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태배길’ 언덕에서 바라본 구름포해수욕장. 김선식 기자
전국 해수욕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지난 1일 충남 만리포와 부산 해운대·송정·송도 해수욕장이 개장했다. 나머지 해수욕장 대부분은 7월 초·중순 문을 열 예정이다. 전국 광역시·특별자치도·시·군에서 해수욕장이 가장 많은 지역은 충남 태안군(28개)이다. 전국 해수욕장 270개 중 10% 넘은 해수욕장이 태안에 있다. 만리포를 제외한 나머지 태안 해수욕장들은 7월6일 개장한다. 지난 10~12일 태안 해수욕장 28개를 둘러봤다. 한곳에 오래 머물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아늑하고 한적한 해변을 두고 발걸음을 옮겨야 할 땐 못내 아쉬워 자주 뒤돌아봤다. 마음에 박힌 해변 풍경은 다른 해변에 가서도 다시 떠올랐다.
충남 태안군은 해마 모양을 하고 있다. 해마 뒤통수만 육지에 붙어 있는 모습의 긴 반도다. 서울에서 태안까지 차로 약 3시간 걸리는데, 태안을 대로변을 따라 종단하는 데만 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그 태안 서쪽 해안을 따라 28개 해수욕장이 있다. 태안엔 넓고 유명한 해수욕장들도 있지만, 그사이 아담하고 한적한 해변들이 숨어 있다. 작지만 정갈한 해변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풍경에 빠져 운동화에 물들어간 줄도 모르고 정처 없이 해변을 거닐었다.
지난 11일 오후, 충남 태안군 갈음이해수욕장을 찾은 네살배기 아이와 엄마. 김선식 기자
■아담하고 한적한 해변으로
지난 10일 오후 5시, 차에서 내린 곳은 구름포해수욕장(소원면 의항리). 오른편에 바다로 나가는 길이 있었다. 소나무 숲 아래 캠핑장을 지났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자 황토색 해변이 눈에 들어왔다. 해변 모래는 물기가 적은데도 카스텔라 빵처럼 폭신폭신했다. 해변 양옆으로 구리미산과 가르미끝산 줄기가 각각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바다는 작은 해변에 폭 안겨 있는 모습이었다. 파도는 반달 모양으로 육지로 밀려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했다.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초여름 날씨에도 파도를 뛰어넘으며 놀다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어른들은 해변에서 호미로 비단조개를 한 망 가득 캤다.
모래는 유난히 깨끗했다. 2000년대 초부터 구름포해수욕장 터를 닦아 온 김낙근씨는 “구름포는 해변으로 모래가 계속 들어온다”며 “(해류의 영향으로) 바다가 여름엔 쓰레기를 가지고 나갔다가 겨울엔 다시 가지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구름포의 옛 이름은 일리포다. 그만큼 해변 길이가 짧다는 뜻이다. 구름포의 해변 길이는 약 500m. 만리포 해수욕장(3㎞)의 1/6 정도다. 구름포에서 남쪽으로 의항(십리포), 방주골(백리포), 천리포, 만리포 해수욕장이 이어진다. 의항과 방주골 해수욕장에도 작지만, 운치 있는 해변이 있다.
지난 10일 오후, 충남 태안군 꾸지나무골 해수욕장 풍경. 김선식 기자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
기막힌 풍경은 기대를 내려놓았을 때 느닷없이 찾아왔다. 지난 11일 오후 1시 방문한 갈음이해수욕장(근흥면 정죽리)이 그랬다. 바다를 보려면 씨름판 모래 같은 흰 모래 언덕을 넘어야 했다. 약 50m를 걷는 동안 언덕 옆 정갈한 소나무 숲이 눈길을 끌었다. 오래전엔 소나무 숲 안쪽으로 갈대들이 무성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바람이 불면 갈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 ‘갈음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언덕을 넘자 아담한 해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길이 약 245m 해변은 들어서는 순간 곱고 단단한 모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해변에선 한 여성이 네살배기 딸과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넷 검색으로 이곳을 알게 됐다”며 “아이들이 놀기 좋고 깨끗한 해변이라고 해서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놀러 왔다”고 말했다. 박성수 정죽3리 이장은 “갈음이해변은 먼 바다까지 물이 빠져도 뻘이 아닌 모래가 이어져서 깨끗하다”고 말했다.
꾸지나무골해수욕장 왼편 두 바위가 있는 풍경. 김선식 기자
태안군에서 가장 작은 해수욕장은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이원면 내리)이다. 해변이 약 170m 길이다. 아담한 해변 왼편엔 높이 솟은 두 개의 바위에 키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바위 사이 바닥엔 모래가 깔려 있어 누군가 바위 사이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꾸지나무골’이란 이름은 과거 해수욕장 뒤편에 꾸지뽕나무가 많아서 생겼다. 꾸지뽕나무는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하나둘 사라졌다고 한다. 김홍규 꾸지나무골해수욕장 번영회장은 웃으며 “도둑맞았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후 1시, 해변 뒤 솔밭에서 부는 바람이 시원했다. 평일 대낮인데도 관광버스 타고 온 여행객들은 작은 해변을 오가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10일 오후, 충남 태안군 학암포해수욕장 앞바다에 보이는 ‘소분점도’. 김선식 기자
■그 섬에 가고 싶다
앞바다 작은 섬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태안 해변들이 있다. 지난 10일 오후 2시, 간조에 물이 빠져 학암포해수욕장(원북면 방갈리) 앞바다 ‘소분점도’로 가는 길이 열렸다. 한 여행객이 길이 열린 섬으로 걸어 들어갔다. 해수욕장 오른편 갯바위에서 굴을 캐던 한 70대 여성은 그 모습을 보고 “소분점도에 들어갔는데 물이 차서 길이 잠기면 다시 물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괜히 헤엄쳐서 나오려고 하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학암포는 학이 나는 날개 모양처럼 해변이 둘로 나뉜다. 총 길이는 1500m가량이다. 넓은 해변인데도 모래가 유난히 반질반질하고 깨끗했다.
지난 11일 저녁 7시, 충남 태안군 꽃지해수욕장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보이는 풍경. 김선식 기자
꽃지해수욕장(안면읍 승언리) 앞바다 할미 바위·할아비 바위와 천리포해수욕장(소원면 의항리) 앞바다 닭섬도 간조 때 길이 열린다. 지난 11일 저녁 7시 길이 열린 꽃지해수욕장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 주변에선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느리게 걷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돌무더기 틈을 들여다보고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이 해는 점점 기울어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날 저녁 7시 찾은 천리포 해수욕장 앞바다 닭섬은 이미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천리포해변과 닭섬은 천리포수목원 산책길 위에서도 그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난 11일 오후 충남 태안군 기지포해수욕장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김선식 기자
■초록색 바닷가
바닷물에 초록빛이 감돌 때, 그리고 바닷가 신록이 푸를 때 바다 풍경은 더욱 싱그러워진다. 초록의 힘이다. 지난 10일 오후 3시, 구례포해수욕장(원북면 황촌리)에선 소나무 숲과 풀밭이 눈이 갔다. 오른편 소나무 숲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해변으로 이어지는 작은 언덕에는 이름 모를 풀들과 연보라색 꽃이 무성했다. 정희수 구례포해수욕장 번영회장은 “구례포는 예전엔 백사장만 있었는데 그 모래에서 가끔 구렁이들이 알을 낳았다고 해서 ‘구렁이’에서 ‘구례포’라는 이름이 나왔다”며 “해변 뒤 소나무 그늘은 주민들이 40년 넘게 가꿔온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후 5시, 기지포해수욕장(안면읍 창기리) 해변도 너른 갯그령 풀밭으로 더욱 생명력이 느껴졌다. 갯그령은 사구 지역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풀이다. 갯그령 풀밭 사이로 난 길 아래 바다는 초록빛과 어우러져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기지포해수욕장 주변에는 삼봉해수욕장, 안면해수욕장, 백사장해수욕장 등이 가까이 모여 있다.
지난 11일 오전, 충남 태안군 파도리해수욕장 오른편 기암절벽. 김선식 기자
■동해인가 서해인가
태안 해수욕장에선 대개 파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해변은 고요하고 잔잔하다. 단 한 곳,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해수욕장이 있다. 파도리해수욕장(소원면 파도리)이다. 지난 11일 오전 11시, 그 이름에 걸맞게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은 파도리해수욕장은 왼편 해변에 작은 몽돌이 넓게 깔려 있었다. 오른편 가장자리 황토색 기암엔 파도가 만들어 낸 해식애(절벽)와 해식동(동굴)이 보였다. 왼편과 달리 오른편은 작은 몽돌이 듬성듬성 깔린 모래밭이다. 정조영 파도리해수욕장 번영회장은 “파도리는 작은 몽돌이 많아 바닷물이 깨끗해 해수욕하기 좋고, 기이한 기암 풍경 때문에 동해나 다른 나라 바닷가에 온 것 같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파도리해수욕장 위쪽으로 어은돌해수욕장이 가깝지만, 어은돌해변은 잔잔하고 고요하다. 어은돌 방파제가 둥글게 바다를 안고 있다.
지난 11일 저녁, 충남 태안군 방포해수욕장 풍경. 김선식 기자
■깨끗함의 비결은?
방포해수욕장(안면읍 승언리)은 해변 길이 900m로 작지도 크지도 않은 해변이었다. 지난 11일 저녁 6시, 해변에선 갯벌에서 조개 캐는 사람들과 왼편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보였다. 숙박업소들과 식당 앞 공영주차장에서 5m 거리에 바로 이어진 해변인데도 모래가 깨끗했다. 깨끗함의 비결이 궁금했다. 임홍섭 방포해수욕장 번영회장은 “매일 회원들이 청소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마을 밧개해수욕장은 해변이 아주 단단하지도 푹신하지도 않아 안락한 기분으로 거닐 수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충남 태안군 안면해수욕장. 김선식 기자
■어두컴컴한 해변에서
태안엔 넓고 유명한 해변들이 있다. 만리포해수욕장(소원면 모항리)은 지난해 개장 기간에 35만여명이 방문해 태안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방문했다. 몽산포해수욕장(남면 몽산리)도 갯벌 체험하러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해변이다. 몽산포해수욕장 아래로는 달산포, 청포대, 마검포, 곰섬해수욕장이 이어져 있다. 신두리해수욕장과 연포해수욕장은 주변에 식당과 숙박업소들이 즐비하다. 신두리해변은 단단하고 드넓다. 연포해변은 흰 모래밭이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태안 최남단 고남면 장곡리에 있는 장삼포해수욕장과 바람아래해수욕장, 그리고 안면읍 신야리에 있는 샛별해수욕장은 크진 않지만, 운치 있다.
지난 11일 저녁, 충남 태안군 샛별해수욕장 앞바다 수평선 뒤로 해가 거의 넘어갔다. 김선식 기자
지난 11일 저녁 7시20분, 꽃지해수욕장에서 샛별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좁은 시멘트 길과 논 사잇길을 차로 달려 샛별해수욕장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40분. 해변 갯바위에서 낚시하던 두 남성은 낚싯대를 거두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는 점점 붉어지다가 저녁 7시50분, 앞바다 수평선에 걸렸다. 되돌아가야 할 좁은 길은 잠시 잊은 채, 어두컴컴해진 고요한 해변에 홀로 서서 해넘이를 바라봤다. 마지막 남아있던 붉은 빛까지 마음에 담았다.
태안(충남)/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태안 해수욕장 여행수첩
●가는 길 충남 태안군에 있는 해수욕장들은 대로변에서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자리한 곳들이 많다. 대중교통보단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게 상대적으로 편리하다. 다만 해수욕장마다 짧게는 500m, 길게는 1~2㎞ 정도 좁은 마을 길이나 논 사잇길을 통해야 하는 곳들이 있다. 만리포, 꽃지, 연포, 몽산포 등 이름이 알려진 해수욕장들은 넓은 무료 주차장들이 있다. 단 신두리해수욕장은 주차장이 따로 없어 숙소나 식당, 슈퍼 등을 이용해야 한다. 소규모 해수욕장들은 주말이나 성수기에 사람들이 몰려 주차 공간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주변 다른 해수욕장 방문을 차선책으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캠핑 해수욕장 주변에 보통 캠핑장이 있다. 이용 면적과 전기시설 사용 여부 등에 따라 1박에 1만~4만원 수준이다.
●주변 여행 구름포해수욕장은 입구에서 ‘태배길’ 표지판이 있는 비포장 오르막길을 1㎞가량 오르면 언덕에서 구름포해수욕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차로도 올라갈 수 있다.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은 태안군 다섯 개 ‘솔향기길’ 가운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1코스 기점이다. 만대항까지 약 10㎞ 구간이다.
●참고·문의 태안군청 누리집(taean.go.kr)에서 상단 <오감관광> 메뉴→ 상단 <어디로 갈까> 메뉴 → <해수욕장>. 태안군청 관광진흥과(041-670-2691)
해수욕장 해수욕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시설이 갖추어진 바닷가. 백사장·산책로·야영장과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 안전시설, 환경시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환경·시설 기준에 적합한 육지·수역을 지정한다. 2019년 기준 전국 해수욕장은 270곳. 대부분 다음 달 초·중순 개장한다. 동해, 서해, 남해 등 바다와 각 지형에 따라 해수욕장 풍경이 다르다. 그중 서해는 곳곳에 아담하고 한적한 해수욕장들이 있다.
태안(충남)/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