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물원의 식물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식물 기르기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 인터넷에서 얻는 식물 기르기 정보 가운데 믿을 만한 정보는 10%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정철 서울식물원 식물연구과장(농학박사)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정철 과장은 자그마치 50만4000㎡ 규모의 서울식물원 안 식물들을 돌보는 총책임자다. 그가 알려주는 식물 잘 기르는 법은 알뜰하다. ‘그린핑거스’(식물을 잘 기르는 능력을 갖춘 사람)가 되고 싶다면, 그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말자.
“식물 기르기에 정답은 없다. ‘물 주기’만 해도 물 주는 습관, 토양 상태, 식물이 놓인 자리에 따라 다 다르다.” 이정철 서울식물원 식물연구과장은 단호하게 답했다. 정답은 없지만, 오답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나도 정말 여러 번 식물을 죽여 봤다.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 책도, 논문도 재배 상황에 따른 의견을 자세히 제시 하지 않아서 틀린 내용이 많다. 경험하고 실험해봐야 안다. 식물을 어떻게 하면 잘 기를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식물을 여러 번 죽여보라고 한다.” 이정철 과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자면 식물을 일단 죽여보는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이미 식물을 많이 죽여 본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로 식물 살리기에 도전해보도록 하자. 식물 저승사자가 되지 않고 그린핑거스가 되는 길, 의외로 어렵지 않다.
Q 실내에서 어떤 식물을 기르는 게 좋을까?
A 각자 길러보고 싶은 식물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전에 식물이 잘 자라는 환경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걸 가늠하기 위해서 ‘로즈메리’를 키워볼 것을 추천한다. 로즈메리는 실내 공간의 지표식물 가운데 하나다. ‘풀’로 알고 있지만, 목본성 식물이어서 환경이 잘 갖춰지면 2m도 넘게 큰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 부분이 과습해서는 안 되고, 통기가 잘 되는 곳에서 길러야 하며 빛 조건도 좋아야 한다.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라는 허브 식물이어서 공기 중 습도가 40~50% 정도 되어야 한다. 로즈메리가 잘 자라면 웬만한 식물은 다 잘 자랄 수 있다. 평소 가습기를 틀어야 하는 실내 환경이라면 일반적인 식물보다 다육 식물이나 선인장, 저광도의 건조한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길러보기를 추천한다.
이정철 서울식물원 식물연구과장이 식물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Q 식물을 키우려면 창이 남향으로 난 집이 가장 좋은가?
A 남향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남향은 일사량이 많아서, 햇빛이 베란다 창 등 유리를 통과해 복사열이 발생하게 된다. 이 복사열로 식물이 익는다. 나는 동향 또는 남동향으로 창이 난 곳을 선호한다. 피해야 할 집은 ‘서향’이다. 서향은 ‘광질’(빛의 질)이 좋지 않아서다.
Q 광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A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 대부분은 ‘광도’(빛의 세기)만을 고려하는데 식물은 ‘광질’이 더 중요하다. 빨간색이나 파란색의 빛이 식물에 더 이로운 광질이다. 그 아래에서 광합성이 더욱 활발하다. 실내등으로 쓰는 형광등에는 식물에게 불필요한 빛이 많이 포함돼 있다. 별도로 식물등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에 있는 독서 스탠드 등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식물등을 만들 수 있다. 스탠드에 빨간색이나 파란색 셀로판지를 덧대어 식물에 쬐어주면 된다.
서울식물원의 식물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Q 4월5일 식목일이 곧 다가온다. 그즈음 식물을 들여 키우기 시작하면 좋을까?
A 아니다. 식목일이 정해진 게 71년 전이다. 70년 전과 오늘날의 기후가 많이 달라졌다. 30년 전과 비교해도 기후 변화가 크다. 그 당시는 겨울이면 서울에 눈이 30㎝ 이상 내릴 때가 많았고, 요즘보다 더 추웠다. 그때는 4월5일 즈음 나무를 옮겨심기 좋았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아니다. 본엽이 나오기 전 순 상태로 있을 때 나무를 심어야 식물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데, 이제 4월5일 즈음이면 본엽이 다 나온 상태다. 식물 기르는 활동을 하기 좋은 시기는 몇 월 며칠로 정해두기보다는 ‘야간 기온’을 따지도록 하자. 야간 기온이 3도 이상이면 대부분의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고, 10도 이상이면 어떤 식물이든 잘 큰다. 사람이 활동하기 좋은 때가 식물에도 좋다.
Q 화분의 종류가 참 많다. 어떤 화분을 쓰는 게 좋을까?
A 인테리어를 위해 철제나 도자기 화분을 쓰는 분들이 있다. 가벼워서 플라스틱 화분을 쓰기도 한다. 이 화분들은 식물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철제 화분은 외부의 열을 뿌리에 전달해 뿌리가 익어버린다. 뿌리가 잘 뻗어나지 않는다. 뿌리가 자라지 않으면 지상부(토양의 윗부분)도 잘 자라지 않는다. 사기나 플라스틱 화분은 뿌리에 산소 공급이 안 된다. 무겁고 깨지기 쉽지만, 토분을 쓰는 게 좋다. 식물의 지하부는 곧 지상부의 생장과 직결되므로 토양을 담는 화분은 매우 중요하다.
서울식물원에서 펴낸 책 <궁금한 식물, 알고 싶은 정원>.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Q 식물이 자라는 토양의 온도도 신경 써야 하나?
A 뿌리 부분의 온도가 30도가 넘으면 식물이 자라는데 다소 문제가 생긴다. 토양 온도의 원칙은 ‘공기 중의 온도와 토양 온도가 같으면 안 된다’이다. 지상부의 온도가 높아도 토양 근권 온도(뿌리 근처 토양의 온도)가 낮으면 괜찮다. 대부분 식물을 실내에서 화분에 심어 키우는데, 실내 온도에 노출되면서 토양 온도가 올라간다. 토양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하려면 물을 분무해 주거나 화분을 대나무발과 같은 것으로 가려 열 차단을 하는 것도 좋다.
Q 미세먼지 때문에 오래 환기하기가 어렵다. 식물을 기르는 데 통기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
A 앞서 이야기한 토양 온도 조절을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흐르는 공기, 바로 ‘바람’이다. 실내에서 가장 시원한 공기는 바닥 쪽에 가라앉아 있다. 이 바닥의 시원한 공기를 바람으로 일으켜 순환시키도록 하자. 선풍기나 서큘레이터를 사용해 바람을 일으키면 된다. 여름이면 사람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소형 선풍기도 식물에 큰 도움이 된다. 소형 선풍기에 몇천원짜리 다이얼 타이머를 연결하면 훌륭한 통기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 통기로 병해충의 집단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
서울식물원의 식물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Q 거름이나 비료는 어떻게 주는 게 좋을까?
A 생식 생장을 활발하게 하는 식물은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한다. 열매를 맺거나 큰 꽃을 피우는 식물은 거름이 무조건 필요하다. 식물에 꼭 필요한 질소, 인산, 칼륨이 든 화학비료도 액체비료 등의 형태로 최근 가정에서 많이 쓴다. 그러나 화학비료 이용은 최소화하도록 하자. 계속 화학비료를 공급하다가 이 공급을 끊으면 식물이 생장을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화학비료는 되도록 적게 쓰고, 집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비료를 만들어 쓰면 된다. 커피 찌꺼기가 대표적이다. 커피 찌꺼기에는 질소, 인산 등 식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러나 커피 찌꺼기를 그대로 식물에 부어 써서는 안 된다. 특히 커피 찌꺼기에는 질소가 식물이 필요한 양보다 많게는 50배 이상 함유하고 있어서 그대로 부어 비료로 쓰면 오히려 식물의 생육이 저해되어 말라비틀어진다. 아주 소량의 커피 찌꺼기를 흙에 섞어서 써야 한다.
이정철 서울식물원 식물연구과장은 "식물 기르기에 정답은 없다"라고 말한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Q 물은 토양 상태에 따라 주기만 하면 될까?
A 식물도 트레이닝하기 마련이다. 만약에 내가 어떤 식물에 날마다 물을 줬다면 식물은 그것에 맞춰서 그 물을 매일 다 쓰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갖춘다. 내일 또 물이 들어올 거니까. 그런데 만약 내가 일주일 해외여행을 가느라 식물에 물을 주지 못하고, 돌아와서 물을 흠뻑 주면 어떻게 될까? 일주일 사이 적은 물의 양으로 버텨야 하는 쪽으로 시스템이 바뀌어 물을 줘도 제대로 흡수하지 않는다. 또 언제 물을 줄지 모르니까. 반려동물 기르는 것과 똑같다. 반려동물은 밥과 물을 달라고 보채기라도 하지만 식물은 소리도 못 내지 않는가. 식물의 종류, 환경 조건 등을 고려한 규칙적인 물 주기로 수분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가장 현명한 물 주기 방법이다.
Q 아파트 실내는 건조해지기 일쑤다. 식물이 자라기 좋은 공기 중 습도를 맞춰주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A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김장용 비닐을 사라. 보스턴고사리처럼 습도가 높아야 하는 식물이 담긴 화분을 김장용 비닐로 감싸면 끝. 출근하기 전에 이렇게 화분을 감싸 놓으면 습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습기가 증발하면서 비닐 내부에 물방울이 맺혀 다시 토양 위에 떨어지면 저절로 수분 공급이 되기도 한다. 퇴근하고 감쌌던 비닐을 벗겨주면 싱그러운 상태를 유지한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