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애사를 떠올리면 자다가 이불킥 하고 싶은 순간도 많지만, 모자란 사람 둘이 만나 둘만의 세상을 만들었던 기억만은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다. ‘연애’라는 단어에 더는 설레지 않아도 말이다.
연애할 때 처음 손을 잡거나 첫 키스를 하는 곳은 대부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다. 햇살이 밝게 비추는 확 트인 야외에서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은 채 키스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치기 어린 희망 사항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나 인도는 노골적인 스킨십이 가능한 나라다. 그것도 대도시 델리 한복판에서 말이다. 자연을 만끽하며 스킨십을 자유로이 나누고픈 연인들이 자주 찾는 ‘커플 천국’ 두 곳이 있다. 첫 번째 장소는 로디 가든이다. 15세기 델리에 자리 잡았던 이슬람 술탄 시대의 마지막 왕조인 로디 왕조의 정원이다. 중세 시대 제왕의 쇠락한 무덤이 있는 곳이다. 공원은 넓고, 유적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 다 둘러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첫 번째 무덤에 들어섰을 때였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돔 안에는 돌무덤 관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보호 차원의 주의도, 제재도 없었다.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한쪽 돌기둥 옆에 기대서 있던 한 젊은 커플이었다. 둘은 몸을 밀착한 채 키스를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고개를 숙이고 웃었고 나는 남의 방문을 잘못 연 것처럼 급하게 뒤돌아섰다. 묘하게 미소가 번졌다. 중세 시대 무덤 옆에서의 키스라! 죽음이 연상되는 곳에서 뜨거운 사랑이라! 더 절박하고 로맨틱하다.
무덤을 나와 벤치에 앉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로맨스물을 떠올리고 있는데, 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옆 벤치, 잔디밭 위, 나무 그늘 등 곳곳에 연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몸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착해 있었다. 낯 뜨겁다는 생각할 법도 한데, 인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커플 옆에서 공놀이하고 도시락을 나눠 먹고 있었다. “그게 인도의 다양성이야.” 친구 딤플은 내가 이런 광경에 혼란스러워하자 웃으며 말했다. “사리(인도 전통 복장)를 이불처럼 사용하는 사람도 있어.” 인도 전통 복장 사리는 입은 상태에서 늘어뜨리면 최소 2m는 된다. 길게 늘어뜨리면 5~9m 정도로 길다.
두 번째 장소는 ‘하우스 카스 공원’다. 하우스 카스는 일명 ‘인도의 홍대 골목’으로 소개되는 곳으로 카페, 맛집, 술집 등이 즐비하다. 좁디좁은 골목들을 미로 여행하듯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그중 한 작은 통로로 들어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것처럼 갑자기 푸르고 널찍한 잔디밭과 800여년 된 저수지와 유적이 눈앞에 펼쳐진다. 길게 늘어선 유적지마다 작은 창문이 돋보이는 방이 있다. 각 방에는 물론 커플들로 가득하다.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는 커플,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커플, 키스하는 커플 등이 있다. 800년 전 연인들도 이곳에서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갑자기 장렬한 사랑을 다룬 역사극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인도는 성에 대해 유례없이 보수적인 나라다. 여전히 중매결혼이 대세다. 하지만 결혼 전 자유로운 연애를 하거나 동거하는 커플이 느는 것 또한 현실이다. 최근 인도에서는 저렴한 모텔 ‘스테이 엉클’이 급성장 중이다. 젊은 커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도의 많은 숙소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의 혼숙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연인이 손만 잡아도 경찰이 벌금을 부과한다.
한창 서로에게 빠진 연인들만큼 오만한 사람들은 없다. 시간이 지나 유물은 무너지고 잔디밭도 흔적 없이 사라지면 아무리 오만한 연인들이라도 더는 그곳에서 서로를 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누고 함께했던 그 순간만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역사가 쌓여간다.
작은미미(미미시스터뮤지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