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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피시방이 아니라 쿡방이네∼!

등록 2018-08-31 09:38수정 2018-08-31 09:54

커버스토리 / E스포츠

파스타·치킨덮밥 등 식당 못지 않은 피시방 먹거리
밴쯔 등 유명 크리에이터 ‘피시방 먹방’ 선보일 정도
‘맛집’으로 소문난 피시방· 배달 서비스 피시방 등
한 손님이 피시방 '피시토랑'에서 떡볶이(사진 왼쪽), 치킨덮밥(가운데),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한 손님이 피시방 '피시토랑'에서 떡볶이(사진 왼쪽), 치킨덮밥(가운데),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국내 게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피시(PC)방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동안 게임 마니아들이 피시방을 선택하는 기준은 컴퓨터 사양(CPU·메모리·그래픽카드 등)이었다. 하지만 최근 컴퓨터 사양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타 업소와 차별성을 두는 전략으로 ‘먹을거리’를 주요하게 내세우는 피시방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맛집’으로 불리는 피시방도 나타났다. 피시방에서 만든 음식, 실제로 맛도 있을까? 음식으로 입소문 난 피시방들을 직접 찾아가 봤다.

22일 오후 5시 경기 안양시 시흥대로에 있는 피시방 피시토랑 안양점. 하교 시간이 지났을 즈음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이들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피시방 주방에서 요리사 복장을 한 직원이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냉 메밀, 비빔국수, 치킨 덮밥을 주문했다는 메시지가 전송됐기 때문이다.

피시방에서는 음식을 컴퓨터로 주문한다. 그 즉시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에 주문 표시가 뜨고, 이를 확인한 직원이 음식을 조리해 가져다준다. 일반 식당처럼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이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몇 분 지나 먹고 싶었던 음식이 눈앞에 배달되는 셈이다. 이 피시방을 운영하는 오승호(28) 씨는 “식당을 갖춘 피시방의 경우 컴퓨터로 게임이나 주요 업무를 하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한다.

오씨는 피시방을 열기 전 약 한 달 동안 전문기관에서 조리 교육을 받았다. 피시방 창업을 앞두고 서울·경기 일대 피시방 30여 곳을 탐방한 결과 “음식이 잘 나오는 피시방일수록 장시간 머무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컵라면, 과자 등 인스턴트 위주의 음식만 있는 피시방에서는 끼니때마다 밥을 먹기 위해 피시방을 나가는 이들이 많았다. 이런 이탈 손님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씨는 피시방 전문 컨설팅 업체 ‘피시토랑’에서 음식 레시피와 재료를 정기적으로 수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피시방 내부에 인덕션과 튀김기를 갖춘 주방도 설치했다.

‘피시토랑’의 수제 햄버거.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피시토랑’의 수제 햄버거.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결과는 좋았다고 한다. 개업한 지 두 달째, 아직 초반이지만 인근 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직장인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씨는 “전문 요리사는 아니지만 레시피에 따라 조리하기 때문에 맛의 편차가 없고, 기존 피시방에서 접하기 힘든 ‘진짜’ 요리들을 선보여서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주방에 들어가 보니 업소용 대형 냉동고 안에는 각종 채소와 새우, 오징어, 홍합 등이 나란히 팩에 담겨 있었다. 비빔국수와 해물라면에 들어갈 재료라고 했다. 가격대는 2000∼5000원 선으로 일반식당보다 다소 저렴하다 보니 식사를 하기 위해 일부러 이 피시방을 찾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중·고등학생은 수제 햄버거, 비빔국수를, 30·40 직장인들은 덮밥, 돈가스 등을 주로 주문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직접 소고기 패티를 반죽해 구운 수제 햄버거가 가장 인기 메뉴다. 하루에 적으면 50개, 많으면 100개까지 팔린다고 한다.

그는 “피시방 음식은 맛없을 거라는 선입견도 있었고, 피시방에서 냉 메밀과 돈가스를 먹는 걸 어색해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라고 말한다. 피시방 음식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피시토랑’ 마케팅을 담당하는 유하영 팀장은 “단돈 만원으로 도심에서 무더위나 추위를 피해 컴퓨터도 하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피시방뿐”이라며 “때문에 주머니가 가벼운 10~20대 세대의 경우 피시방 음식의 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피시방 먹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 피시방에서 주문한 음식들을 소개하고 직접 맛보는 모습이 담긴 영상들이다. 밴쯔, 로이조, 닭갈비 티브이(TV) 등 유명 크리에이터의 유튜브 채널들이 피시방 먹방을 선보였다. 밴쯔는 유튜브에 8월24일 ‘밥 먹으러 PC방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대전 서구에 있는 피시방 탑씨드를 찾아 햄버거 스테이크, 제육덮밥, 수제 버거, 소떡소떡(소시지 떡꼬치) 등을 주문해 맛 보는 내용의 이 영상은 8월27일 기준 조회 수 약 90만회를 기록할 만큼 누리꾼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피시앤쿡’의 햄버거 스테이크.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피시앤쿡’의 햄버거 스테이크.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이야~ 정말 직접 조리한 음식이네요~” 햄버거 스테이크 옆에 놓인 계란 부침을 슬쩍 건드리자 반숙 상태인 노른자가 적당히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는 밴쯔가 짤막한 탄성을 내지른다. 주문한 음식을 차례대로 맛본 그는 “요즘 피시방은 피시방이 아니라 ‘피시 식당’이다”라며 “피시방도 맛집일 수 있다”고 힘 주어 말한다.

실제로 ‘맛집’으로 소문난 피시방이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피시앤쿡’이 그렇다. 27일 저녁, 인근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이곳에 들러 음식을 포장해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이날 인기 메뉴는 제육볶음, 소불고기 도시락이었다. 피시방이지만 마치 일반 식당처럼 음식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급한 용무를 처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인근 회사원들이 음식을 맛본 뒤부터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러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자 올해 초부터는 식사만을 할 수 있는 넓은 식탁도 들였다. 출근길에는 이곳에서 미숫가루 우유를 사 가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 피시방을 운영하는 현지영(37)씨는 원래 게임 마니아였다. 게임을 하러 피시방을 다닐 때마다 컵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웠다고 한다. 평소 요리학원에 다녔을 정도로 음식에도 관심이 있었던 현씨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게임도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결국 2015년에 직접 피시방을 차렸다”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파는 피시방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를 나타내듯 이 피시방에는 약 19.8㎡(6평) 크기의 주방이 있다. 업소용 대형 냉장고 2대, 1단 냉장고 1대, 대형 튀김기, 10인용 전기밥솥 2개, 전자레인지 2대 등 전문 식당 부럽지 않은 구색을 갖췄다. 냉장고 문에는 채소 구매 날짜 등 재료 상태를 설명하는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피시앤쿡’ 주방.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피시앤쿡’ 주방.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삼겹살 덮밥, 콩국수, 파스타 등 이 피시방에서 주문할 수 있는 음식 종류는 40여 가지에 이른다. “냉동조리식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아 동네 주부들도 저녁 반찬거리로 자주 찾아 포장해가기도 한다”며 “최대한 집에서 만든 음식처럼 만들어 왔다”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탕수육을 주문하자 즉석에서 감자전분 등으로 만든 반죽을 입혀 튀겨 낸다. 반조리 식품으로 알려진 떡볶이도 양배추, 양파, 어묵, 삶은 계란 등을 넣은 뒤 직접 개발한 고추장 소스를 넣는 식이다. 냉동 떡에 포장된 인스턴트 소스를 부어 전자레인지에서 단순 조리하는 기존의 피시방 떡볶이가 아니었다.

‘피시앤쿡’ 주방에서 직원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해 커피를 만들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피시앤쿡’ 주방에서 직원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해 커피를 만들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이날 이곳을 찾은 직장인 이지유(28)씨는 “게임을 하면서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 자주 온다”며 명란크림 파스타와 아보카도 바나나 스무디를 주문했다. 제철 과일과 커피분쇄기, 에스프레소 머신 등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생과일 음료와 커피, 빙수 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이곳의 자랑이다. 이씨는 “24시간 연중무휴면서, ‘집밥’같은 음식을 먹고 게임 등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다”라고 말한다. 피시토랑 유하영 팀장은 “자체 조사 결과 ‘피시토랑’처럼 전문 주방을 설치한 피시방이 지난해에만 200여 곳이 생겼다”며 “음식의 질이 좋아지자 게이머 지망생들이 주로 찾던 피시방에서 같이 식사하며 취미를 즐기려는 부모·자녀 고객도 늘었다”고 설명한다.

‘피시앤쿡’의 크림 파스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피시앤쿡’의 크림 파스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과거 케이블 방송에서 소개됐던 이스포츠(E-Sports)가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이를 지상파 방송 생중계를 할 만큼 시대가 바뀌었다. 이스포츠 꿈나무들의 아지트였던 피시방도 과거의 담배 냄새 찌든 어두운 공간에서 탈피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이 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E스포츠 피시(PC)게임으로 상대와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 경기와 관중이 있는 스포츠의 면모를 갖춰가게 된 것은 1990년대 스타크래프트가 크게 유행하면서부터다. 신체의 움직임에 기반을 둔 스포츠가 아니어서 ‘E스포츠가 과연 스포츠인가’ 하는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시범 종목으로 선정됐다. 한국 프로게이머들은 E스포츠의 다양한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선 한국 국가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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