이 신제품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괴식 치킨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 건가? 오너의 지시 같은 게 있나?

최계호(이하 최) 오너나 임원들의 입맛을 따라가는 회사도 있다. 예를 들어 오너의 고향이 경상도라면 짠맛이 강해지기도 한다. 멕시카나는 전 직원 대상으로 아이디어 공모, 연구소가 대량생산 가능 여부 판단, 젊은 직원들에게 설문, 가맹점의 지사장들과 최전방에서 소비자를 상대해 치킨을 팔아야 하는 점주들의 냉정한 평가를 종합한다.

‘알엔디’ 연구소 최계호 차장이 ‘치토스 치킨’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선주 기자
‘알엔디’ 연구소 최계호 차장이 ‘치토스 치킨’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선주 기자
―‘신호등 치킨’의 영향인지 멕시카나는 이후 특이한 치킨, 이른바 괴식 치킨을 많이 개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치토스 치킨이다. 남은 치킨을 냉장고에 뒀다가 다음날 먹어봤는데 훨씬 맛있었다. 달고 짭짤한 시즈닝이 튀김옷에 스며들어서 처음과 다른 맛이 났다.

가루를 뿌리는 치킨은 타사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시즈닝이 녹아 들어가는 것을 ‘케이킹(caking)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양념치킨처럼 교묘하게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연구소에서도 치킨 배달 시간에 따른 시즈닝 변화, 1일 지났을 때부터 2일 차, 3일 차, 이런 식으로 테스트를 한다.

시즈닝 개발 단계에서 ‘과자 치토스 맛’이라는 직원 의견이 나왔다. 지난해엔 ‘카라멜콘땅콩’과 커피의 결합 같은, 식품 간 협업이 유행이었다. 치토스 생산업체인 롯데제과에 제안했는데 ‘과자 맛 치킨’에 호의적이었다. 최근엔 농심과 협업해 ‘오징어짬뽕 치킨’도 출시했다.

―요즘은 적극적인 모디슈머(Modify+Consumer)들이 많다. 새로운 맛의 치킨 개발 연구에도 반영되나?

굽네치킨의 치킨 ‘볼케이노’가 ‘치밥’(치킨+밥)을 유행시켰지만 의도적으로 개발하진 않았다. 소비자들이 주도한 트렌드다. 이젠 연구원들이 치킨과 어울리는 먹거리를 찾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마지막 질문이다. 치킨 회사 직원들은 다른 업체 치킨도 주문해 먹는가?(웃음)

다른 회사 치킨을 사 먹기도 한다. 치킨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경쟁업체 직원들과 친하다. 신메뉴를 출시하면 서로 ‘미스터리 쇼퍼’(암행 고객)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연구원으로서 당연한 업무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우유콜라라면’ & 괴식 - ‘리틀 포레스트’ & 제철식

방송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태진아가 만든 ‘우유콜라라면’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괴식으로 화제가 됐다. 괴식은 아이스크림에 라면 수프를 뿌려 먹는 등 기이한 식습관을 뜻하나 최근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창조한 맛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기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건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도시에 살다 고향에 돌아온 혜원(김태리)이 제철식을 해 먹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얘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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