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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요가 선생님들 잘 지내나요?

등록 2020-05-20 20:03수정 2020-05-21 02:09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작은미미. 사진 작은미미 제공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작은미미. 사진 작은미미 제공

코로나19 봉쇄령 두달째. 현실 감각도, 몸도 무뎌져 간다. 매일매일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던 인도 확진자 현황판도 1만명이 넘어간 때부터는 눈에 안 들어온다. 1년간 진행하던 일이 몇 주 전 미적지근하게 끝나면서 졸지에 백수가 되었다. 마음은 괴롭고 시간은 넘쳐나던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뉴스에 함몰되는 대신 잡다한 노동에 몸을 쓰기로 결심했다.

‘달고나 커피’도 해 먹고, 파도 심고, 막걸리도 빚어 마셨다. 정성스레 키운 깻잎에 삼겹살도 싸먹고, 인도 밀가루로 수제비도 만들어 먹고, 칼국수 반죽도 밀고, 면역력에 좋다는 강황우유도 먹고, 치아시드도 불려서 먹고, 병아리콩도 밥에 넣어 먹었다. 마살라 가루로 커리도 만들고, 밥통에 치즈케이크도 익혔다. 집에만 있으니 에너지 소모는 줄어들었는데, 왜 그리 종일 입이 심심한지. 흐려지는 턱선을 보며 봉쇄령 이후 처박아 두었던 요가 매트를 꺼냈다. 유튜브를 보며 벽에 기대어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자니 문득 그간 만났던 인도 요가 선생님들이 눈앞에 스친다.

새벽 6시, 우리 집에 출장 요가를 왔던 파르드는 키 190cm에 알통 부자였다. 근력은 물론이고 유연성도 좋아서, 그의 요가 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얼이 빠진다. 그럴 때면 동거남이 “정신 차리라”며 역정을 냈다. 파르드는 발리우드 영화에서 악당의 오른팔로 출연한 후 영화 홍보 차 뭄바이를 다녀오겠다고 한 뒤 연락이 끊어졌다. 종종 한국 인디 음악을 선곡해서 강습 내내 들려주기도 했던 감성 몸짱 파르드는 지금 뭄바이에 있을까.

그다음에 만난 선생님은 차크라(몸의 일곱 군데 에너지 중심점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었다. 눈을 감은 채 한시간이나 몸의 기운을 느끼고자 앉아 있으려니 머리가 팽팽 돌 거 같았다. 나는 “좀 더 몸을 많이 쓰는 요가를 하고 싶다. (당신의 강습을 따라 하기에는)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는 말을 했다. 요가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던 그 선생님, 감히 코로나19도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오라(아우라)였는데, 건강하실까.

그다음 만난 로쉬카. 뉴욕에서 아쉬탕가 요가를 전공하고 인도에 돌아와 종합병원에서 요가 상담사로 일하던 젊은 선생님이었다. 아기 때부터 몸을 꼬고 잠을 잤다는 ‘본 투 비 요기’ 로쉬카는 미친 유연성과 잔근육으로 무장한 최강의 요가 선생님이었다. 문제는 강습생이 자신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몸 기운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아쉬탕가 요가는 강습 중간에 단 1초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 절대 무리하지 말고 자신의 몸에 맞게 하세요’라는 요가의 불문율은 로쉬카에게 통하지 않기에 수업 시작 전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오늘도 선생님은 나의 어떤 근육을 찢어버리려나!’ 양다리를 쫙 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로쉬카는 드디어 평생 죽어있던 근육이 살아났다며 기뻐했다. 로쉬카는 곧 뉴욕에 요가 학원을 연다며 날아갔다. 뉴욕에서 무사히 지내고 있기를.

그 뒤 만난 슈웨타 선생님은 피트니스와 요가를 접목해서 초심자도 따라 하기 수월한 요가를 가르쳤다. 요가 학교에 다닐 때 가장 친한 이가 한국인이었다는 슈웨타는 종종 만든 채소 튀김을 가져와 나눠 먹으며 함께 수다를 떨었다. 카스트(인도의 신분제)가 다른 남자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슈웨타의 이야기는 발리우드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슈웨타는 미미 시스터즈 노래 ‘우리, 다해먹자’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요가 교실이 폐쇄된 뒤에도 우리는 종종 집 앞 잔디밭에서 요가를 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금지되었다. 가끔 메시지로 나의 생사를 확인하는 슈웨타는 집에서도 요가를 하라고 하지만, 왠지 혼자 하는 요가는 맥이 빠진다.

요가 동작 물구나무서기는 복근도, 팔의 힘도, 다리 힘도 좋아야 버틸 수 있는 자세다. 벽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만 서고 싶지만, 자꾸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어, 될 거 같다, 된다, 된다’ 하면서 과도한 힘으로 다리를 휙 올리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그러고 나면 꼬리뼈가 으스러지게 아프다.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온다. 이 시국에 내 몸뚱이 하나 챙긴다고 뭐가 달라지나. 근육 쪼가리 조금 늘어난다고, 머리에 혈류가 돈다고 뭐가 달라지나. 달고나 커피가 성공하든, 칼국수가 맛나든, 세상은 달라지는 게 없는데.

이내 헝클어진 머리를 풀어헤치며 일어나 앉아 생각을 고쳐먹는다. 내일이면 뭔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 물구나무서기에 매달린다. 물구나무서기를 온전히 나의 힘으로 성공해야지 봉쇄령이 풀릴 거라는 되지도 않은 주문을 하면서 다시 매트에 머리를 박고 뒤집힌 세상을 바라본다.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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