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비를 내는 정당이 없다. 당은 있다. ‘생조당’이다. 여기서 ‘생조’는 생선조림의 준말이다. 당이란 당원의 정치적 신념의 결합체다. 생조당이 되려면, 미친 듯이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현재 당원은 딱 둘이다. 길을 가다가 생선조림을 판다는 식당을 보면 간판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낸다.
“생조 발견! 위치는 어디 어디.”
휴대전화 저장 공간이 넘치면 대개는 다른 하드에 옮긴다. 지금 내 폰 하드에는 옮기지 않고 남아 있는 사진이 딱 한장 있다. 양평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생선조림을 파는 가게를 찍어두었던 것이다. 아직 가보지 못해서, 하드에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그 가게 앞에 취해서 가로수를 붙들고 비틀거리는 아저씨가 프레임에 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생선조림 판다는 가게가 제법 맛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낮이었다. 낮술에 취한 아저씨가 가는 대폿집, 거기에 생선조림. 뭔가 술꾼의 로망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금천교시장-이라면 다들 몰라도, 경복궁역 2번 출구 파리바게뜨 골목이라면 다 안다-에 잘 가는 집이 몇 있다. 이 동네가 갑자기 뜨면서 난리가 났다. 권리금도 뛰고 월세도 뛴다. 골목 안쪽 자리는 툭 하면 새 가게가 들어선다. 별거 아닌 집도 유명세를 치른다. 그냥 열어만 놔도 장사가 되는 분위기다. 잘 가던 집 중 하나는 파김치와 가오리찜이 유명한 곳이다. 이것도 생선조림 축에 들기는 한다. 조림이 아니라 찜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 집에 꾸역꾸역 가는 이유는 생선조림을 먹기 위해서다. 그것도 조기조림이다. 메뉴에는 없다. 조기찌개가 있을 뿐이다. 조기찌개도 좋지만, 조림이 얼마나 더 맛있나. 하지만 파는 집이 드물다. 조림이라고 해서 시켜보면 대개는 찌개나 탕이다. 조기는 조금 들었지, 맛이 나올 구석이 없으니 그 많은 양의 국물에 무엇을 넣어 맛을 입히나. 결국 조미료 힘을 빌린다. 먹다 보면 혀가 아리다. 그럴 거면 그냥 조림을 팔면 되는 것 아닌가. 하기야 수육을 시켜도 국물 넉넉히 부어 주는 게 요새 바뀐 식당 풍속이다. 금천교시장 그 집에서 이렇게 주문을 한다.
“찌개 하나 주시는데, 국물은 반 만 잡아주세요.”
그러나 별무소용이다. 그냥 국물 적게 조림처럼 해달라고 해도 한강처럼 부어 준다.
“이게 아니고요, 이모.”
“그냥 끓여봐 계속. 조림되지.”
그렇구나. 그냥 끓이면 조림이 되는구나. 그러다가 살이 다 부서지는 게 문제다. 조림은 조림, 찌개는 찌개인 것을. 어쨌든 우리나라 요식업에서 찌개와 조림의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조림이 점점 더 찌개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도한 법은 없으면 좋은 것이나 이 경우는 필요하다.
“조림은 국물의 농도가 72%, 고형물(건더기)에 견줘 약 2.65배의 양 미만이어야 한다.”
어떤가. 동의하면 생조당에 들어오시라. 아직 각종 보직 자리가 다 비어 있다.
어려서 서울, 인천에 살면서 조기와 밴댕이를 많이 먹었다. 아, 조기 형제인 황석어(황새기)도 흔했다. 서해안을 타고 두 생선은 두루 잘 잡힌다. 조기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내장째 먹는 음식인데, 특유의 냄새가 있다. 말린 굴비를 못 먹는 다수의 사람은 그 내장 발효 냄새 때문이다. 조기 내장을 따지 않고 말린다. 대부분의 생선은 내장을 제거하고 말리거나 조리한다. 조기는 내장으로 산다. 밴댕이는 내장이랄 게 없다. 오죽하면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하겠나. 요리하는 처지에서는 아주 편하다. 내장을 빼도 그만 안 빼도 그만이다. 보령시에 갔다. 밴댕이조림 먹으러. 여기도 조림은 없다.
“조림? 푹 끓이셔. 끓다 보믄 조려져~이.”
그렇다. 충청도 특유의 낙관적인 세계관. 이게 밴댕이에요 반지에요?
“몰러. 다들 그냥 밴댕이라구 허지 반지라구는 안 해.”
또 한 방이다. 그냥 먹었다. 흔히 밴댕이회라고 먹는 건 거의 반지다. 비슷하게 생겼다. 밴댕이는 기름이 많아서 회로 먹기에는 썩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반지를 잘 모르니 그저 밴댕이라고 부르는 거다.
보령의 아저씨 술꾼들이 낮부터 술추렴이다. 한 상 가득 차렸는데 공짜다. 이른바 실비집이고 대폿집이다. 그 계절에 나오는 온갖 산물이 공짜 안주로 나온다. 감자며 삶은 계란이며 푸성귀며. 속 달래가며 술 마시라고 그냥 내오는 안주다. 밴댕이찌개처럼 정식 안주를 시키면 한 상 더 깔린다. 소금간이 간간한 찬들이다. 김치와 나물 같은 것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밴댕이가 유사 조림이 되어 있었다. 뭐, 이런 실비집에서 주는 대로 먹어야지.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