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숙헤어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홍성숙씨가 미용실에 있는 식물에 물을 주고 있다. 이정연 기자
식물 덕후 사이에 떠도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미용실과 부동산중개업소 중에는 식물 가득한 곳이 많을까? 이 궁금증을 접하고 나니 기자의 머릿속에도 물음표가 가득하다. 실제 지난 3월 중순 일주일 동안 회사와 집 근처 골목 구석구석을 다녀보니 과연 식물이 무성한 부동산중개업소와 미용실이 여럿이다. ESC가 식물 덕후들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봤다. 미용사와 부동산공인중개사 가운데 그린핑거스(식물을 잘 기르는 능력을 갖춘 사람)를 찾아 나섰다.
♣ 식물원이야 미용실이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앞 골목. 봄과 여름이면 꽃이 만발하는 곳이 있다. 채송화, 접시꽃, 붓꽃, 백일홍, 제라늄….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꽃이 피어난다. 식물 덕후들이 늦봄, 이 앞을 지나간다면 눈길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미용실에서 식물이 잘 자랄까?’라는 궁금증을 풀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홍성숙헤어스튜디오’를 15년째 한자리에서 운영하는 경력 32년 차 미용사 홍성숙씨를 지난달 19일과 26일 만났다.
홍성숙씨 미용실에 처음 문을 두드린 날은 지난달 19일이었다. 그는 말없이 한 가지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지난해 받아놓은 씨앗을 심고 있다”고 간단하게 답하고 홍씨는 씨앗 심기를 이어갔다. 미용실 앞에 있는 30여개의 화분에는 흙뿐이었는데, 이제 각양각색의 꽃들로 채워질 채비를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보기 좋게 키 순서대로 심는다. 맨 앞줄에는 채송화를 심고, 그 뒤에는 당근, 맨 뒤에는 붓꽃 이런 식으로 심는다.” 3열로 놓인 큰 화분에 씨앗 담은 주머니를 착착 놓고, 모종삽과 맨손으로 흙을 한 겹 걷어내고 씨앗을 살살 뿌린 뒤 다시 흙을 덮는다. “씨앗을 심을 때는 깊이 심지 않는다. 어차피 새순이 올라오면 다시 옮겨 심을 거라서. 뿌리 내리고 옮겨 심을 때는 좀 깊이 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름에 뿌리가 다 말라버린다.”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은 하나 빼놓을 게 없는 알짜배기 조언들이다.
맨드라미 씨앗을 심고 있는 홍성숙씨. 이정연 기자
지나가던 어르신이 반갑게 묻는다. “인자 또 뭐를 심는당가? 그 손은 못 하는 것이 없어. 머리도 만지고, 이런 것도 잘 키우고. 뭐든 잘 되는 손이랑께.” 오가며 안부를 묻는 단골손님들도 곧 피어날 꽃들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듯하다.
미용실 바깥의 화분은 이제 씨앗을 품었지만, 실내 공간으로 들어가면 ‘식물원’이 따로 없다. 사철 푸른 식물들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남동향 창 안쪽에 자리 잡았다. 지난달 26일 다시 홍씨의 미용실을 찾은 기자는 화분 수를 세어봤다. 실내에는 120여개, 실외에는 30여개의 화분이 있다. 모두 150개의 화분이 저마다 식물을 품고 있다.
그린핑거스 홍성숙씨의 손에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여기가 남동향이다 보니 워낙 빛이 좋아서 잘 자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꽃을 정말 좋아해서, 해마다 심고 키우기를 반복했더니 어느새 이렇게 많이 키우게 됐다.” 홍씨는 먼저 미용실 위치가 식물 키우기에 적합한 점을 이야기했다. 물과 거름 등을 제때 거르지 않고 주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비결이다. “1000원짜리 하얀 가루로 된 비료가 있다. 그걸 물에 타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준다. 실내에 있는 식물은 물을 봄에 일주일에 한 번, 여름에는 이삼일에 한 번 준다. 바깥에 있는 건 봄에는 이삼일에 한 번, 여름에는 아침저녁으로 준다. 여름에는 물기가 금방 말라버려서 물을 흠뻑 자주 줘야 한다.”
홍성숙씨가 새싹을 틔운 나리를 돌보고 있다. 이정연 기자
홍씨의 미용실 안에는 미용 약제 냄새가 옅다. 공기정화에 탁월한 식물들이 120여개 있다 보니 그 냄새가 짙지 않다. 홍씨는 “미용사들이 식물을 잘 키운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래도 온종일 한 공간에 갇혀있다는 생각에 갑갑해서 식물을 기르는 미용사가 많다. 나 말고도 주변 미용사 중에 식물 기르는 걸 좋아하고 잘 키우는 사람이 여럿이다. 식물 키우기가 취미인 미용사들은 서로 미용실에 방문해 식물을 자랑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라고 홍씨는 말했다. 그는 식물 기르는 것과 머리 만지는 게 비슷하다 여긴다. “머리든 식물이든 정성 들인 만큼 돌려준다. 머리카락은 각자가 노력하는 만큼 머릿결이 고와지고 건강해진다. 화초도 똑같다.”
홍성숙씨의 미용실은 식물 사랑방이다. 동네 주민들이 식물에 관심을 가지면 “가져다 기르라”고 분양을 해준다. “사랑방인데 좀 조용하긴 하다. 내가 수다를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찾아온 손님이나 동네 분들도 화초 돌보는 거 조용히 구경하고 가시곤 한다.” 때로는 식물 요양병원이 되기도 한다. “말라가는 식물이 있으면 우리 미용실에 두고 가는 손님도 있다. 일종의 위탁 돌봄을 하는 거다.(웃음) 며칠간 물을 주다 보면 별거 안 했는데도 잘 살아난다.”
두드림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서지유씨가 사무실 앞 식물들을 돌보고 있다. 이정연 기자
♣
소문난 식물 덕후의 부동산중개업소
“처음 키우게 된 건 개업 선물로 들어온 금전수였다. 아마 많은 부동산공인중개사가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식물을 키우게 되는 계기가 그게 아닐까 싶다.” 6년째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두드림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서지유씨의 자체 분석이다.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식물을 많이 기르시는 공인중개사 중에도 저마다 좋아하는 식물 ‘장르’가 다르다. 관엽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다육 식물을 키우는 분들도 있다. 나는 ‘꽃나무와 구근 식물 중 백합 같은 장르’를 좋아한다.” 그의 답을 듣고 고개를 돌리니 짙은 빨간색의 꽃을 한 송이 달고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동백나무다. 나무 자체는 키우기가 쉬운데 꽃 피우기가 정말 어렵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방문 일정에 맞춰 문을 열다 보니 서씨가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은 들쭉날쭉하다. 그런데도 그는 식물과 함께하는 시간을 꼭 확보해 둔다. “평소 워낙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소파에 앉아서 나무를 끌어안고 가지치기를 한다. 긴장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정신이 이완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이때 식물하고만 소통하면서 충전을 해놓아야 한다.” 그는 식물의 건강과 상태는 그것을 돌보는 사람의 컨디션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일상이 너무 바빠져 나를 돌보지 못하면 식물 역시 상태가 안 좋아진다. 그래서 식물 상태를 보고 내 상태를 체크하기도 한다. 힘든 시기를 지날 때 한동안 식물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게 바로 티가 나더라. 그때 정신 차렸다. 나를 돌보자. 그리고 식물들도. 그러면서 점점 식물을 아끼는 마음이 커지고 의지하게 됐다.” 두드림공인중개사사무소 안의 식물들은 여기저기서 반짝거리는 녹색 잎을 자랑하고 있다. 그걸 보고 서지유씨의 컨디션이 좋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바깥에 내놓은 화분도 여럿이지만, 실내에도 꽤 많은 화분이 놓여있었다. 쉼 없이 돌아가는 것 중의 하나는 실내 공기를 순환해주는 ‘서큘레이터’였다. “겨울에도 서큘레이터를 돌린다. 이걸 돌리지 않으면 겨울에 벌레가 잘 생긴다.” 서지유씨는 “꼭 식물 때문만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7일이나 사무실에 나온다. 나와서 매번 식물을 살피고 물을 준다든지 한다. 길게 여행을 떠나거나 할 때는 식물을 돌봐주는 분을 고용하기도 했다. 개도 기르는데, 개를 호텔에 맡기는 비용보다 더 들었다.(웃음)”
그는 식물 또한 ‘책임져야 할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서지유씨의 말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식물 죽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서씨가 키우는 식물에 대해 이토록 책임감을 갖게 된 건 식물이 많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식물에게 배운다. 겨울을 견뎌야지만 꽃을 피우는 아이들(식물들)이 있다. 온화한 기온의 실내에서만 키우면 꽃을 아예 피우지 않는 걸 알게 됐다. 어떤 식물이 시들해져 포기할까 말까 한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내버려 두었더니 다시 살아나더라.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식물 키우기도. 이런 식물의 지혜 덕에 힘든 일이 있을 때 더 의연해지고, 내일을 기대하게 됐다.”
서지유씨가 키우고 있는 다육 식물들. 이정연 기자
서씨가 식물을 잘 기르는 비결 가운데 하나는 ‘식물을 인테리어 요소로 보지 않는 것’이다. “식물도 살아있다. 환경을 따져서 적합한 식물을 들여야 한다. 실내 인테리어를 따져 식물을 배치할 게 아니라 식물이 좋아하는 환경에 맞춰 배치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강해서 쉽게 식물을 사거나 하지 않는다. 몇 년이나 고민할 때가 많다.” 서씨는 “이렇게 마음을 주며 키우다 보니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기르던 어떤 식물을 키우지 못하게 돼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는데 눈물이 나더라. 내가 이 정도로 식물을 사랑하고 마음이 아플 줄은 몰랐다. 그래도 입양한 식물들을 잘 키우고 있다며 지인들이 사진을 보내줄 때면 참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