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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비건 구내식당은 어디? 대검 식당도 맛나

등록 2020-03-27 09:49수정 2020-03-27 09:52

구내식당 기록하는 블로거 앤디
지난 1년간 수도권 일대 150여곳 다녀
소박하면서 정갈한데 값도 싸
동국대 채식당 최고의 맛
경찰서나 대검찰청 구내식당 방문 때는 떨리기도
코로나19 종식되면 투어하시길
연세대 학생회관 식당 '고를샘'의 '치킨 바비큐 필라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연세대 학생회관 식당 '고를샘'의 '치킨 바비큐 필라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오늘은 어디서 뭘 먹지? 일터 근처에 밥과 국, 두세 가지 반찬이 매일 바뀌는 구내식당을 알아두면 끼니 고민은 덜 수 있다. 지난 17일. 외부인도 이용 가능한 구내식당을 돌아다니며 기록하는 이를 만났다. 끼니를 구내식당 밥으로 해결하는 그는 ‘구내식당 탐험가’다. 그를 통해 40x30㎝ 사각형 트레이를 마주하면 얻는 소소한 기쁨에 관해 알게 됐다.

오랜만에 ‘학식’(대학교 학생식당 음식)을 먹으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을 찾았다. 대학 캠퍼스는 한산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이는 ‘구내식당 기록자’인 블로거 앤디(필명·33). 연세대는 학내 식당 10곳을 운영한다. “3200~6200원인 일품 메뉴를 취급하는 ‘고를샘’은 파스타 메뉴 때문에 커플이 자주 찾는 곳이다.” 졸업생인 그의 추억이다.

대학 구내식당 밥상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른한 햇볕이 내리쬐는 교내 벤치에 앉았다. 지난해 2월부터 앤디가 다닌 수도권 일대 구내식당은 150곳이다. 그는 구내식당 탐방 후기를 올리는 블로거다. 그의 블로그 이름은 ‘다락 환상곡’. 중앙도서관이든 검찰청이든 구내식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꼼꼼하게 리뷰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현재 그는 코로나19 여파로 공공기관 구내식당 탐방은 쉬고 있다.

그에게 취재요청을 하자, 그동안 방문한 구내식당 정리 보고서가 왔다. 자료 중에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구내식당의 층수 통계였다. ‘구내식당 위치 찾는 법’에 대한 질문의 답이었다. 150곳 중 절반이 넘는 54.9%가 지상층에 견줘 임대료가 싼 지하에 있었다. 눈에 잘 안 띈 이유다.

그가 궁금했다. 왜 하필 구내식당 투어를 하는 걸까? “경영학을 전공한 후 관련 업종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여느 음식 블로거처럼 그도 처음에는 노포(오랜된 가게)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직장인일 때 안식처였던 ‘한국프레스센터’ 구내식당 얘기를 블로그에 올렸더니 검색한 이가 늘었다고 한다. 평범한 구내식당에 관심 있는 이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용하게 구내식당을 탐방하는 이들을 알게 됐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댓글로 얘기 나누고 식당 추천도 받으면서 이 일이 즐거워졌다. 직장생활도 마무리한 터라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닌다.” 관심사가 같은 이들과의 소통이 그를 ‘구내식당 기록자’로 변신하게 한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 구내식당도 추천받아 간 곳이다. 불광천을 산책하고 사비나미술관에 들렀다 식당을 가라는 ‘이웃’의 세심한 조언에 안 가볼 수 없었다. 정갈하고 소박한 점심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애초 구내식당을 찾게 된 사연은 따로 있었다. 그는 직장에서 인간관계로 부대낄 때마다 점심시간을 탈출구로 삼았다. “회사 사람들과 엮이는 게 괴롭고 동기 몇 명을 제외하면 밥 같이 먹는 것도 싫었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아내가 걱정할까 봐 티도 못 냈다. 무심하게 혼밥 하는 공간이 휴식처가 되더라.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구내식당을 찾아다녔고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이제 구내식당 전문가다. “좁은 개념의 구내식당은 구성원의 복지를 위해 운영하는 곳과 공공기관이 외부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마련한 식당으로 나뉜다. 개념을 넓히면 오피스 빌딩에 있는 셀프서비스 한식뷔페까지 포함할 수 있다. 입주 기업과 일반인 상대로 운영하는 영리 목적 식당이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의 풍모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고독한 구내식당 미식가’.

다닌 곳 중 ‘엄지척’ 할 만한 곳을 물었다. 맛 품평이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 전망 얘기를 한다. “대부분 지하에 있다 보니 창이 있는 전망 좋은 구내식당이 기억에 남는다. 종로세무서 8층 구내식당은 한옥마을이 보여서 좋다. 명동 한진빌딩 26층도 명동이 시원하게 보인다. 여의도 한화금융투자 23층에도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식당이 있다. 커플이면 남산을 산책하고 남산도서관 구내식당의 돈가스를 먹는 게 좋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안 해도 되는 때가 오면 가길 권한다.”

동국대 채식당의 비건 뷔페. 사진 블로거 앤디 제공
동국대 채식당의 비건 뷔페. 사진 블로거 앤디 제공

그의 기록은 담백하다. 늘 빠지지 않는 식권 사진,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는 음식 사진 등은 흐뭇한 미소를 부른다. 어제도 오늘도, 네모난 쟁반이 반복된다. “일상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소소한 재미를 만나게 된다. 구내식당도 그렇다. 지하철 역사 안에 가마솥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나. 지금 영업을 안 하지만, 서울역 4호선 역사 구내식당에 우연히 갔다가 가마솥을 걸고 조리하는 모습을 봤다. 시래깃국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송파도서관 구내식당에는 전직 중국집 주방장이 있다고 한다. “안내문에 중화요리가 맛있다는 자랑이 적혀있다. 입에 묻은 양념을 닦아가며 짜장면을 먹으려니 도서관에 있는지 중국집에 있는지 구분이 안 됐다. 적당히 짜장소스를 묻힌 저렴한 급식용 짜장면과는 달랐다. 네모난 플라스틱 쟁반까지 금색이라서 중국집 분위기가 더 났다.”

종로경찰서 구내식당. 사진 블로거 앤디 제공
종로경찰서 구내식당. 사진 블로거 앤디 제공

메뉴로 그가 놀란 곳은 동국대 채식당이었다. “보통 구내식당은 음식을 대중의 기호에 맞게 대량으로 만든다. 기업 구내식당은 세트에 일품 한두 가지만 더한다. 푸드 코트인 곳도 있다. 이 정도가 일반적인 시스템인데, 채식당은 구내식당에서 구현하기 힘든 비건 뷔페다. 구내식당계의 ‘럭셔리’다.” 9000원이면 구내식당치곤 다소 비싼 가격이라서 비판할 법도 한데 그는 “끝내주는 식사”이었다고 평했다. 상권이나 규모가 특징인 곳도 있다. “판교테크노벨리, 구로·가산디지털단지처럼 많은 중소기업이 입주한 오피스 빌딩에는 한식뷔페 형태의 구내식당이 있다. 경쟁도 치열하다. 잔치국수를 기본 제공하거나 탄산음료 리필 바를 운영한다.”

구내식당계의 김삿갓처럼 여러 곳을 다니는 그도 컨디션이 좋은 날만 가는 곳이 있다. 용기가 나는 날이다. 그래서 가는 곳이 경찰서 구내식당이다. “죄인이나 그런 이를 잡는 사람이 가는 경찰서는 일반인들이 방문하기에 부담스러운 공간”이라며 “밥 먹으러 왔다고 하기가 좀 멋쩍기도 하다.” 그는 경찰서 구내식당을 처음 찾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첫 방문 때 긴장해서 쭈뼛거리고 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일반인들이 당당하게 찾아가더라.” 그도 용기를 냈다. “인테리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고 ‘드라이한 공간’이란 게 특징인데 가격이 4000원대로 저렴한 게 장점이다.”

송파도서관 구내식당 짜장면. 사진 블로거 앤디 제공
송파도서관 구내식당 짜장면. 사진 블로거 앤디 제공

부담스럽기로 치면 대검찰청 구내식당도 마찬가지다. 정문 안내원이 “어떤 용무로 오셨냐”고 묻는 대검찰청에서 그는 “식사하러 왔다”고 답했다. “본관과 구내식당이 있는 별관을 잇는 구름다리가 눈에 익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보도사진이 생각났다. 사진기자들이 어느 위치에서 찍었는지 알겠더라.” 마침 그가 방문했던 지난 3일은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증폭되던 무렵이었다. “대검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데 티브이에서 검찰을 강하게 비판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등장했다. 뉴스의 중심지에서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식사의 질도 엄청 좋아 맛났다.” 현재 공공기관 구내식당은 코로나19 때문에 외부인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대검찰청 구내식당 `아람'의 음식. 사진 블로거 앤디 제공
대검찰청 구내식당 `아람'의 음식. 사진 블로거 앤디 제공

구내식당 경험이 늘 좋지만은 않았을 터. 캐물었다. 그는 “저렴하게 먹는 한 끼를 두고 불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불쾌한 기억이 있을 터인데 말이다. “모 도서관 구내식당은 규모가 아주 작았는데, 메뉴가 너무 많았다. 일단 제육덮밥을 골랐는데, 선도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비계에 유통 인증 글씨까지 찍혀 비위가 상했다. ‘차라리 메뉴 수를 줄여 질을 올리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곳은 단 한 곳이었다고 야무지게 말하는 그는 “트레이 위 소박한 한 끼를 마주하는 때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소형 중고차를 사 전국 구내식당을 다니는 것이 지금 나의 꿈이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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