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커버스토리 | 채식
채식에 대한 오해와 편견
채식주의자들 말 들어보니
"식물 아끼려면 채식 더 필요"
"발효식품 발달한 우리나라에선 채식 영양소 충분"
육류, 공장식 사육·도축이 문제
채식에 대한 오해와 편견
채식주의자들 말 들어보니
"식물 아끼려면 채식 더 필요"
"발효식품 발달한 우리나라에선 채식 영양소 충분"
육류, 공장식 사육·도축이 문제
한가위는 채식주의자들에게 괴로운 하루였다. 익숙한 질문이 그들을 괴롭혔다. 육즙 가득한 동그랑땡, 달걀옷을 입힌 명태전, 소고기를 뼈째 익힌 갈비찜을 앞에 두고 친척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니?”,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지”, “어디 고기 안 먹고 힘이나 쓰겠어?”, “식물은 그럼 왜 먹니? 식물은 생명 아니야?” 걱정인지 핀잔인지 빈정거림인지 헷갈렸고, 취직이나 결혼 계획을 묻는 것만큼 괴로웠다.
비단 명절 때만의 일도 아니다. 채식주의자들은 채식 선언을 하는 순간부터 비슷비슷한 질문에 시달린다. 여기엔 채식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 유난 떤다는 식의 따가운 시선이 깔린 것도 사실이다. 채식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채식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척박하다. 오해와 이해는 한 끗 차이라고 했다. 채식주의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식물은 생명 아니야? 식물은 고통 안 느껴?
“30년 비건(우유·달걀 등 동물성 식품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으로 살아오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얘기예요. (웃음) 식물이 고통을 느끼느냐에 대한 과학적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지만, 동물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진실이죠. 동물은 때리면 울부짖어요.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식물도 소중한 생명이므로 식물을 아끼고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더 채식해야 합니다, 1kg의 소고기를 생산하려면 16kg의 곡물이 필요해요. 축산업이 과도하게 식물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
“질문의 진의는 이렇다고 봅니다. 식물도 고통을 받을지 모르니 식물도 먹지 말라, 따지고 들면 먹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웃음)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은 일단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는 거로 보입니다. 그런데 동물의 고통 때문에 동물을 먹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받아들이자니 당장 고기를 끊어야 하잖아요? 그 불편함과 죄책감을 피하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살짝 하는 게 아닐까요. (웃음)” (초등교사 이호재)
■ 채식은 돈이 많이 들잖아?
“솔직히 부인하지 못하겠어요. 실제로 비건 식당 가면 요리 하나에 1만2천원이에요. 두 끼 먹을 돈이 한 끼 식사비죠. 제육볶음은 7천원, 연어덮밥은 비싸 봤자 1만원인데, ‘채소 풀떼기’로만 구성된 끼니가 왜 1만2천원일까? 이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요. 예컨대, 농심 ‘순라면’은 비건 라면인데 외국에선 살 수 있어도 국내에선 못 사요. 수요가 적어서 공급 자체가 없어요.(현재 같은 라면이 국내에선 ‘야채라면’이란 이름으로 판다.) 반면, 한국 육류 소비량은 30년 새 4배 늘었다는 통계가 있어요. 소, 돼지, 닭은 공장식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면서 대량으로 유통되니 사람들은 육식을 계속하게 되고, 육식의 수요는 점점 높아져요. 높아지는 수요를 맞추려고 경쟁하다 보니 고기를 더 싸게 유통하려고 저비용 고효율 환경에서 동물을 학대하는 악순환이 이어져요. 그 결과 고기 뷔페는 ‘무한리필 2만원’이 가능해지는 거죠.” (사회활동가 고윤정)
■ 인간이 동물을 먹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니야?
“보통 이런 말 하는 분들은 생태계 피라미드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동물을 잡아먹는 건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만약 우리가 육식 동물처럼 고기를 먹지 않았을 때 굶어 죽는 존재라면 채식을 하자고 할 순 없겠죠. 하지만 인간은 고기를 안 먹고도 살 수 있고, 심지어 더 건강해질 수도 있는데, 고기를 꼭 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더구나 요즘은 먹을 게 넘쳐나는 시대잖아요. 그런데도 굳이 고기를 먹겠다면 그건 ‘맛’이라는 쾌락을 위해서일 텐데, 당사자의 쾌락을 위해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가 윤리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건 3년 차 직장인 김희정
■ 채식 식단은 영양이 부족하다?
“채식은 우리 몸에 안전하고 이상적인 영양소를 공급합니다. 특히 현미는 훌륭한 단백질원이자 영양원이어서 주식을 백미 아닌 현미로 하길 권해요. 단백질, 칼슘, 비타민, 칼륨 및 마그네슘도 채식으로 다 섭취할 수 있어요. 다만 외국에서 논란 중인 영양소가 비타민 B12인데, 이건 김치나 된장, 고추장 같은 발효식품의 미생물과 해조류에 많아요. 서구권에서는 비건을 하면 비타민 B12 보충제를 따로 먹지만, 발효식품과 해조류를 먹는 한국에선 이것도 공급받을 수 있어요.”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
“1년2개월 차 비건이에요. 저는 주변 권유로 동물성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피부습진이 심했어요. 생채소, 생과일, 현미 위주로 식단을 바꾸고 나서야 모든 증세가 좋아졌어요. 오후 4~5시만 되면 너무 피곤했는데 몸도 가벼워졌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군대 급식에 채식을 포함하자는 운동을 추진 중입니다. 지난달 아이가 군대에 갔는데, 매 끼니와 간식이 모두 고기더라고요. 채소 없이 고기반찬만 있어 영양 불균형이 심하고, 하다못해 간식까지 양념치킨, 햄버거, 핫도그뿐이더라고요.” (전국 군대 보낸 엄마 채식추진모임 박성주 대표)
■ 채식주의자라서 까칠하구나?
“가공하거나 익히지 않은 ‘로 푸드’(Raw food)만 먹는 생채식을 해요. 처음에 생채식을 시작했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무슨 원시인으로 돌아가는 거냐면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왜 쓰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좀 흥분해서 채식이 좋은 이유를 말하니까 친구가 말하기를, ‘너 풀 쪼가리만 먹더니 매우 까칠해졌구나?’ 이후로는 그냥 다이어트한다고 해요. 채식주의자들은 왜 채식을 하느냐는 질문을 항상 받고, 건강이 이유라면 과학적인 근거를, 윤리적인 이유라면 동물권이나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모든 주제가 다소 딱딱하다 보니 ‘채식주의자는 까칠하다’는 편견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직장인 임성현)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채식
고기를 먹지 않거나 가급적 멀리하는 식생활. 음식의 섭취 범위에 따라 대략 이렇게 나뉜다. ▲플렉시테리언(주로 채식을 하되 유동적으로 육식을 함)▲폴로(포유류는 먹지 않고 조류는 먹음)▲페스코(포유류·조류를 먹지 않고 해산물은 먹음)▲락토오보(육류·해산물을 먹지 않고 우유·달걀은 먹음)▲비건(채소와 과일만 먹음)▲프루테리언(채소도 먹지 않고 과일과 견과류 같은 열매만 먹음)으로 나뉜다. ‘비덩주의’는 덩어리진 고기는 먹지 않되 육수로 우려낸 국물이나 양념은 먹는 채식으로, 국물음식이 발달한 한국에 많다. 최근에는 ‘로 푸드'(Raw food) 열풍이 불며 가공하거나 조리하지 않은 채소만 먹는 ‘생채식’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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