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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과거를 돌아보고 기억하는 여행, 다크 투어리즘

등록 2018-07-26 09:48수정 2018-07-26 10:00

[ESC] 커버스토리 / 여름휴가 & 남해안 여행

세월호 참사 현장 목포·진도
장흥은 동학농민혁명 최후 격전지
소록도·여순사건 흔적 보고 포로수용소로
가덕도엔 일제군사령부 진지 남아
전남 목포 신항의 세월호 선체. 주말과 공휴일 오후에만 일반인들이 가까이서 참관할 수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전남 목포 신항의 세월호 선체. 주말과 공휴일 오후에만 일반인들이 가까이서 참관할 수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아픈 역사는 왜 되풀이될까. 수많은 철학자·역사학자들이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과거를 돌아보고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출신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도 같은 말을 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참혹한 재해·재난 현장을 둘러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이 ‘다크 투어리즘’이다. 세계 역사가 숱한 전쟁과 재난으로 얼룩져 온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외침과 전쟁, 사건·사고로 얼룩진 역사를 가졌다. 한반도 곳곳에 여행하기 좋은 멋진 경관이 펼쳐져 있듯이, 구석구석에는 고통스럽고 슬픈 역사의 현장도 깔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자랑하는 남해안 지역에도 가슴 아픈 사건·사고 현장들이 이어진다. 전남 목포에서 경남 김해까지, 돌아보고 기억해야 할 근현대사 유적과 재해·재난의 현장을 둘러봤다.

이런 슬픈 장소들을 꼭 여행 목적지로 삼을 필요는 없다. 휴가든 출장이든, 목적지를 오가는 길에 잠시 짬을 내어 들러볼 만한 곳들이다. 화려한 여행지의 그늘에서 찾아오라는 손짓도 없이 그저 기다리고 있는, 그래서 더욱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 근현대사의 사건·사고 현장이다.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 옛일을 되돌아보고 기억하는 것, 그 고통을 나누고 어루만지는 것도 여행자의 몫이다.

전남 목포 신항에 세월호가 있다. 누웠던 선체를 바로 세워 아프게 녹이 슨 옆구리를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4월16일’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눈물이 밴 노란 리본들이 파도치는 담장 안쪽 부둣가에 머물러 있다. 방문자들은 철 담장을 매만지며 노란 리본을 다듬으며 하염없이 선체를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목포 신항 담장에 매어진 무수한 노란 리본들.   이병학 선임기자
목포 신항 담장에 매어진 무수한 노란 리본들. 이병학 선임기자
지난 7월13일 오후, 세월호 모습이 멀찌감치 들여다보이는 신항 담장 밖에서 만난 50대 부부는 “여행 온 길에 바로 세워졌다는 세월호 선체를 보고 싶어 왔다”며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없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4년 4월16일 476명을 태운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305명이 희생된 참사. 세월호의 상처는 언제 아물 수 있을까. 아물지 못할지도 모른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오는 탐방객과 참배객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세월호를 가까이서 만나보려면 주말·공휴일에 신분증을 갖고 방문해야 한다. 오후 2~5시(신청은 4시30분까지) 목포 신항 북문 출입초소를 통해 참관할 수 있다. 출입증을 받고 들어가 선체를 50~60m 떨어진 곳에서 참관할 수 있다. 선체는 촬영할 수 있지만, 셀카·인증샷 촬영은 금한다.

진도 남쪽 끝자락 팽목항(진도항)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현장이자 유가족들이 망연자실 애태우며 대기하던 ‘기다림의 공간’이었다. 참사 4년이 지났어도 팽목항엔 슬픔의 기운이 가득 드리워 있다.

진도 팽목항(진도항) 등대와 하늘나라우체통.  이병학 선임기자
진도 팽목항(진도항) 등대와 하늘나라우체통. 이병학 선임기자
추모객들은 분향소에 들러 분향한 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깃발들과 ‘얼마나 추웠니. 늦어서 미안해’ ‘잊지 않겠습니다’ 등 글귀가 적힌 무수한 리본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방파제를 걷는다. 방파제 끝에는 노란 리본이 붙은 빨간 등대가 있고, 앞에는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칠 수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 등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흔히 ‘정남진의 고장’으로 불리는 장흥에는 가슴 아픈 근대사 흔적이 기다린다. 1894년, 외세의 침탈과 경제 파탄이 가속하는 가운데 부패한 봉건 관료와 토호세력의 수탈에 맞서 전국 농민들이 일어나 항쟁에 나섰다. 갑오동학농민혁명이다. 장흥 일대는 동학농민혁명군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맞서 봉기한 전봉준 등이 이끄는 동학교도와 농민군은 정읍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에 대승을 거둔 뒤 전주성까지 함락시킨다. 그 뒤 일본군이 개입한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퇴해 전남 남부 지역으로 밀리지만, 지도부가 체포된 뒤에도 농민군의 저항은 계속된다. 그 최후의 격전이 벌어진 곳이 장흥 탐진강변 석대들이다. 각지에서 모여든 농민군 3만명이 ‘장태장군’ 이방언의 지휘로, 최신 병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으나 2000명의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전시한 장태 모형. 농민군은 닭의 둥지 장태를 대나무로 크게 만들어 안에 솜이나 짚을 넣어 굴리며 방탄용 도구로 썼다고 한다.  이병학 선임기자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전시한 장태 모형. 농민군은 닭의 둥지 장태를 대나무로 크게 만들어 안에 솜이나 짚을 넣어 굴리며 방탄용 도구로 썼다고 한다. 이병학 선임기자
장흥읍 남외리 석대들 한쪽에 이를 기리는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이대흠 기념관장은 “정읍 황토현전투와 공주 우금치전투는 알아도 최후 격전지인 석대들전투를 아는 이들은 아직 적다”며 “가려져 있다가 1990년대에서야 전모가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농민군의 의로운 혁명은, 전국 각지에서 일제에 맞서 일어난 의병들과 독립군의 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병’으로 불렸던 한센인병 환자들의 보금자리가 고흥의 작은 섬 소록도다. 1916년 이곳에 소록도자혜의원이 설립되며 환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해 1950년대 한때는 6000명이 넘은 한센인들이 거주하며 치료받던 섬이다. 지금은 평균 나이 78살의 어르신 530여명이 한센병을 이겨내며 생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병이 유전되거나 전염이 된다는, 잘못된 상식 아래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한센인들의 한이 맺혀 있는 섬이다.

고흥 소록도의 한센병박물관.  이병학 선임기자
고흥 소록도의 한센병박물관. 이병학 선임기자
고흥 소록도의 옛 한센병 환자 감금실. 등록문화재다.  이병학 선임기자
고흥 소록도의 옛 한센병 환자 감금실. 등록문화재다. 이병학 선임기자
매년 개원 기념일(5월17일) 하루만 개방해오던 소록도는 1996년부터 일부 지역을 일반인에게 완전히 개방했다. 한센인들의 과거 삶을 알아볼 수 있는 한센병박물관과 감금실·검시실 등 옛 건물들, 한센인이었던 시인 한하운 시비,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했던 외국인 선교사들과 간호사들 공적비 등 각종 빗돌이 세워진 아름다운 숲공원 중앙공원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군청 소속 해설사들이 대기한다.

여수·순천은 이른바 여순사건(여순항쟁)이 일어났던 곳이다. 좌·우익 대립 시기인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군인들이 ‘제주4·3항쟁’ 진압 출동을 거부하며 무장봉기한 비극적 사건이다.

여수 만성리 도로변의 형제묘. 여순사건 당시 학살된 주민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병학 선임기자
여수 만성리 도로변의 형제묘. 여순사건 당시 학살된 주민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병학 선임기자
순천 팔마체육관 옆 공원의 여순사건위령탑.  이병학 선임기자
순천 팔마체육관 옆 공원의 여순사건위령탑. 이병학 선임기자
봉기군은 일부 시민들과 합세해 여수·순천·보성·광양·구례 등을 장악했으나 나흘 만에 정부군에 대부분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진압군이 봉기 가담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됐다. 여수 만성리 학살지(검은모래 해수욕장 옆)가 대표적이다. 당시 부역 혐의로 잡혀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돼 있던 민간인 125명이 진압군에 학살돼 암매장된 곳이다. 도로변에 ‘형제묘’ 안내판이 보인다.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는 뜻으로 형제묘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계단을 잠시 오르면 형제묘 비석과 합장된 무덤이 보인다. 여기서 마래터널 쪽으로 100m쯤 더 가면 오른쪽에 여순사건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순천 팔마체육관 옆 공원에는 여순사건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피엑스(PX) 건물 흔적.  이병학 선임기자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피엑스(PX) 건물 흔적. 이병학 선임기자
경남 거제 고현동의 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간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15만여명, 중국군 2만명 등 최대 17만3000여명이 수용돼 있던 곳이다.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사진 자료들과 재현한 모습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무너진 상태로 남아 있는 일부 옛 막사와 피엑스(PX) 건물 터 등을 볼 수 있다.

거제도와 거가대교로 이어진 섬 가덕도의 외양포(외항포) 뒷산 자락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대규모 군사 진지가 남아 있어 들러볼 만하다. 일제 군사령부의 발상지였다. ‘발상지 기념비’도 남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이병학 선임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이병학 선임기자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이병학 선임기자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이병학 선임기자

부모와 함께 봉하마을을 찾은 어린이가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부모와 함께 봉하마을을 찾은 어린이가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간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묘소 참배와 함께 생가, 사저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집’을 둘러볼 수 있다. 노무현재단에 기증된 사저는 수~일요일 하루 5~6회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살펴볼 수 있다. 회당 탐방인원을 현장 접수 10명, 온라인 접수 15명 등 25명으로 제한한다. 노 전 대통령이 아꼈던 생태습지 화포천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고흥·김해 등/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남해안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부산광역시에 이르는 우리나라 남쪽 해안을 말한다. 수많은 반도와 만이 이어지며 복잡한 해안선을 이루며, 무수한 섬들이 어우러진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풍부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음식과 즐비한 볼거리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안관광 벨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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