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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바위 아닙니다, 6년산 거제 바윗굴 입니다

등록 2018-12-13 09:35수정 2018-12-13 20:54

커버스토리┃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윗굴을 양식하고 있는 박명재씨. 사진 이정연 기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윗굴을 양식하고 있는 박명재씨. 사진 이정연 기자
“이게 6년 된 바윗굴이에요.”

사람 얼굴만 한 굴이 맑은 바다 아래에서 건져 올려진다. 어부는 크고 무거운 굴이 주렁주렁 달린 줄을 잡아끌어 올리는 데 힘이 모자라 바다에 빠져 들어갈 것만 같았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지난 7일, 남녘 바닷가의 포근함은 사라지고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이날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법동마을의 굴 양식장에서 국내 유일하게 바윗굴을 양식하고 있는 박명재(63)씨를 만났다.

바윗굴, 참 낯설다. 그런데 이 낯선 굴이 토종굴이란다. 본래 바윗굴은 수심 20m의 깊은 바다에 서식한다. 그 크기가 아기 얼굴만 하다. 자연산 바윗굴은 잠수부들이 캐 올린다. 양식 바윗굴은 세상에 나온 지는 겨우 3년째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양식 바윗굴은 그 길이가 20㎝를 족히 넘었다.

그가 토종 바윗굴 양식에 뛰어든 건 2007년이다. 11년 전 그는 바윗굴이 점차 보기 어려워지자 양식을 마음먹었다. 지금도 혼자지만, 그때도 혼자였다. “해양 오염도 심해지고, 채취도 무분별하게 하는 바람에 개체가 많이 줄었다. 홀로 양식에 뛰어든 지 첫 2년 동안은 굴 새끼(유생)를 붙이는 데 계속 실패했다.” 박씨가 처음으로 굴 새끼를 가리비 껍데기에 붙이기를 성공한 게 2009년이다.

그 뒤로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일반 참굴은 봄에 굴 유생이 바다 밑에 띄워 놓은 조가비나 굴 껍데기에 붙도록 하는 채묘를 한 뒤 바로 그해 수확하기도 한다. 아주 효율적인 생산주기다. 바윗굴은 채묘 뒤 5년째부터 수확할 수 있다. 박씨는 “참굴은 3년이 되면 죽는데, 바윗굴은 5년이 되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맛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법동마을 앞바다에 부표를 보면 어디서 바윗굴을 양식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바로 부표의 색깔을 보고서다. “주황색으로 된 플라스틱 부표를 바윗굴을 키우는 데 쓴다. 흰색의 일반 스티로폼 부표는 2년 정도가 지나면 삭아 없어져 버린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왼쪽 바윗굴은 2년생이고, 오른쪽 바윗굴은 6년생이다. 사진 이정연 기자
왼쪽 바윗굴은 2년생이고, 오른쪽 바윗굴은 6년생이다. 사진 이정연 기자

찐 바윗굴. 이정연 기자
찐 바윗굴. 이정연 기자

“6년근 홍삼보다 더 귀한 6년근 바윗굴이네요!” 대형 굴을 보고 들뜬 기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박씨의 얼굴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바윗굴은 독특한 특성이 있다. 군락을 이루면서 산다. 지상의 탱크에서 배양을 하는데, 새끼들도 그 안에서 군락을 이루더라. 새끼들이 붙어버리면 키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일일이 떨어뜨려 놓아야 했다. 그만큼 까다롭고 어려웠다.” 바윗굴 양식 초기 겪었던 어려움은 이제 극복했다. 그러나 외로움은 가시지 않는다. “어민들이 생산 방식이 어려워서 바윗굴 양식을 안 하려고 한다. 이게 여럿이 해야 재미가 있는데… ‘나는 1㎏에 얼마 받았다’, ‘나는 얼마나 수확했다’하면서 서로 자랑도 하고 경쟁해야 재미있는 것인데.” 박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외로운 어부의 어깨가 축 쳐진 듯했다. 그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식 바윗굴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판로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 박씨는 “서울에서도, 포항에서도, 광주에서도 꼬박꼬박 사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쪄낸 바윗굴은 관자의 지름이 1.5㎝나 된다. 입안 가득 베어 물어 쫄깃한 관자가 씹히자 ‘피식’ 웃음이 난다. 바윗굴 2개면 배가 부르다. 양식 바윗굴은 1㎏당 5천원 선(껍데기가 있는 굴 기준)에 판매하고 있다. 박명재씨는 봄이 되면 더 많은 바윗굴이 팔려 나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바윗굴은 지금도 맛있지만, 봄에 더 맛있다.” 바윗굴을 주문하려면 그의 휴대전화(010-3858-9489)로 문자를 남기면 된다.

거제/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겨울철 제철 식재료다.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붙은 별명이다.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석화’로 부르기도 한다. 굴 생산지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고르게 분포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굴 종류는 ‘참굴’이다. 9월부터 수확을 시작하지만 보통 11~2월을 굴의 제철로 본다. 김장 속 재료나 국요리, 젓갈 등에 쓰이던 굴은 최근 고급화해 오이스터 바나 유명 레스토랑에 공급된다.

거제/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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