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컬러와 워싱, 아이템을 ‘믹스&매치’해 감각적인 스타일을 완성한 ‘지방시’의 데님 룩. 사진 지방시 제공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와중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공기에 스며있던 차가운 기운은 어느새 사라졌고, 내리쬐는 햇볕에서는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패션 역시 새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면 옷차림이 바뀌듯 트렌드도 바뀐다. 올봄을 휩쓸 것이라 예측하는 수많은 트렌드 중 단 하나만 골라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데님’에 올인할 것이다. 디자이너들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런웨이와 스타일링에 도가 튼 ‘패션 피플’들이 리얼웨이(일상복)로 데님을 주저 없이 선택해서 올봄 가장 주목해야 할 트렌드라는 사실이 이미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데님 소재는 클래식 중 클래식으로 꼽힌다. 성별, 연령, 지역, 유행 등에 상관없는 소재이자 오랫동안 우리가 사랑한 패션 아이템이다. 걸음을 막 뗀 유아부터 청년, 장년, 중년 그리고 노년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소재다. 게다가 패션 트렌드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그만큼 친숙하고 실용적이면서 활용도가 높은 패션 소재란 뜻이다.
레트로 스타일 데님 재킷으로 스타일을 완성한 ‘알렉산더 왕’ 컬렉션. 사진 알렉산더 왕 제공
올봄 데님 트렌드의 콘셉트는 명확하다. 1980년대로의 회귀! 좀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면 ‘레트로 데님’이 강세를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엄마나 이모 등이 젊은 날 찍었던 사진에서 보아왔던 스타일일 테고, 40~50대에게는 젊은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그런 룩들이다. 이 룩의 기세가 돋보인다. 막강한 레트로 데님 트렌드를 네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청청’(청재킷+청바지)패션이다. 복학생 선배의 스타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청청패션은 올봄에 더없이 스타일리시해 보일 예정이다. 장신의 10등신 모델이 아닌 이상 상·하의를 모두 데님 소재로 입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다. 스타들의 공항 패션이나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에스엔에스(SNS)에서 자주 등장했던 청청패션은 1980년대 감성을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스타일이다. 물론 이 패션을 멋지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트릭이 필요하다. 우선 상의와 하의를 다른 톤으로 매치할 것. 상의를 밝은 청재킷을 선택해 입고, 하의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컬러 청바지로 매치하면 시각적 부담감을 덜 수 있다. 데님이라고 해서 무조건 ‘블루’ 컬러를 고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스타일링하기가 한결 손쉬워진다. 초록색이 살짝 가미된 청록색 데님이나 블랙에 가까운 인디고 데님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면 스타일링의 폭이 넓어진다.
서로 다른 컬러와 워싱, 아이템을 ‘믹스&매치’해 감각적인 스타일을 완성한 ‘지방시’의 데님 룩. 사진 지방시 제공
청청패션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청치마다. 청치마는 그동안 구릿빛 피부에 건강미 넘치는 여성을 연상하게 했다. 장년층보다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올봄에는 판세가 달라졌다. 우선 길이가 드라마틱하게 길어졌다. 무릎을 훌쩍 덮고도, 발목 가까이 내려오는 긴 길이의 보수적인 실루엣이 눈에 띈다. 1980년대보다는 19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스커트는 오버 사이즈 재킷이나 심플한 터틀넥 니트와 매치하는 것이 가장 멋스럽다. 이때 필요한 것은 느슨하고 나른한 애티튜드. 주얼리를 주렁주렁 걸거나, 굽이 높은 구두를 신으면 지나치게 촌스럽게 느껴진다.
레트로 스타일 데님 재킷으로 스타일을 완성한 ‘알렉산더 왕’ 컬렉션. 사진 알렉산더 왕 제공
1980년대 디스코 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당시, 젊은이 대부분은 청재킷을 입고 다녔다. 그 당시 청재킷은 젊음과 반항의 상징이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컬을 넣어 부풀린 헤어스타일에 청재킷을 걸쳤다. 소매 폭은 넉넉했고, 어깨는 한 뼘 정도 자신의 몸보다 컸으며 전체 길이는 허리 라인을 넘지 않았다. 바로 그 디자인이 돌아왔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 목격했던 복고풍 재킷 말이다. 스타일링은 개인의 몫이다. 베르사체 런웨이 위의 모델 신현지처럼 아찔한 미니스커트와 함께 노골적인 디스코 풍으로 맵시를 연출하거나, 청바지와 함께 앞서 말한 청청패션으로 스타일링해도 된다.
마지막은 누구나 한 벌쯤은 가지고 있을 청바지다. 청바지야말로 클래식 그 자체다. 태어나서 청바지를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해마다 바뀌는 트렌드에 따라 길이, 컬러, 워싱공정 등의 요소만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우리는 청바지를 수도 없이 입어 왔고, 앞으로도 입을 것이다. 트렌드라는 미명 하에 그 모양과 색이 수도 없이 바뀌었던 청바지가 이번 시즌에는 어떤 모습일까? 반가운 소식을 전하자면 굳이 새 청바지를 사기 위해 쇼핑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다면 무리하게 쇼핑을 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옷장을 잘 뒤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서로 다른 컬러와 워싱, 아이템을 ‘믹스&매치’해 감각적인 스타일을 완성한 ‘지방시’의 데님 룩. 사진 지방시 제공
올봄만큼은 ‘데님’이기만 하면 어떤 컬러이든, 어떤 실루엣이든, 어떤 길이든 상관없다. 한때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돌청 데님’(정식 명칭은 스톤 워싱 진)이나 2000년대 초반 10~20대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인디고 데님도 멋지다. 실루엣 또한 마찬가지다. 허벅지 부분이 넉넉한 배기팬츠 스타일이나 아무런 장식 없이 일자로 쭉 뻗은 평범한 스타일도 입을 만하다. 몸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게 퍼지는 레트로 스타일의 플레어팬츠도 무방하다. 올봄만큼은 청바지를 입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이번 시즌 다양한 디자인과 워싱, 컬러를 선보인 ‘스텔라 매카트니’의 데님 아이템. 사진 스텔라 매카트니 제공
마지막으로 다양한 핏(fit)의 청바지를 갖고 있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는 이라면 데님 소재의 버뮤다팬츠에 주목해볼 만하다.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버뮤다팬츠는 올봄 반드시 주목해야 할 아이템인데, 실크·가죽·리넨 등 다양한 소재와 결합해 한층 세련미가 넘친다. 이 ‘핫’한 디자인이 데님 소재를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글 신경미(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각 업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