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런치 박스>의 한 장면. 사진 ㈜피터팬픽쳐스 제공
인도 로맨틱 코미디 영화 <까립까립 싱글>(2017)을 봤을 때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저 사람이 남자 주인공이라고? 노안에 가까운 이목구비와 기름때로 뭉친 파마머리와, 대충 툭툭 던지는 말투 등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외모였다. 반감이 일면서 ‘난 외모지상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자부했던 나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티브이를 꺼버릴까? 다른 걸 볼까?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렇게 매력 있지? 개구리와 같이 툭 불거진 눈망울 안에는 어떤 인도 배우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부드러움과 선량함, 무엇보다 슬픔이 있었다. 2시간 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완전히 이 배우에게 빠졌다.
1967년생인 이르판 칸. 발리우드에는 유명한 3대 칸(샤룩 칸, 샬만 칸, 아미르 칸)이 있다. 세 명 다 부리부리하고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제 4의 칸인 이르판 칸은 부리부리 강렬함과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다. 대작의 강한 캐릭터도 멋지게 소화하지만, 내 눈에 그는 사소하고 예민하고 불안하고 내성적인 연기를 할 때 더 빛나 보였다.
족벌주의(Nepotism) 성향이 강한 발리우드에서 그가 자수성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더 좋아졌다. 인도 영화계는 대대로 한 집안 가족들이 ‘다 해먹는’ 족벌주의가 강하다. 그는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영국·미국 영화계에 진출한 후에야 고국에서 인정받은 역수입 배우다. 그가 출연한 <슬럼독 밀리어네어>(2009)와 <라이프 오브 파이>(2012) 등은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한몫한 영화들이다. 어릴 때 <쥬라기 공원>(1993)을 보러 갈 돈도 없었던 그가 20여년 뒤 <쥬라기 월드>(2015)에 출연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9·11 테러 이후 용의자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두 차례 구금된 일을 겪은 그는 크레디트 타이틀에 성 ‘칸’을 빼고 자신의 이름만 올리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검색한 뒤 본 작품은 <런치 박스>(2013)이었다. 이 영화에서 이르판 칸은 50대 아저씨 역인데, <까립까립 싱글>에서보다 무려 30살은 많아 보였다. 여러 연령대를 넘나드는 그의 연기에 감탄했다. 그가 대사를 읊으면 묘한 여백이 느껴진다. 그런 그의 연기는 <넘버3>과 <반칙왕> 시절의 송강호를 떠올리게도 했다.(공교롭게 두 배우는 1967년생 동갑이다.) <런치 박스>를 보고 난 뒤 나는 한참 울었다. 이르판 칸의 세밀한 연기가 나에게 ‘다 괜찮아. 사람들은 모두 가끔 행복하고 대부분 괴롭다’라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전형적인 발리우드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멜로다.
넓은 스크린에서 그를 영접할 날만 기다리던 2018년의 어느 날, 이르판은 ‘삶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줘야 할 의무는 없다’는 소설가 마거릿 미첼의 말을 인용하며 암 투병을 세상에 알렸다. 신경내분비계 희귀암이라고 했다. 많은 팬이 응원을 보냈다. 젊으니까 곧 건강을 찾을 줄 알았다. 심지어 치료를 받으면서 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월 진행한 개봉 프로모션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홍보 영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특유의 장난스럽고 낭랑한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영상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앤드 예스. 웨이트 포 미!(And yes. wait for me!”(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하지만 결국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낮잠에서 문득 깨 알게 된 그의 부고는 방금 꾼 꿈처럼 아련했다. 자신의 95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지만, 봉쇄령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 못했다는 뉴스가 나온 지 불과 4일 뒤의 일이었다.
종일 멍하니 이르판 칸의 영화만 봤다. 어리숙한 마라토너가 강도가 되어가는 <빤 싱 토마르>(2012), 소박한 택시 운전사로 나온 <피아이케이유>(PIKU·2015) 등을 말이다. 제일 좋아하는 <런치 박스>를 다시 보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더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를 그리워하는 추모 글이 인터넷 세상에 끝없이 달렸다. 일상을 연기했던 배우, 인도 중산층을 대변하는 아이콘, 오랜 무명 생활을 겪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 대체 불가능한 인도 국민배우, 겸손하고 담백한 철학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 등. 많은 이가 마치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것처럼 상실감을 느끼면서 그를 보냈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어.” 이르판 칸이 세상을 뜨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이다. 순간 스크린을 종횡무진 하던 대배우가 아닌, 수줍음 많던 소년 이르판 칸이 보였다. 오랫동안 그가 그리울 거 같다.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