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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칼럼] 청년들이여 가면을 써라

등록 2020-05-21 09:09수정 2020-05-21 09:50

[ESC] 허지웅의 설거지2
한 청년으로부터 받은 질문
가면 쓰고 사는데,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과거 가면 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나
이젠 달라진 나, 가면 쓰는 나
한국에서 청년, 염가로 거래되는 존재
단, 가면 안 써도 되는 친구 필요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여성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꾸고 싶다.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쓸 줄 아는 건 소중한 능력이다.

어렸을 때는 영원히 청년일 줄 알았다. 자연스레 주변에도 비슷한 친구들이 모였다. 낡고 부패한 것들과 우리와의 전쟁이었다. 언제나 그런 작당을 했다. 눈에 보이는 한국사회의 소위 어른스러움이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무례하고 음험하고 타락했다. 의전과 허례허식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규칙들을 한 무더기 만들어놓고 반드시 따르도록 강요했다. 규칙이 많을수록 그걸 강요하는 측의 권위는 올라갔다. 어른의 권위란 쓸모없는 규칙 천가지를 멋대로 만들어 그걸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감시하고 타박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었다.

입만 열면 언뜻 듣기에 근사하거나 쌀로 밥 짓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행동은 개차반이었다. 그게 가장 가증스러웠다. 거친 사람이든 유약한 사람이든 교양 있는 사람이든 천박한 사람이든 상관없다. 일관성만 있으면 된다. 사람은 다양하니까. 그런데 왜 말과 행동이 다르냐는 것이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선언했다. 선언 이름도 있는데 창피해서 도저히 옮길 수가 없다. 아무튼 요는 생각하는 대로 쓰고, 쓰는 대로 행동하자는 것이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서로 일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 정작 의도했던 바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살았다. 십년 가까이 그랬다. 빤히 현실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예 언급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썼다. 우리 편은 그래도 되고 남의 편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욕하는 이들을 조롱했다. 현실에서 결코 적용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적용될 일이 없는 종류의 사이비 도덕을 만들어 우주보안관처럼 타인을 심판하고 스스로 우월하다 착각하는 인터넷 구루 패거리들과 싸웠다. 자신의 삶에는 티끌만큼의 흠결도 없다는 듯 결코 지킬 수 없는 기준을 내세워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날을 세웠다.

모든 글은 내 일상을 사례로 들었다. 되도록 예의를 차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내용에 반박할 수 없는 이들이 주로 태도를 문제 삼는다는 걸 비웃기 위해 태도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으며, 기고를 하든 게시판에 쓰든 에스엔에스(SNS)에 공유하든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실명을 사용했다. 실명으로 쓸 수 없는 글이란 존재해선 안 됐다. 슬픈 이야기든 웃기는 이야기든 자폭하는 이야기든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든 반드시 실명이어야만 했다. 글을 쓸 때는 반드시 벌거숭이여야만 한다는 것. 위악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게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실명으로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그냥 쓰지 않는다. 내용만큼이나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전처럼 드러내놓고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웃는다. 비굴하게 웃을 때도 있고 상냥하게 웃을 때도 있다. 나는 이제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선언을 해도 좋고 맹세를 해도 좋으며 실험을 해도 좋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려고 삶을 거는 건 무식한 일이다. 슬픔을 나누면 행복이 되거나 최소한 슬픔이 쪼개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옳다고 생각하는 걸 실험하기 위해 실명으로 자기 삶을 공유해선 안 된다. 나는 10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 기간 동안 썼던 글 가운데 일부가 파편처럼 잘게 쪼개어져 실제 의미나 맥락이 제거된 상태로 돌아다닌다. 그리고 나를 폄훼하고 욕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예전 같았으면 내게 질문한 청년에게 대답했을 것이다. 가면을 벗고 솔직하라고 말이다. 매사에 벌거숭이로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숭고하고 옳은 일이며 세상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된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지금은 무척 건강하다. 하지만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마음을 늘 안고 산다.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회복한 이후에 쓴 모든 글이 그랬다.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기를 바라고 불행하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안 그래도 상처받을 일투성인 세상에 적어도 자초하는 부분은 없기를 바란다.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의 사사로운 이익에 헐값으로 팔려 다니지 않기를 바란다. 확실히 말한다. 너 혼자서는 세상 못 바꾼다. 청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근사한 수사에 현혹되지 말라. 마케팅이다. 하나의 의견이 공론화의 과정을 밟고 생각이 전혀 다른 집단 사이에 합의를 거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따른다. 그마저도 합의안이라는 것이 누더기일 가능성이 크고, 누더기에 다른 누더기를 보태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기까지는 굉장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그 가면을 버려서는 안 된다. 때와 장소에 알맞은 가면을 가려 쓸 줄 안다는 건 돈을 주고도 배우기 어려운 능력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본연의 있는 그대로를 강박적으로 드러내서 오해와 구설수를 살 필요가 없다. 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 이유도 없다.

가면을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가면 쓰고 살아가는 다른 이들이 부조리하고 부패해서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더 오래 버티기 위해 그러는 거다. 한국은 청년이 청년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공간이다. 한국만큼 청년의 치기 어림이 쉽게 공격당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만큼 청년의 시행착오가 용서받지 못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만큼 청년이라는 말이 염가로 거래되는 나라는 없다. 밥벌이를 하며 살아남아 세상을 바꿀 주체가 되려면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러니까 가면을 써라.

다만 가면을 쓴 채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미칠지도 모른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런 친구는 많을 필요가 없다. 사실 많을 수도 없다. 간혹 인맥을 주식 투자하듯 관리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반드시 후회한다. 내게는 가면을 벗고 있어도 좋은 친구들이 세 그룹 정도 있다. 서로 성격도 생각도 하는 일도 다른 사람들이다. 거기서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버티면서 언젠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친구들과 모색하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가면 안의 내가 탄탄하지 못하다면 가면을 쓰든 안 쓰든 아무 차이가 없다. 비빌 구석이 필요하다. 생각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등대 노릇을 해줄 어른을 만나 지혜를 빼먹어라.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런 어른을 갈망했다. 하지만 그런 어른을 식별할 밝은 눈이 없었는지 아니면 단지 운이 없었는지 평생에 인연이 없었다. 그럴 때는 이미 죽은 어른의 글에 기대도 좋다. 나는 그렇게 했다. 여의치 않으면 결코 닮고 싶지 않은 최악의 어른을 찾아내 그의 인생과 나의 선택들을 비교하며 늘 경계하는 것도 훌륭한 선택지다. 부디 청년들이 버거운 원칙이나 위악으로 스스로를 궁지에 몰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허지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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