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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그 밤 폭죽 소리만 또렷했네

등록 2020-07-03 13:51수정 2020-07-03 14:00

[허지웅의 설거지]
코앞까지 내려오는 천장 노려보다가
뺨으로 차고 단단한 바닥 느낀 그날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천장과 바닥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천장은 머리끝에 있고 바닥은 발끝에 있다. 둘 다 살면서 당연하게 스치는 공간이다. 그러나 막상 그게 뭔지 실감하게 되는 일은 많지 않다.

바닥이 있어야 세상이 땅 밑으로 꺼지지 않고 천장이 있어야 세상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지 않을 테니 천장과 바닥은 언제나 고맙고 필요한 내 편 같았다. 천장이 내려앉고 바닥에 뒹굴기 전까지는 말이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온다. 퀭한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고 누워 천장이 천천히 내려와 내 몸을 눌러오는 것을 느끼고 꼼짝없이 잠을 설치며 그것이 얼마나 무겁고 잔인한지 알게 되는 날. 바닥에 뒹굴어 뺨이 닿았을 때 광대 깊숙이 울림을 느끼며 그게 얼마나 딱딱하고 차가웠던 것인지 깨닫게 되는 날이 말이다.

천장과 바닥이라는 것이 호시탐탐 내가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숙적처럼 느껴졌던 밤에 관해 쓰기를 나는 여러 날 동안 망설여왔다. 사실 복기하고 싶은 기억이 아니다. 고통에 대해 소란스럽게 주절거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날 밤에 관해선 내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지난 글에서 언젠가 쓰기로 약속했고, 그게 언제일지 물어오는 독자들의 질문을 계속 무시할 수 없어 쓰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처음 림프종을 진단받았을 때 나는 그게 암이라는 것만 알았지 어떤 병인지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들의 기록을 찾아보면서 그들이 같은 진단명임에도 백혈병으로 분류되어 치료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백혈병은 들어봤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사실 지금도 정확히 안다고는 못하겠다. 아무튼 똑같은 혈액암이고 치료 방법도 같았다. 특정 부위에 암이 있는 게 아니라 온몸에 퍼져 있었다. 그러므로 수술은 불가능하고 약물로 치료해야 했다.

골수까지 병이 침범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드릴로 척추를 뚫으면서 나는 이 모든 게 아마도 별거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골수 검사를 하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러 번 봤는데, 그때 보면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아프지 않았다. 자신만만했다. 원래 고통에 무감각한 편이다. 참는 거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었다.

3차 항암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망가져 있다, 는 말을 내가 얼마나 쉽고 편하게 써왔는지 그때 알았다. 푹 자고 일어나 샤워를 한다고 해서 씻겨 내려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머리털과 눈썹이 사라진 건 고통 축에도 끼지 못했다. 단 하루만 통증 없이 잘 수 있다면 평생 머리털과 눈썹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항암 부작용이 사람마다 다르게 온다는 말은 여러 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고통을 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모양인지 내가 가장 혐오할 만한 부작용만 골라서 비처럼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온몸이 부어 물건을 집는 것도 힘이 들었다. 손과 발에서 감각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고 몸무게는 평생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숫자를 넘어섰다. 겉으로 보면 그보다 훨씬 더 비대해 보였다. 집에서 거울을 모두 치워버렸지만 씻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욕실 거울 속에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겨우 잠들 때까지 구역질이 계속되었고 딸꾹질이 사흘 동안 그치지 않기도 했다. 무언가를 삼키려면 한동안 노려보고 있다가 침을 여러 번 삼켜 토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 때 겨우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었다. 한번은 욕을 내뱉고 수저를 집어 던졌다. 항암 중에 먹지 않으면 정말 죽는다는 협박성 조언이 떠올랐다. 살고 싶은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뒤뚱뒤뚱 걸어가 수저를 줍고 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먹었다.

인간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히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삼키고 뱉고 싸고 자는 모든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아예 먹통이 되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정확히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변기 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배변할 수 없다는 걸 한 시간 만에 깨달았다. 그날 처음 울었다.

그러나 밤이 주는 고통에 비교하면 다른 건 참을 만한 것이었다. 밤은 끔찍했다. 늘 그랬다. 해가 지면 더 아팠다. 그러면 마약성 진통제를 먹었다. 해골이 그려져 있는 비닐을 뜯고 알약을 삼킨다. 정량을 먹어봤자 고통에는 거의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하나 더 먹기에는 비닐에 그려진 해골이 너무 크다. 그럴 때는 함께 처방된 수면제를 챙긴다.

수면제와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누우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내 삶에 고통을 안긴 사람들의 얼굴이 천장에 투사된다. 나를 배신하고, 기만하고, 속였던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내게 암을 심었다고 확신했다. 이자들이 천장에 맺혀 나를 내려다본다. 축축하고 무거워진 천장이 천천히 나를 향해 내려온다. 내려올 때마다 그들을 향한 원망과 증오도 한층 더 해진다. 수백번 자세를 바꾸어 외면해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마침내 천장이 코앞까지 전진해오고 질식하기 직전이 되어 나는 겨우 잠이 든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아파서 깨어난다. 다시 천장에 깔려 질식하기를 영원처럼 반복한다. 아침 해가 밝았을 때 나는 거의 죽어있다.

너무 당연한 결론이었다. 나는 어느 날 죽기로 마음먹었다. 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낫는다고 해도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고통을 참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거창하게 유언 같은 걸 남길 생각은 없었다. 간단하게 집은 엄마에게, 현금은 동생에게 남긴다고 썼다. 돈으로 돈을 버는 투자 같은 건 해본 적도 없고 해볼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정리가 간단해 좋았다. 마지막으로 청소를 하고 목욕을 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를 모두 먹었다. 이불을 잘 정리하고 그 위에 바로 누웠다.

이후의 몇 시간에 관해 뭐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몇 시간인지 몇분인지 조차 모르겠다. 겪은 대로 쓰기에는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고 무엇보다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그렇게 잠들었다 일어나기를 몇 번 반복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일어났을 때 뭔가를 들었다.

폭죽 소리를 들었다. 그건 분명히 폭죽 소리였다. 밖에서 들리는 흐리고 탁한 소리가 아니었다. 방 안에서 터진 듯 정확하고 또렷한 폭죽 소리였다. 그날 밤에 또렷하고 정확한 것이라고는 그 소리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누웠지만 잠들지 않았다. 혼란스럽고 무서웠다. 내가 지금 대체 무슨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는 거냐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아마도 미친 소리 같겠지만, 평소 나를 괴롭혀왔던 특정한 삶의 문제에 관해 이상할 정도로 구체적인 확신이 떠올랐다. 이건 나만의 비밀로 남겨두겠다.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더 이상 위액조차 나오지 않을 때까지 오랫동안 모든 걸 토해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다시 목욕을 했다. 휘청거리다 넘어져 욕실 바닥에 얼굴이 닿았다. 뜨거운 물이 틀어져 있는데도 바닥은 차고 단단했다.

그게 그날 밤의 전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다시 켰다. 방송을 하면서 알게 되었던 형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그냥 안부 문자였다.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불과 몇분 전까지 이길 수 없는 문제들에 함몰되어 포기하고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일상적인 삶의 궤도 위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 보통의 감정을 느낀 건 항암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었다.

동이 트자마자 나는 병원에 갔다. 몇 가지 진찰을 하고 부작용들에 관해 약을 더 처방받았다. 이제는 내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알고 있으니 항암을 할 때마다 미리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평소 좋아하는 음식들 위주로 더 열심히 먹었다. 나는 살기로 결정했다. 병과 싸우는 게 거짓말처럼 수월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게 벌써 1년 전이다. 전보다 건강하고 전보다 긍정적이며 전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확신이 있다. 내가 그날 밤에 겪은 일 때문이 아니다.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전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 내가 보았던 천장과 바닥을 감당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 어둡고 축축한 구석을 오랫동안 응시하며 정확히 뭐라고 호소해야 할지 조차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피해의식과 절망과 비탄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애꿎은 주변을 파괴하며 오직 비관과 자조만을 동행 삼아 이 모든 건 결코 바뀌지 않을 거라 믿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할 거라고 말이다. 여러분의 고통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기만이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천명에게 천 가지의 천장과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 못해 관성과 비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이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적어도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그 밤은 여태껏 많은 사람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허지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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