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 평가하는 전문가들. 사진 왼쪽부터 풀무원 식품기술연구소 김석화 실장, 와인스타일리스트 이영지, 간식평론가 김학선, 이정국 기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괴식 유행의 진원은 ‘먹방’을 내세우는 텔레비전 방송이나 유튜브 등 각종 동영상 미디어지만, 퍼져 나가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입소문이다. 진짜 괴기스러운 맛이라면, 인기를 얻을 또는 퍼져나갈 이유도 없다. 사람들이 괴식을 찾는 것은 그만큼 먹을 만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괴식의 체계적인 평가를 위해 특별한 모임을 준비했다.
<오래 쓰는 첫 살림>의 저자이자 와인스타일리스트인 이영지 ‘어반 텍스트’ 대표, 본업은 음악평론가지만 간식평론가란 별칭이 붙은 간식 애호가 김학선, 오랫동안 특급호텔에서 셰프로 일한 풀무원 식품기술연구소 조리연구실 김석화 실장이 지난 22일 목요일, 서울 성동구 이 대표 집에 모였다. 최근 유행하는 괴식 2개를 먹어보고 수다를 나누기 위해서다. 이름하여, ‘목요 괴식회’. 시식용 요리는 모두 이 대표가 만들었다.
<에스비에스>(SBS) <미운 우리 새끼>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 치즈 라면과 흡사
사회 오늘 시식할 괴식은 두 가지다. 모두 예능 방송프로그램 <미운 우리새끼>에 나온 음식이다. 하나는 가수 태진아가 만들어 화제가 된 ‘우유콜라라면’이고, 다른 하나는 가수 토니가 만든 ‘육포전과 쥐포전’이다. 둘 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고 ‘맛이 좋다’는 평가가 많다. 한편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다’라는 평도 있다. 우유콜라라면 먼저 먹어보겠다. 말 그대로 우유와 콜라를 넣고 끓인 라면이다.
김석화(이하 김) 콜라의 단맛과 김치가 어울려 맛을 낸다. 나쁘지 않다. 실은 어제(21일) 연구소 연구원들과 시험 삼아 끓여 먹어 봤는데 지금 먹은 게 훨씬 맛있다. 어제는 안 좋은 단맛이 느껴졌다. 단백질(우유)이 응고되면서 지저분한 거품이 생기고, 마치 비지찌개 같았다. 그런데 이건 맛있다. 우리도 레시피에 따라 김치를 넣었는데, 이 김치가 더 잘 삭혀져 맛있는 것 같다.
사회 라면 차이도 있지 않을까?
김 그럴 수도 있다. 어제는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조면을 사용했는데 지금 사용한 유탕면(기름에 튀긴 면)과 다를 수 있다. 또 김치 같은 것을 라면에 넣느냐 안 넣느냐에 따라 맛 차이도 존재할 것이다.
김학선(이하 선) 치즈 라면 같은데! 그냥 치즈만 넣어도 충분할 거 같다. 우유, 콜라 등을 준비해 만드는 과정이 불필요해 보인다.
이영지(이하 이) 재료는 괴이한데, 어차피 먹는 재료들로 만드는 거라서 재밌고, 또 맛있게 느껴졌다. 최근 요괴라면이라는, 새로운 라면이 인기다. 봉골레 맛, 크림 맛, 국물떡볶이 맛 등으로 기존 라면 맛하고 많이 다른데도, 소비자들은 이들 세 종류 라면의 스프를 섞어 먹는다. 제품의 조합을 통해 맛과 재미를 찾아나가는 거 같다.
선 맞다. 재미가 괴식의 포인트다.
사회 왜 사람들이 이 라면을 맛있게 느끼는 걸까?
선 우유의 고소한 맛, 콜라의 단맛, 김치의 개운한 맛이 잘 맞아떨어졌다.
김 면발이 우유를 흡수하면서 국물의 농도가 걸쭉해지고, 면에 양념이 잘 배어 있는 게 주효한 거 같다.
사회 반대로 맛이 없다고 느낀다면, 어떤 이유일까?
김 콜라 때문에 중간 맛이 달다. 만약 김치가 달면 정말 맛이 없을 거다.
우유콜라라면.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때 또 다른 우유콜라라면이 등장했다. 방송에 나온 원래 조리법이 아닌, 우유의 양을 절반으로 줄인 이 대표의 레시피다.
일동 (먹어본 뒤) 이게 훨씬 맛있다.
선 김치 영향이 정말 큰 거 같다. 살짝 느끼한 우유의 양을 줄이니 매콤한 김치의 맛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한국인들은 역시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듯하다.
이 볶음밥 할 때 김치를 먼저 볶아야 맛있는 것처럼 김치를 먼저 끓여서 국물을 냈다. 그래서 맛있어진 거 같다. 그래도 기름지고 부드러운 것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유를 많이 넣은 것을 좋아할 거다.
사회 무엇을 보강하면 더 맛이 좋아질까?
김 차라리 파스타로 접근했으면 더욱 맛있겠다. 이탈리아 치즈인 ‘파르미자노레자노’(파르미자노)를 넣고, 바질 잎을 조금 넣으면 적은 비용으로 그럴듯한 크림 파스타 느낌이 날 거 같다.
선 이 대표 레시피처럼 우유를 덜 넣는 게 확실히 맛있다.
이 우유를 좀 덜 넣고 대파를 많이 넣으면 육개장 같은 느낌이 날 수도 있겠다. 우유가 많이 들어간 오리지널 레시피에는 고수를 넣어도 좋을 거 같다. 색다른 느낌이 날 것이다. 김치는 확실히 개운한 묵은 김치가 어울린다.
사회 우유콜라라면의 한줄 평과 별점(5개 만점)을 매긴다면?
김 제품화 시도를 해볼 만한 신선한 아이디어 음식. 별점은 3.5개다.
선 3.5개다.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해 먹을 필요가 있나 싶다. 재미를 빼면 굳이 매력이 없다.
이 역시 3.5개. 재밌었고, 즐거웠고, 맛은 무난했다. 보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 반응도 좋을 거다.
※우유콜라라면 조리법
1 콜라(반 캔 정도)를 끓여서 김을 뺀 뒤 식힌다. 2 우유 500㎖를 끓여 신김치와 라면을 넣어 끓인다. 3 식힌 콜라를 붓고 한소끔 더 끓인다.
쥐포·육포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제사상에 올려도 되겠네
첫번째 시식을 마친 뒤 이 대표가 두번째 괴식을 준비하자, 집 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그럴듯한 요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 두번째 괴식은 육포전과 쥐포전이다. 육포와 쥐포를 물에 불려서 부침가루를 사용해 전을 부친 요리다.
김 어제 육포전을 연구원들과 해 먹어봤다. 육포의 종류가 달라서 그런지 맛이 이게 훨씬 낫다. 어제는 좀 달게 느껴지고 인위적인 맛이 났다. 햄 같은 맛이랄까. 이 육포전은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맛이다. 맛있다. 쥐포전도 인공적인 조미료 맛이 빠지니 맛이 더 좋다. 술을 부른다. 안주로 최고인 느낌이다. 이 정도면 제사상에 올려도 될 정도다.(웃음)
김 실장의 평가가 끝나기 무섭게 이 대표가 40도짜리 설이소주를 내왔다. 음식을 담은 접시 바닥이 순식간에 드러났다.
선 둘 다 부드러워서 좋다. 육포전은 정말 육전 같기도 하고, 새로운 요리가 탄생한 느낌이다. 쥐포는 그냥 쥐포 맛이고. 육포가 훨씬 맛있다. 둘 중에 선택하라면 육포전이다.
이 육포전은 확실히 맛있고, 쥐포전은 약간 맛이 세다.
김 쥐포도 설탕이나 조미료로 밑간을 많이 한다. 물에 담가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다.
사회 좀 더 조리법을 보강한다면?
김 육포를 약간 다진 다음 계란말이 위에 올려 먹어도 좋겠다. 계란의 부드러운 맛이 쫄깃한 육포의 식감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술안주로도 좋을 것이다. 육포를 고를 땐 덜 단 것을 고르는 게 좋겠다.
선 육포 자체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도 맛있을 거 같다. 튀김옷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으면 더 좋겠다.
이 달걀 물에 소금, 후추를 첨가하는 게 좋겠다. 간이 약간 첨가되면 확실히 맛있어진다. 덧붙이면, 깻잎전처럼 육포를 깻잎으로 싸서 전을 부쳐도 맛있을 듯하다. 지금 너무 그렇게 해서 먹고 싶다.(웃음)
사회 고급 한우 육포를 쓰면 맛이 더 좋아질까?
선 그러면 괴식의 의미가 없다. 지금도 충분히 맛있는데.
김 그건 정말 요리다.
사회 평이 다들 좋다. 한줄 평과 별점을 매긴다면?
김 질과 경제성을 만족시키는 미래의 음식. 별 4개다.
이 너무 만족, 당장 먹을 테다. 별 4.5개.
선 김 실장님 말을 인용해서 ‘제사상에 올려도 될 음식’. 별 4개.
※육포·쥐포전 조리법
1 육포와 쥐포는 따뜻한 물에 불린다. 쥐포는 10여분, 육포는 두께에 따라 20~30여분 정도 불린다. 2 부침가루를 묻힌 뒤 달걀 물을 입혀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 SNS·1인가구·편의점이 열풍 원인
사회 음식 품평은 끝났다. 왜 이런 괴식이 유행이라고 보나?
김 젊은이들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음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식품 업계에서도 크림을 이용한 라면이나 우동이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 거다.
선 에스엔에스(SNS)영향도 크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집에 엘피(LP)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없어도 엘피판을 산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서다. 일종의 유희인 셈이다. 괴식도 그런 차원이라고 본다.
이 동의한다. 나도 인스타그램을 하지만, 어디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을 올릴 때보다 직접 만든 요리 사진을 올렸을 때가 반응이 더 좋다. 이건 또 경제적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와인 한잔 하면 10만원은 금방 넘는다. 하지만 이런 괴식은 몇 천원이면 만들 수 있지 않나. 그런데도 반응이 더 좋으니 유행이 되는 거다.
김 편의점 문화 확산도 큰 영향이다. 다만 너무 편의점 중심으로 음식 문화가 발전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편의점 음식은 아무래도 단가가 싸기 때문에 첨가물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당연히 건강에도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선 1인가구가 늘고, 또 이에 따라 혼술이 늘어나는 것도 원인이다. 남자들의 경우 재료를 직접 손질해 안주를 해 먹기는 쉽지 않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최대한의 맛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편의점 음식을 발전시켰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괴식도 나오는 거고.
이 프리미엄 식재료 시장이 성장하는 것과 무관하진 않다. 편의점 음식과 재료들의 질이 동반상승하는 효과도 있다. 요리하는 입장에선 한밤중에라도 장보기 좋다는 이점이 있다. 편의점 음식문화가 발전하면, 전반적인 식문화가 즐거워질 것이다. 예전 유행했던 내장파괴 햄버거처럼 엽기적인 음식이 아닌 정말로 창의적으로 맛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긴 셈이다. 당장 오늘 먹어본 음식들이 꽤 괜찮지 않은가.
선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일본 편의점엔 있는데 한국 편의점엔 없다”란 불만이 나왔으니까. 그 뒤로 편의점 업계들이 발 빠르게 대응했다.
‘우유콜라라면’ & 괴식 - ‘리틀 포레스트’ & 제철식
방송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태진아가 만든 ‘우유콜라라면’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괴식으로 화제가 됐다. 괴식은 아이스크림에 라면 수프를 뿌려 먹는 등 기이한 식습관을 뜻하나 최근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창조한 맛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기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건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도시에 살다 고향에 돌아온 혜원(김태리)이 제철식을 해 먹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얘기가 담겨 있다.
정리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