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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가오리나 먹으러 가오리까

등록 2020-05-22 13:32수정 2020-06-19 09:53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밥반찬과 술안주의 경계는 어떻게 나눌까.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이 없다고 생각한다. 밥에 먹으면 반찬, 술에 먹으면 안주지. 가오리무침이 그랬다. 서울서 살았던 나는 어려서 집안 잔치에 가면 흔하게 홍어무침이 나온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는 밥에 먹었다. 이제는 술에 먹는다. 그게 진짜 홍어였는지, 가오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말씀으로는 “그때는 홍어였지”라고 하시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연평도, 백령도 같은 서해에서 홍어가 많이 잡혔으니까. 겨울에 주로 먹는 생선이라 상할 걱정 없이 서울까지 오고도 남았으리라. 사람들은 가오리와 홍어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비싸면 홍어라는 말도 있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었던 시절이라, 대충 뭉개고 갔을지도 모른다. 홍어는 숙성회로, 가오리는 날 회나 찜으로. 요즘 구별은 대충 그렇다.

여담이지만, 흑산도 홍어와 연평도 홍어가 같은 식구란다. 날개를 펄럭이며 서해에서 남해까지 해저를 훑고 다닌단다. 옛날엔 잔치용 홍어무침 말고도 회냉면을 많이 먹었다. 예전에는 진짜 홍어를 올렸을 수도 있다. 요즘 회냉면에는 ‘홍어회냉면’이라고 쓰고, 밑에는 ‘가오리 수입산’이라고 조그맣게 써놓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엄밀히 말해 가오리를 홍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가오리는 홍어, 우리가 홍어라고 하는 건 참홍어로 나누기 때문이다. 이런 골치 아픈 건 수산학자에게 맡기자.

좋은 계절(겨울에서 초봄까지)에 홍어는 정말 맛있다. 몇 달 전에 연평도 홍어를 받아서 굽고 회 쳤다. 흑산도 홍어 굳이 찾을 일이 없다. 산지가 달라서 값은 훨씬 싸다. 그 홍어회, 홍어무침 맛이 삭 돈다. 침이 흐른다. 아직은 시장에 가오리(간재미)나 홍어, 노랑가오리가 나온다. 살아 있거나 생물이다. 회, 회무침, 찜이 두루 좋다. 시장에 있으면 무조건 사시라. 먹다 남으면 냉동해도 된다. 얼려도 크게 맛이 떨어지지 않는 생선이다. 언젠가 한겨울, 강진이나 통영에서 노랑가오리회를 먹었다. 가장자리 날개(실은 지느러미) 쪽에 노란빛이 물들어 있는 가오리다. 이놈은 살점이 좀 다르다. 분홍 살점 사이사이 호랑이 얼룩처럼 붉은빛 반점이 가는 붓으로 그린 듯 쿡쿡 박혀 있다. 칼을 잘 갈아서 얇게 저며 보시라. 마늘을 편으로 저며서, 초장이나 된장에 푹 찍어 먹는다. 혀가 녹는지, 노랑가오리살이 녹는지 헷갈린다. 탱탱하게 꿈틀거려서 입에서 요동친다고 착각을 한다. 강진에선 묵은지를 같이 내던데, 좋다. 김치냉장고에 곰삭아가는 김장이 있지 않은가. 김치에 싸서 한 점, 기름 소금장에 한 점, 초장에 한 점, 된장에 한 점. 그리고 기절.

홍어와 가오리(간재미), 노랑가오리의 맛을 비교해 보는 건 어렵다. 산지, 개체의 특성, 계절 요인이 다 걸린다. 하나를 꼽으라면 물론 국내산 생홍어다. 흑산도 것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다음으로는 노랑가오리, 가오리 순이 아닐까. 가격순이기도 하다. 값은 맛에 영향을 준다. 심리적 부분이다. 서해산 홍어는 대개 흑산도산에 견줘 가격이 절반이다. 1㎏당 2~3만원선이다. 물론 클수록 단가가 오른다. 노랑가오리는 산지 직송 가격이 1㎏당 1만5000~2만원선이다. 수입 가오리는 1㎏당 1만원선. 참고하시라.

홍어나 가오리는 무침으로도 좋다. 살짝 팁을 드리는데, 포털에 산지 직송 거래하는 카페가 있다. 검색하면 산지의 업자가 막 잡은 놈을 손질까지 해서(추가금 있음) 배송한다. 오늘 보내면 내일 온다. 싱싱한 놈은 애(간)도 보낸다. 홍어만 애를 먹는 게 아니다. 가오리 계열도 먹는다. 물론 기름장에 고춧가루 살짝 뿌려서 먹는 걸 추천한다. 손질한 살점을 회나 찜으로 먹고, 무침도 된다. 무침은 인터넷으로 막걸리 식초를 사서, 제법 산지 기분을 내도 좋겠다. 나는 귀찮은 건 안 좋아한다. 간단한 조리법을 찾는다. 시판 초장을 구한다. 시판 초장 3, 진간장 1의 비율로 섞고 참기름과 다진 마늘 약간. 미나리와 오이, 무채를 있는 대로 썰어 넣으면 완성체에 가까워진다. 썬 가오리를 슬슬 섞어서 무친다. 배나 양파를 넣어도 좋다. 단맛이 적은 막걸리를 사서, 곁들여 먹자.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먹는 송별 술자리다. 자, 한 잔 들게.

국내산 가오리를 통째로 사지 않아도 된다. 수입 가오리가 덩어리 상태로 인터넷에서 팔린다. 수산시장에 가도 흔하다. 냉동을 사면 해동해서 깨끗하게 씻어서 무침으로 쓸 수 있다.(회는 곤란하다.) 게다가 껍질도 벗겨져 있다. 시중 함흥냉면집 회냉면은 열이면 아홉이 이 수입 가오리를 쓴다고 보면 된다. 온갖 상가에 나오는 그 ‘홍어무침’도 거의 이놈이 재료다. 구입한 수입 가오리는 연한 소금물에 담가서 잘 씻어서 쓰는 게 좋다. 가오리는 뼈가 연해서 뼈째 씹는 맛이 좋은데, 수입 가오리는 대개 개체가 커서 억센 부분이 있으므로 잘라내고 요리하는 데 좋다. 잘못 씹다가는 치과 신세를 질 수 있다.

글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 칼럼니스트),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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