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 업체 마켓컬리 포장재. 유선주 객원기자
신선식품 물류 서비스 ‘새벽 배송’이 요즘은 맛집 탐방을 대신하고, 비대면 장보기를 가능하게 한다. 2015년 ‘샛별 배송’을 처음 시작한 마켓컬리에 이어 오아시스, 헬로네이처, 에스에스지닷컴(SSG.COM), 쿠팡 등의 유통업체들도 새벽 배송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배송이 늘수록 포장재도 수북하게 쌓인다. 최근 친환경 포장재 사용을 업체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업체들도 하나둘 변화하기 시작했다.
54일간 이어진 역대 최장기 장마로 채솟값도 크게 뛰었다. 애호박이 5000원을 오르락내리락하니 소박한 된장찌개는 당분간 이별이다. 만만한 채소 파트를 뒤지다 냉동 줄기 콩 한 봉지를 배송 플랫폼 ‘장바구니’에 넣는다. 유명 평양냉면집과 메밀국수 가게의 가정 간편식 제품도 추가한다. ‘홈술’ 안줏거리로 구운 돼지꼬리와 올리브 절임도 넣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하고 다음 날 아침에 주문 상품을 받는 ‘새벽 배송’으로 장을 본다.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속에서 단골 맛집도 삼가고 친구도 만나지 않으니 ‘장바구니 담기’라도 낙이 된다.
<너무 늦지 않게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의 저자이자 환경학자인 애니 레너드는 “싸고 편리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누군가 다른 사람(노동자·공동체·환경)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벽 배송도 예외는 아니다. 편의점 등장과 함께 점포를 지키는 노동자의 노동이 가시화되었듯, 전날 밤에 주문한 물건이 문 앞에 쌓이는 데는 누군가의 노동이 역할을 한 것이다. 아침에 마주하는 건 주문서에 맞게 상품을 골라냈을 누군가의 노동과 배달 노동자의 수고, 간밤의 냉기를 붙들고 있었을 포장재 더미들이다.
헬로네이처 ‘더그린 배송’은 다회용 보랭박스를 사용한다.
최근 새벽 배송 업체 간의 경쟁은 ‘더 빨리’를 내세운 속도나 정확한 배송이 아니라 포장재로 넘어갔다. 앞다퉈 친환경 포장재를 도입하고 있다. 여러 배송 플랫폼 이용자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최근 소비자들은 배송 업체를 고를 때 포장 시스템을 따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생과 신선도 유지는 기본이다. 포장재·완충재·보랭재의 소재가 무엇인지, 분리배출이 쉬운지가 평가 기준이다. 업체들이 이런 소비자들의 선택을 놓칠 리가 없다.
지난달 27일. 자원 재활용률이 높은 종이를 앞세워 업계 이슈를 선도하는 마켓컬리와 여러 번 사용 가능한 다회용 박스를 사용하는 헬로네이쳐 두곳에 주문을 넣어 포장재에 대해 살펴봤다.
초기 새벽 배송의 문제는 상품을 포장하는 골판지와 스티로폼 박스, 에어캡과 비닐 팩, 아이스 팩이 너무 많이 배출된다는 것이었다. 분해되는데 1000년 이상 걸린다는 비닐 캡을 포함해 스티로폼 박스 등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입길에 오른 지 오래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마켓컬리의 ‘올(all) 페이퍼 챌린지’는 모든 포장재를 종이 소재로 바꿔나가는 도전이다. ‘샛별 배송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위하는 일에 함께하실 수 있어요.’ 주문서의 문구다. 주문 다음 날 아침 집 앞에는 3~4층 탑처럼 종이 상자가 높게 쌓여있었다. 이번에 주문한 7개 상품은 종이박스 3개에 나눠 담겨 왔다. 여기에 냉매로 물만 넣은 아이스 팩 셋, 물이 천천히 녹도록 스펀지 재질을 사용한 복합소재 아이스 팩 하나, 드라이아이스 한 팩, 생분해성 비닐과 종이봉투가 포함돼있었다.
마켓컬리 종이상자 세개 중 하나에 주문한 상품을 모두 옮겨 담았다. 유선주 객원기자
종이 상자 개수까지 줄이는 ‘원(one) 페이퍼 챌린지’가 가능할까? 상품과 포장재 모두를 상자 하나에 옮겨 담아 보았다. 냉동식품과 양념육 사이에 아이스 팩과 드라이아이스 팩을 깔고, 토마토와 버섯은 얼지 않게 생분해 비닐봉지에 넣고 남는 공간에 시리얼 박스 등을 채우니 상자 하나로 충분했다. 상온·냉장·냉동 물류센터가 분리된 마켈컬리는 각각의 물류센터에서 포장된 상태로 한곳에 모아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물류시스템에서 한 박스 포장을 받으려면 이용자가 상온·냉장·냉동식품을 따로 묶어서 주문해야 한다. 빵(상온), 오이(냉장), 아이스크림(냉동) 하나씩 주문하면 상자가 세개가 온다. 가지, 두부, 대파, 당근, 소시지, 우유(모두 냉장) 등을 주문한다면 주문 상품 가짓수는 많아도 배송 상자는 한 개다. 친환경이나 쓰레기 줄이기에 관심 있는 이용자라면 챙겨야 하는 부분이다.
헬로네이처는 상온·냉장·냉동상품을 박스 하나에 배송하는 방식이다. 이에 더해 지난해 4월부터 재사용이 가능한 보랭 박스를 이용하는 ‘더그린 배송’을 선택지로 추가했다. 최초 보증금 5000원을 지불한 다음 주문 때 박스를 회수하면서 500원을 적립금으로 돌려준다. 헬로네이처 외에도 다회용 박스를 새벽 배송에 쓰기 시작한 업체가 여럿이다. 하지만 회수 때까지 박스를 보관하는 것도 고역이다. 잘 접어 분리배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몇 번 이용하고 잊었던 헬로네이처 계정을 복구해 9가지 물품을 주문했다. 도착한 ‘더그린 박스’의 안쪽은 은박 재질 벨크로테이프(단추 대신 쓰는 접착테이프)로 떼었다 붙일 수 있는 칸막이가 냉동과 그 외 상품 사이에 있는 구조다. 물과 전분을 섞은 아이스 팩이 3개, 드라이아이스가 한 팩, 종이봉투가 하나가 들어있었다. 지퍼가 달려서 쉽게 열리고 박스가 납작하게 접히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 마음에 들었다. 반복 사용하는 박스이기에 혹시 찌든 내가 나지 않는지 살폈다. 깔끔했다. 수거한 박스는 1회 사용 때마다 세척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헬로네이처의 ‘더그린 박스’ 내부. 유선주 객원기자
자원의 재활용 이전에 사용량을 줄이고 다시 쓰는 것이 환경 보호의 기본이다. 다회용 박스가 이전의 포장재를 대체하려면 충분히 여러 번 사용되어야 한다. 예쁘고 세련된, 배송 외에도 활용도가 높아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보랭 가방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무료 제공에 잦은 디자인 변경으로 새것을 원하게 한다면 다회용 박스가 기업 판촉물과 기념품으로 제공되어 쌓여가는 에코백처럼 소비될 우려도 있다.
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애매한 분리배출, 정답은?
용기 안의 내용물을 깨끗하게 ‘비운다’. 이물질이나 음식물 등을 ‘헹군다’. 라벨, 뚜껑 등 다른 재질은 ‘분리한다’. 종류 및 재질을 ‘섞지 않는다’. 자원 재활용률을 높이는 분리배출의 4원칙이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개발된 다양한 포장재와 용기들은 어떻게 배출해야 할까?
Q 옥수수를 원료로 만들었다는 생분해 플라스틱 용기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A 현재 국내 재활용 시스템에서는 생분해 플라스틱은 따로 분리하지 않습니다. 기존 폐플라스틱의 순환에 방해될 수 있어서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 합니다.
Q 물과 종이로 만든 친환경 아이스 팩은 물을 따라 버리고 포장지는 종이류로 분리하나요?
A 겉면은 종이 촉감인데 생분해 필름 등을 코팅해서 안쪽은 매끈매끈한 게 많습니다. 온전히 종이도, 비닐도 아닌 애매한 아이스 팩인 거죠. 겉면에 종이류 배출이라고 표기가 되었어도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합니다.
Q 은색 필름 코팅 골판지 상자는 일반 골판지와 같이 배출해도 되나요?
A골판지 상자는 박스테이프와 송장, 철 핀, 비닐코팅을 모두 제거해야 폐지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Q 우유를 마시고 팩을 물로 깨끗이 헹궈서 종이류로 배출하면 되나요?
A 최고급 천연 펄프가 주원료인 종이팩은 일반 폐지와 다른 공정으로 재활용되기 때문에 종이류가 아닌 ‘종이팩’ 수거함에 모으는 것이 정답입니다. 지자체에 따라 화장지나 종량제 봉투로 교환해 주기도 합니다.
유선주 객원기자
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