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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쓰레기 집 청소, 등산 같아요”

등록 2020-03-19 09:29수정 2020-03-19 09:41

‘쓰레기 집’ 극한 청소 현장 유튜브 방송하는
젊은 청소인 모임 ‘클린어벤져스’ 대표 인터뷰
청소 의뢰인 20~30대, 1인 가구, 우울증 대부분
사연 뽑아 쓰레기 집 청소 무료 서비스도
“기뻐하는 의뢰인 보면 으쓱” “기부도 투자”
지난 12일 청소업체 ‘버틀러’ 사무실에서 만난 이준희 대표.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지난 12일 청소업체 ‘버틀러’ 사무실에서 만난 이준희 대표.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방 안에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때 묻은 인형과 화장품, 플라스틱병, 비닐봉지, 휴지, 흙처럼 변해버린 피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물건들, 그리고 바퀴벌레 떼…. 사람이 사는 방이라고 했다. ‘쓰레기 산’을 밟고 청소하는 이들은 종종 비명을 질렀다. “으악!” “우웩!” “제발~” 구독자 약 6만3500명(3월18일 기준)인 유튜브 채널 ‘클린어벤져스’ 영상이다. 주로 ‘쓰레기 집’(쓰레기로 가득 찬 집) 청소 영상을 올리는 채널 운영자는 젊은 청소인들의 모임인 ‘클린어벤져스’다. 청소업체를 창업한 20~30대 12명(6개 업체)이 결성했다. 전 치킨집 사장, 인터넷 쇼핑몰 사장, 인터넷 설치 기사, 일용직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등이 모였다. 이 모임의 이준희(38) 대표를 만났다.

이준희 대표가 퇴사를 결심한 건 단순하지만 절박한 이유, 월급 때문이었다. 7년 넘게 사무직으로 근무한 서울의 한 보안업체 월급은 270여만원. 가족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먼저 퇴사한 직장 동료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그는 새로 시작한 입주청소 일이 벌이가 괜찮다고 했다. 그에게 교육비 300만원을 내고 청소 일을 배웠다. 2017년 1월 함께 퇴사한 직장 동료와 청소업체 ‘크린몬스터’(현 ‘버틀러’)를 공동 창업했다. 이씨는 지난 12일 “처음 청소업체를 창업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뜬금없이 웬 청소냐’, ‘굳이 청소 일까지 해야겠냐’는 반응이었다”며 그도 처음엔 후회했다고 했다. 모든 게 ‘맨땅에 헤딩’이었다. 부동산중개업소와 아파트 공사현장을 돌며 전단을 돌렸다. 첫 달은 둘이서 200만원을 벌었다. 일이 손에 익자 벌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다 창업 초기, 운명처럼 한 의뢰인을 만났다.

지난 16일 ‘클린어벤져스’가 한 가정집을 청소하는 모습. 사진 클린어벤져스 제공
지난 16일 ‘클린어벤져스’가 한 가정집을 청소하는 모습. 사진 클린어벤져스 제공

처음 만난 쓰레기 집, 그건 운명이었네

“집에 쓰레기가 조금 있는데요, 좀 치워주실 수 있나요?” 의뢰인이 조심스레 부탁한 건 복잡한 청소가 아니라 ‘쓰레기 제거’였다.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 가능합니다.” 투룸이었다. 15만원을 받기로 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이게 뭐야!” 어릴 때 쓰레기 매립장이나 운동장 구석에 있는 쓰레기 차는 봤어도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집은 처음이었다. 의뢰인에게 다시 전화해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했다. “얼마 주면 해주겠냐”는 의뢰인의 질문에 “100만원 줘도 못 한다”고 답하자 그는 “100만원 줄 테니 제발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쓰레기 집 청소를 시작했다.

쓰레기 집 청소는 할수록 적응할 만했다. 보수도 보통 입주청소보다 최소 두배 이상이었다. 쓰레기양과 오염도에 따라 더 받기도 하지만 원룸은 기본 30만원 이상, 투룸은 40만원 이상이다. 청소 인력은 2~8명, 청소 시간은 4~10시간, 집마다 천차만별이다. 6명이 하루 10시간씩 꼬박 이틀 청소한 집도 있다. 저장강박증이 있던 고인의 집이었다. 1.5t 트럭이 세 차례나 물건을 가득 실어 나갔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이 대표의 머리를 스쳤다. ‘식욕 감퇴 전문 유튜브 방송을 해보면 어떨까.’ “평소엔 배불러도 ‘먹방’(시식 방송)만 보면 식욕이 솟구치는데 쓰레기 집 청소만 갔다 오면 밥맛이 뚝 떨어졌다.” 먹방이 대세인 요즘, 거꾸로 다이어트에 도움 되는 방송을 해보기로 했다. 젊은 청소업자들의 모임 ‘클린어벤져스’에서 뜻을 모았다. ‘쓰레기 집’ 청소를 나갈 때마다 의뢰인들에게 촬영 동의를 얻고 머리에 동영상 카메라를 밴드로 고정했다.

지난해 1월 ‘클린어벤져스’ 유튜브 채널 방송을 시작했다. 영상마다 수천~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미국, 브라질 등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댓글을 달았다. 그들은 ‘놀랍다’, ‘신이시여’ ‘당신들은 좋은 친구들이다’ 등의 반응과 함께 영어자막을 요구했다. 결국 지난달 21일부터 영어자막을 단 영상이 올라왔다.

지난달 28일 ‘클린어벤져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지난달 28일 ‘클린어벤져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청소는 고통이로다

“처음엔 진짜 비위가 상해서 토하고 내 토를 같이 치우면서 청소했다.” 이 대표는 시각적, 후각적 고통이 상상 이상이었다고 회상했다. 구더기, 하루살이, 바퀴벌레가 들끓는 방은 차라리 정글이었다. “냉장고 안에 서식하고 천장에서 침대로 툭툭 떨어지는 바퀴벌레는 아직도 적응 안 된다.” 쓰고 아무 데나 던져 놓은 성인용품, 괴상하게 생긴 인형, 피 묻은 종이나 휴지 등도 예사다. 냄새를 견디려고 여러 궁리도 해 봤다. 마스크에 치약이나 향수를 묻혀 두 겹으로 써보기도 하고, 콧구멍에 휴지를 구겨 넣고 입으로만 숨 쉬어도 봤다. 소용없었다. 근육통과 인후통에 트라우마까지 남아 며칠씩 고생했다. 청소를 마치고 옷과 신발을 버리고 집에 들어갔지만 씻어도 계속 냄새나는 것 같은 환각에 시달렸다. 클린어벤져스 구성원 너덧명은 그 고통을 못 이겨 결국 중도 하차했다. 이 대표는 “업력이 쌓이면서 이제 시각적, 후각적 고통은 현장에서 30분 지나면 적응된다”면서도 “벌써 100번 넘게 경험했지만 쓰레기 집 청소는 갈 때마다 새롭다”고 말했다.

집안에 들어가면 먼저 쓰레기를 밀어 길을 만든다. 역할을 나누기 전 움직일 공간부터 확보하는 것이다. 보통 가장 더러운 공간은 방이다. “(주인이) 돌아다니면서 어지르는 게 아니라 누워서 물건을 여기저기 던져 놓는 것 같다.” 팀원들이 보통 선호하는 공간은 화장실과 베란다다. 이 대표는 “방과 거실은 바퀴벌레처럼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고 분류하고 정리할 게 많은 반면 화장실과 베란다 청소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고 설명했다. 역할을 나누고 재활용·일반 쓰레기를 수거하면 기본적인 청소 순서를 따른다. “위에서 아래로, 안에서 밖으로.”

바퀴벌레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다. 이 대표는 “가끔 말도 안 되는 항의와 갑질을 겪고 나면 팀원들이 한두 달 일을 쉬어야 할 정도로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 커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떨어지고 깨진 타일을 보수해달라고 우기는 경우다. “도배나 리모델링, 시공밖에 답이 없는데 청소로 해결해달라고 하면 난감하다.” 쓰레기로 보이는 더러운 인형이나 옷을 버리면 물어내라고 할 때도 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버릴 것과 안 버릴 것을 물어보고 치워야 한다.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청소 상태를 꼬투리 잡아 돈을 지불하지 않은 의뢰인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통에도 뒤따르는 보람과 희열, 자부심이 있다. 그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클린어벤져스’ 이준희 대표.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클린어벤져스’ 이준희 대표.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누구나 사연은 있다

쓰레기 집 청소 의뢰인들은 공통점이 있다. “100명이면 99명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 통화도 잘되지 않아 문자메시지로 협의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 있는 원룸이나 투룸에 사는 20~30대, 1인 가구가 대부분이다. 기자, 연예인, 모델, 승무원, 간호사, 대기업 직원, 무직 등 직업은 다양하다. 한 달에 한 번, 반년에 한 번 다시 청소를 의뢰하는 이들도 있다. “가보면 처음 의뢰할 때랑 집이 똑같다.” 이 대표는 석 달 전 어느 날 밤 9시께 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반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울증이 너무 심한데 집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 오늘 이대로 자면 죽을 것 같아 너무 무섭다. 가격은 상관없으니 오늘 와서 청소해 달라.” 밤 10~11시 급히 팀원 4명을 모아 원룸을 찾아가 청소했다. 이 대표는 “청소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의뢰인들의 삶의 흔적을 본다. 쓰레기 집 청소 의뢰인 8할 이상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인 것 같다. 약봉지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도 한동안 우울증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나 시달리는 배부른 증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청소 일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울증은 본인밖에 모르는 병이다. 그들도 집을 치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무기력증 때문에 도움 없인 못 치운다. 청소 의뢰하는 것조차 엄청난 결심과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다.” 유튜브 ‘클린어벤져스’ 시청자들은 무턱대고 의뢰인을 비난하는 악플을 달기도 하고, 진지하게 궁금해하기도 한다. “의뢰인의 사연을 들으면 그 사정을 이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의뢰인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 지난달 24일 클린어벤져스가, 우울증에 시달리며 집을 방치한 한 여성의 인터뷰를 담은 ‘헬프미 프로젝트, 그녀가 쓰레기 집에서 살았던 이유’ 영상을 올린 이유다. 클린어벤져스 8명이 7시간 동안 청소한 쓰레기 집 의뢰인이었다. 영상 속 의뢰인은 말했다. “그동안 계속 세상이 나를 넘어뜨리는 기분이었는데 (청소 도움을 받고)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주는 기분을 느꼈다.”

클린어벤져스는 급기야 1월21일 공개 발표했다. 사연을 받고 의뢰인을 선정해 쓰레기 집을 무료로 청소해 주기로 한 것이다. 유튜브 방송 수익은 한 달 평균 150만원가량, 편집자 인건비와 청소비를 빼고 나면 남는 장사가 아니다. 이 대표는 “돈은 없어도 청소 노동력은 기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공짜로 청소해 준다고 생색내고 싶진 않다. 선한 영향력이 선순환되어 돌아올 거란 믿음이 있다. 기부도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 끝내면 으쓱해져요

‘쓰레기 집 청소 방송’에 구독자가 6만명 이상 몰려든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고 보다가 마지막엔 환한 미소를 띤다는 댓글이 많다”며 “막막하게 더러운 곳을 결국 깨끗하게 해결하는 과정을 보며 대리만족과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청소를 마치면 으쓱해진다. 의뢰인들 반응 때문이다. “문자메시지로 청소 전후 사진을 보내주면 전화를 걸어와 흐느끼며 울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어렵게 쓰레기 집 청소를 의뢰한 이는 최근 스스로 청소한 냉장고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럴 땐 왠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는 청소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등산과 비슷하다. 땀나고 힘들고 어려워도 마지막에 현관에 서서 깨끗한 집안을 들여다보면 산 정상에 서 있는 기분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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