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르는 분께 연락이 한 통 왔다. “예전에 취재하셨던 명동돈가스집 딸입니다. 다름 아니오라, 당시 취재 녹음 파일을 얻고 싶습니다만…. 아버님의 유품이 될 기록물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 아버님이 최근 돌아가셨습니다. 주변에 일체 알리지 말고 가족장으로 지내라 하여 부고도 알리지 못했군요.”
소식을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노구에도 건강하고 정정한 분이었는데. 명동돈가스 창업자 고 윤종근 회장(1935~2020)을 취재한 건 4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유명한 패션 회사의 간부로 명성을 날렸고, 일본식 정통 돈가스를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명료한 기억력과 세련되고도 따스한 태도를 기억한다. 돈가스는 원래 외래 음식인데, 한식의 일부가 되었다. 그 역사에 윤종근 회장의 몫이 컸다. 삼가 명복을 빈다.
돈가스는 ‘돼지 돈(豚)+가스’의 조어다. 가스는 영어 커틀릿의 일본식 발음 ‘가츠’에서 왔다. 일본은 ‘돈가츠’라고 하고 우리는 ‘돈가스’라고 부른다. 동서양에 한일관계, 유럽과 아시아 관계까지 얽힌 복잡 잡종 하이브리드 음식이다. 그 역사를 여기서 다 쓸 수 없다. 중요한 건 이제 ‘우리나라 음식’이라는 사실이다. 유럽 음식인 돈가스를 받아들인 건 일본이지만, 여러 종류가 섞여서 가장 극적으로 존재하는 건 한국이다. 기사식당 돈가스는 김치랑 같이 나오고, 횟집에서 아이들 메뉴로 돈가스를 팔 정도니까. ‘기름진 음식’ 하면 돈가스다. 비 오는 날 나는 돈가스가 ‘당긴’다. ‘육(肉)’것, 지글지글, 폭발, 자극, 바삭바삭, 번들거리는 기름기, 살찌는 공포, 먹고 난 후 죄책감(?)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미칠 것 같은 음식. 장마철 눅눅해질 때 나는 돈가스에 맥주를 마신다. 이 조합은 정말 완벽하다. 한입 가득 돈가스를 씹으면 입천장이 까지는데, 그때 쾌감이 인다. 뜨거운 입안에 찬 맥주를 붓는다. 진화작업이다. 기름기 묻은 입가를 슥, 닦는다. 이거 좋다.
튀기기 힘들어서 에어프라이어? 그건 일종의 열풍 오븐이지 튀김기가 아니다. 돈가스는 튀겨라. 기름에 푹 잠기게 튀겨야 맛있다. 다이어트 후회 지수가 100% 되더라도 튀기고 보자. 오늘은 등심 대신 안심 돈가스다. 돼지를 잡으면 제일 천대받는 게 안심이다. 그래서 값도 싸다. 안심 한 채를 통째 사도 5000원 남짓. 안주로 3인분 나온다.
고 윤종근 회장은 “180도에서 8분”을 강조했다. 돈가스는 한국에서 보통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속칭 에이포(A4) 용지 타입이거나 두툼한 일식. 에이포지는 얇게 포를 뜨니까 튀기는 시간도 짧다. 후자의 경우 고기 두께마다 다르지만, 8분은 일식의 표준이다. 물론 천차만별의 레시피가 있다. 175도로 3~4분 튀기다가 온도를 내려 5분 더 튀기는 방법도 있다. 기름도 다양하다. 일본은 참기름을 섞거나 돼지 지방인 라드를 많이 쓴다. 색깔이 진하게 나온다. 나는 진한 색이 좋다. 식욕이 돋는다. 라드나 참기름을 쓰지 않는 방법이 있다. 비법 공개다.
박찬일의 돈가스
① 돼지 안심 한 채를 다섯 조각으로 자른다. 두툼한 머리 쪽은 좀 작게, 가느다란 꼬리 쪽은 크게. 꼬리 쪽은 한번 접어서 두께를 맞출 수 있다.
② 달걀 4개를 곱게 푼다. 우유나 생크림을 조금 넣는다.(묘수다.) 소금 간을 살짝 하고 설탕을 넣으면 더 맛있다.
③ 빵가루는 무엇을 쓰든 좋지만 나는 옛날식 고운 빵가루를 쓴다. 요즘 유행하는 건 삐죽빼죽한 일식 식빵가루다.
④ 기름을 170도로 가열한다.(요리용 온도계를 사라. 1~2만원짜리면 충분하다).
⑥ 소금·후추 간을 한 안심을 일반 밀가루에 가볍게 묻히고 툭툭 털어낸다. 달걀 물을 묻히고, 빵가루를 묻힌다. 여기까지는 유명한 튀김의 공식 ‘밀계빵’(밀가루+계란+빵가루)과 같다. 여기서 주의. 다시 달걀 물과 빵가루를 묻힌다. 즉 ‘밀계빵계빵’이 된다. 이렇게 되면 튀김옷이 두꺼워지고 고기가 익는 속도가 늦어져서 돈가스의 색깔이 더 진해진다.
⑥ 8분 정도 튀기면 되는데, 고기가 ‘미디엄 웰던’ 정도로 살짝 분홍색이 나와도 좋다. 요즘 이렇게 하는 돈가스집이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썰어서 젓가락으로 드시고, 소스는 시판 우스터소스가 최고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