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술꾼은 술안주를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초콜릿에 소주도 마신다. 손에서도 안 녹는 ‘엠앤엠즈’(M&M’s)에다 소주를 마신 적이 있다. ‘맥주를 마셨다면 더 나았을 것 같아.’
참된(?) 술꾼은 안주를 먹지 않는 걸 내세우기도 한다. 옛날 선술집이나 포차에선 잔술을 서서 마시고는 안주 삼아 소금 몇 톨 찍어 먹는 아재들이 있었다. 새마을운동 모자를 쓰고, 목에 수건을 두른 이들이었다. 안주도 사치였던 노동자들. 염전 취재를 간 적이 있는데, 폭염에 염전 일꾼들은 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폭염이라야 소금이 잘 생긴다. 힘든 조건일수록 효율이 더 오르는 현장이다. 소금은 창고에 쌓는데, 그곳을 들여다보았다. 소금 더미에 1.8ℓ 됫병들이(댓병이라고도 한다) 파묻혀 있었다. 염전 일꾼은 소금을 부리고 플라스틱 양치 컵에 소주를 한 잔 주르륵 따라 마셨다. 완전하게 까만 몸이라 치아만 하얗게 빛났다. 그건 술이라기보다 진통제였을 것이다.
나는 안주 없이 술 못 마시는 축이다. 서부영화든 현대물 영화든, 서양 애들이 위스키 한 잔을 쭉 마시는 장면을 보면 경이롭다. 입가심도 없이? 한국의 바에 가보라. 반드시 견과류 따위라도 준다. 와인 바는 공짜 치즈 안주에 크래커가 딸려 나온다. 이탈리아의 동네 바에 가보면 저녁밥을 맛있게 먹자고 남정네들이 쌉쌀한 식전주를 마신다. 당연히 안주는 없다. 캄파리(이탈리아 대표적인 신전주) 같은 걸 휙 마시고 집에 간다. 한국 사람들도 자주 술을 마시는데, ‘알중’(알코올 중독)이 적은 건 안주를 잘 챙겨 먹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이든 안주라이제이션, 즉 안주화하는 재주는 일본인이 제일 뛰어나다. 빵도 썰어서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서 안주 삼는다. 빵 옆에 생강초절임 같은 걸 몇 점 놓고서 말이지. 이른바 동도서기(東道西器) 화혼양재(和魂洋才)다. 한국은 좀 거한 걸 안주로 먹는 관습이 있다. 보글거리는 찌개, 부침개, 구이. 나도 그런 쪽인데, 요즘은 아무래도 간단한 안주를 챙기는 습관이 생기고 있다. 돈도 없고, 사람 만나기도 피곤한데 술은 마시고 싶을 때 그렇다.
혼술 하자면 안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크래커를 꺼내서는 못 마신다. 뭔가 한국의 양념이 들어간 안주, 그래, 음식다운 걸 먹고 싶은 거다. 아재니까. 그때는 몇 가지 고를 수 있는 게 있다. 그중 두부, 두부가 최고다. 두부는 싸고, 매운 고춧가루 간장을 칠 수 있고(그래서 한국 음식답고), 몸에도 좋다고들 한다. 다이어트 식품이란 말은 안 하련다. 살을 빼려면 술을 안 마시는 게 나으니까. 두부는 안주 삼기에 무궁무진하다. 요새 공장 두부도 맛이 좋아졌다. 국산 두부냐 따지는 것도 좋고, 중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도 좋다. 인도산 콩 제품은 피하는 편이다. 두부를 차갑게 그냥 먹는다. 4등분 해서 끓는 물에 데치거나 랩을 씌워 전자레인지에서 익힌다. 양념은 대충 이렇다.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① 간장, 고춧가루, 파 다짐과 마늘 다짐, 깨소금, 참기름. 이게 표준이다. 더러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도 된다. 식초를 더하면 균형감이 좋다. 반찬용 잔 멸치를 고명으로 쓰면 맛있다.
② 비장의 소스. 땅콩버터에 식초나 레몬즙을 조금 넣고 잘 젓는다. 두부에 뿌린다. 이거, 은근히 괜찮다.
③ 마요네즈와 캔 참치를 2대1로 섞어 도깨비방망이로 간다. 식초나 레몬즙을 첨가해도 좋다. 갈 때 마늘 약간 추가 권장.
④ 시판 돈가스 소스를 다진 양파와 함께 팬에 한 번 끓여서 쓴다. 뭔가 두부 스테이크(?)를 먹는 느낌이 든다.
⑤ 쌈장을 다진 마늘, 다진 양파와 함께 팬에 넣고 뻑뻑하게 살짝 볶는다. 타는 냄새가 나기 전에 불을 끈다. 물로 농도를 조절하고 식초를 섞는다.
⑥ 이게 오늘 알려드릴 비장의 카드. 크림치즈와 우유를 1대1로 잘 섞는다. 데친 두부 위에 얹고, ①의 ‘표준 간장 소스’를 뿌린다.
두부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챙겨둘 안주가 있다. 된장박이 두부다. 찌개용 두부(비싼 게 좋다)를 큰 주사위만 하게 자른다. 그 위에 된장을 살짝 덮어서 냉장고에서 1주일 숙성시킨다. 두부 속의 물이 된장의 염기에 의해 삼투압 되어 빠져나오면 두부에는 된장의 짭조름한 맛이 침투한다. 된장을 대충 걷어낸 후 참기름을 살짝 뿌려서 그대로 소주나 맥주 안주로 먹는다. 올리브유를 뿌려서 크래커에 올리면 와인 안주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