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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처음 만난 이디엠, 겉핥기에 실패하다

등록 2018-05-23 20:24수정 2018-05-23 20:39

[ESC] 커버스토리┃EDM

이병학 선임기자의 이디엠 체험기
초보자에겐 복잡·다양한 용어들부터 곤혹
강력한 전자음향, 열광적인 춤판
빠져들고 싶지만 몰입하기엔 부담
집에서 가족과 즐기기 시도…반응은 시큰둥
이디엠 디제이의 디제잉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디엠 디제이의 디제잉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거 어때. 요즘 이디엠이 ‘핫’하거든. 뜬 건 오래 전인데 급속 확산 중이야. 즐기는 방식도 대형화·세분화되고 있지.” “맞아! 그거 클럽 파티도 인기고, 페스티벌도 많이 한대.” 얼마 전 ESC팀 커버스토리 회의. 근데 이디엠이 뭐지? 들어본 거 같긴 한데, 새로운 아이돌 그룹 같기도 하고, 퓨전 요리 이름 같기도 했다.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슬며시 핸드폰을 끌어당겨 검색했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아하, 전자음악. 춤 추며 듣는 전자음악이로군. 전자음악이라면 생소하진 않다. 이디엠(EDM.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은 만장일치로 커버 주제로 선정됐고, 이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이디엠의 언저리를 더듬어 보았다.

그래서 결론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아니올시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중장년층이 쉽게 빠져들기엔 좀 난해한 종목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결정된 것, 뭔지 알아보고 들어보고 겪어보기로 했다. 검색해 보니 용어부터 낯설고, 발생 과정과 전개 과정 또한 깊고 넓으며, 갈래도 많고 해석도 다르고, 즐기는 방식도 천차만별이었다.

개성대로 여러 음악 재료를 전자 장비를 통해 뒤섞고 연결해 틀어주는 디제잉은 이해하겠는데 프로듀싱과 구별하기는 힘들었다. 테크노댄스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빅 룸이나 하우스, 프로그레시브, 덥, 트랩 등은 뭐가 뭔지 헷갈렸다. 하우스도 모르겠는데 최근에 퓨처 하우스, 트로피칼 하우스, 멜버른 하우스 등이 유행이란다.

이디엠에 여러 오해들이 있다며 나름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한 온라인 사전의 다음과 같은 내용도 간단하지 않았다. ‘트랜스, 하드 스타일,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일렉트로 하우스, 덥 스텝, 트랩 등이 이디엠으로 분류된다. 이디엠 중에서 베이스를 강조한 음악을 베이스 뮤직이라 따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정식 장르명은 아니다. 그리고 이와 좀 다르게 하드 댄스와 하드 스타일, 하드 트랜스(일본화된 에너제틱 트랜스 포함), 뉴 에너지, 슈란츠 등을 묶어서 에이치디엠(HDM)이라고 분류하기도 하나 정식 분류는 아니고…’

오해하는 단계라도 가려면 공부를 해야겠는데, 며칠 들여다봐서 될 게 아니었다. 다 제쳐놓고 일단 음악을 들어보기로 했다. 동료가 유트브 채널 ‘보일러 룸’과 ‘믹스믹스 티브이’의 영상들을 추천했다. 보일러 룸엔 세계 각국 디제이들의 연주 현장이 생중계되고, 수시로 디제잉 영상이 편집되지 않고 올라온다고 한다. 믹스믹스 티브이는 이와 비슷한 국내 콘텐츠다.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도 있다. 페이스북과 자체 누리집을 통해 거의 매일 1~2시간 동안 디제잉을 방송한다.

디제잉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디제잉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디제잉 모습을 지켜보니 우선, 젊은층이 모여 떼춤에 빠져드는 이유는 알 듯했다. 별의별 전자 음향들이 리드미컬하게 되풀이되며, 거칠고 강력하게 폭발하는가 하면 어루만지듯 섬세하게 귀를 후벼파는 것이었다. 악기도 연주자도 없이 기계 조작만으로 이렇게 다양한 음향과 박자를 내뿜을 수 있다니. 디제이 주변에 몰려 난리법석을 하며 몸을 흔들어대는 청중들을 이해할 만했다. 마치 땀 흘려 쉬지 않고 일 하듯이 춤 추고 노래하며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듯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왠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반복음이 부담스러웠다. 노래를 압도하는 건조한 기계음, 강렬하지만 뭔가 빠진 듯한 분위기, 숨 돌릴 틈 없게 이어가지만 기승전결 없는 비슷한 선율…. 이걸 글자로 표현한다면 이런 식이다. 드르르르륵 다리리리릭 피융피융…삐리리빠리리뽀리리리리릭…쉭쉭쉑쉑슉슉샥샥…. 45분~1시간 남짓의 디제잉 영상 음악 서너 편을 보고 들으니, 반복되는 기계음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어지러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해변 휴양지나 쪽빛 바다에 뜬 섬들, 울창한 숲과 계곡 등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한 이디엠 곡 메들리는 꽤 괜찮았다. 하지만 젊은층이 열광한다는 강렬한 전자음악과 떼춤 열기에는 적응하기 어려워보였다.

디제잉 영상을 집에서 보며 아이들과 함께 즐기면 어떨까. 기사를 쓰려면 체험이 필요했다. 동거인들에게 제안했다. “이번 주 ‘불금’ 이벤트는 아빠가 만든다!” 마침 두 아들이 20대고, 50대인 아내도 집에서 놀기 좋아하니 딱이었다. 분위기 조성을 위해 ‘소폭’ 제조용 소주·맥주와 치킨을 사들고 들어갔다.

스마트 티브이에 유튜브를 켜놓고, 그중 딱딱하지 않아 보이는 영상을 골라냈다. 조회 수가 무려 472만8478회에 이르는 ‘디제이 주시 엠-올 홈 믹스 송’. 여러 여성 디제이가 번갈아 나서서 개성적인 노래 믹싱을 선보이는 영상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큰 녀석이 말했다. “하이구, 집에서 무슨 춤을 춰요.” 작은 녀석도 말했다. “이디엠은 알지만, 전 기계음이 싫거덩요.” 아내는 아예 판 바꾸기를 시도했다. “모처럼 분위기 있는 노래나 들으면서 소폭에 빠져 봅시다.”

이디엠 디제잉 모습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가족.  이병학 선임기자
이디엠 디제잉 모습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가족. 이병학 선임기자
“디제잉 감상하는 뒷모습 사진이나 한 장 찍자”고 설득해 겨우 티브이 앞에 둘러 앉았다. 화면 속 디제이는 훌륭했다. 쉬지 않고 레버를 밀고 당기고 잡아 돌리며, 요란한 전자음악을 부드럽게 이어나갔다. 하지만 디제이가 아무리 온몸으로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식구들 반응은 그저 그랬다. 잠깐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일단, 폭탄주 세례를 퍼붓는 수밖에 없었다. 잔을 부딪치며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물어봤다. 서너 잔씩 돌아가자, 제법 흥이 올랐다. 이때다 싶어 아내의 손을 잡고 일어나 요란한 기계음에 몸을 맡기자, 아이들도 마지 못해 따라 일어서서 팔다리를 휘저었다.

거실은 덩치 큰 두 아들과 아내, 나까지 흔들어 대는 통에, 춤추는 이들로 비좁은 이디엠 클럽처럼 돼버렸다. 긴 팔을 흔드니 공간은 더 좁아지는 듯 했고 한편으로 아랫집에서 불만 섞인 전화가 올까 걱정도 됐다. 어쨌든 디제이의 날랜 손놀림과 함께 선율이 절정으로 치달아 오르자 제법 분위기가 살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시들해지는 춤판을 폭탄주로 되살려 보려 했으나, 춤꾼들은 하나 둘 소파에 주저앉았다.

디제잉 영상을 켜놓고 가족과 막춤을 추며 잠시 분위기를 잡았다.  이병학 선임기자
디제잉 영상을 켜놓고 가족과 막춤을 추며 잠시 분위기를 잡았다. 이병학 선임기자
‘상금 걸고 하면 분위기가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판은 이미 끝났다. “재미 없어요.” 이구동성이다. “근데, 디제이는 한번 해보고 싶다, 정말.” 아이들은 노래나 춤보다 디제잉에 관심을 보였다. “마음껏 여러 음악을 뒤섞고 리듬과 음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인 거 같아요.”

겨우 5분 동안의 이디엠 안방 춤판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가족이 모처럼 모여 음악 얘기를 나누고, 이디엠 춤도 춰보고, 폭탄주 잔 주고받으며 ‘불금’을 보냈으니. 아내는 마냥 좋아했다. “이디엠이든 저디엠이든, 우리 가끔씩 이렇게 놉시다. 홋홋.” 이디엠, 가성비 좋은 가족놀이로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아비치 & EDM

이디엠(EDM):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Electronic Dance Music). 하우스 음악에서 분화한 장르로 2000년대 후반부터 크게 유행했다. 5월 말부터 잇따라 열리는 이디엠 페스티벌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으로 인기 높던 디제이 아비치(Avicii)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지난 4월20일 전해지자 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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