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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땅 짚고 가는 한탄강…연천 지질 여행

등록 2020-10-09 10:07수정 2020-10-09 10:42

7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아늑한 협곡에서 아득한 시간 여행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좌상바위’ 건너편 강가로 가는 오솔길. 김선식 기자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좌상바위’ 건너편 강가로 가는 오솔길. 김선식 기자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인 경기 연천군은 그동안 여행지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가을 여행지로 연천을 찾은 건 순전히 지난 7월에 있었던 사건 때문이었다. 유네스코가 경기 연천군·포천시와 강원 철원군 한탄강 일대 26개소를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했다. 그중 10개소가 연천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현재 전 세계 44개 나라, 161곳(한탄강 세계지질공원 포함)이다. 국내는 제주도, 경북 청송, 무등산 일대, 한탄강 일대 등 총 4곳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지질공원을 인증할 때 지질학적 가치에 더해 지속적이고 수월한 지질여행 가능성을 검토한다. 한탄강 일대는 전 세계적인 지질 여행 명소로 발돋움할 디딤돌이 놓인 셈이다. 돌, 흙, 땅을 둘러보는 시간이 다소 따분할 거란 우려가 앞섰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풀과 강이 휘감은 거대한 암석 앞에서 아득한 과거를 상상하는 여행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지난달 24일 경기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한탄강 세계지질공원 명소 중 한 곳인 ‘백의리층’ 들머리에 도착했다. 거대한 양수시설 옆에 ‘한탄강과 농업용수’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보였다. ‘현무암 용암대지는 보수력(흙이 수분을 보존하는 힘)이 약해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현무암 협곡의 발달로 평지보다 20~30m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끌어 올려 지금과 같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년 전’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한탄강 일대는 황무지였단 것이다.

백의리층 들머리에 있는 ‘한탄강과 농업용수’ 안내판 위에 앉은 청개구리. 김선식 기자
백의리층 들머리에 있는 ‘한탄강과 농업용수’ 안내판 위에 앉은 청개구리. 김선식 기자

한 토막 ‘지역 문명의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판 맨 위 모서리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았다. 앞발에 턱을 괸 채 미동도 없다. 반질반질한 피부는 초록빛이 흐릿했지만 눈, 코, 귀를 잇는 검은 띠는 선명했다. 그 영롱한 자태를 한참 바라보다가 개구리 피부에 들러붙은 초록 벌레들을 발견했다. 진딧물로 보였다. 진딧물 종류를 식별할 수 있다면? 진딧물이 주로 기생하는 식물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식물을 알면 개구리가 진딧물을 묻혀 온 지난 경로를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 지질여행에 앞선 몸풀기였을까. 무미건조하고 사소해 보이는 장면 앞에서 눈이 반짝였다. 마른 땅의 피부를 살펴 먼 과거의 시공간을 상상하는 연천 지질여행 내내 그러했다.

거대한 현무암 주상절리 아래 깔려 있는 하천 퇴적암(강 자갈)층이 백의리층이다. 김선식 기자
거대한 현무암 주상절리 아래 깔려 있는 하천 퇴적암(강 자갈)층이 백의리층이다. 김선식 기자

‘백의리층’ 위 현무암이 만든 기암절벽 앞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쪽은 유화물감을 두껍게 덧칠한 듯, 한쪽은 조각칼로 파낸 듯 무늬가 다채롭다. 웅장하고 생경한 땅의 무늬는 낯선 공간을 실감케 한다. ‘백의리층’은 현무암 절벽 아래에 깔린 하천 퇴적층(강 자갈층)이다. 그 흔적은 먼 과거 용암이 강을 뒤덮었음을 증언한다. 약 54만~12만년 전 한탄강 최상류 쪽에 있는 북한 지역의 강원도 평강군 오리산 일대에서 수차례 화산이 폭발했다. 용암이 분출해 한탄강을 따라 임진강까지 100㎞ 넘게 흘렀다. 옛 한탄강 유역이 용암 대지로 변했다. 용암이 식어 굳어버린 땅에 다시 비가 내리고 물이 흘렀다. 새로 난 한탄강 물길이 변형되며 현재에 이른다. 연천에서 백의리층을 처음 발견한 곳은 ‘청산면 백의리’다. 지층 이름을 마을 지명에서 따왔다. 백의리층이 잘 보존돼 있는 이곳 고문리 협곡 일대 지질 명소도 ‘백의리층’이라 부른다.

청산면 장탄리 일대 한탄강 풍경. 연천군청은 이달 중 한탄강과 임진강에서 카약 무료 체험 교실을 5일간 운영할 계획이다. 김선식 기자
청산면 장탄리 일대 한탄강 풍경. 연천군청은 이달 중 한탄강과 임진강에서 카약 무료 체험 교실을 5일간 운영할 계획이다. 김선식 기자

한탄강 협곡은 주상절리 천지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부근 약 2㎞ 협곡을 따라 높이 약 25m 주상절리 절벽이다. ‘임진강 주상절리’(미산면 동이리)라 부르는 곳이다. 3~8각형 기둥 모양 암석들이 빼곡히 붙은 주상절리 절벽은 ‘임진강 적벽’이라 일컫기도 한다. 가을철 단풍이 절벽을 붉게 물들이기 때문이다. 임진강 주상절리 건너편 강가에서 용암이 강을 따라 흐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시뻘건 용암이 강을 따라 일대를 뒤덮으며 온 세상을 수증기로 가득 채웠을 것이다. 용암은 식어 굳으면서 수축해, 버쩍 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듯 틈(절리)을 만든다. 오랜 세월 그 사이로 비와 눈, 바람과 물이 지나가며 틈을 벌리고 물줄기를 만든다. 협곡이 생기고 양쪽 절벽에선 천천히 암석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연천 일대 주상절리를 감상할 만한 곳은 재인폭포(연천읍 부곡리)와 ‘차탄천(한탄강 지류) 주상절리’(연천읍 통현리)가 대표적이다.

연천읍 부곡리 ‘재인폭포’. 김선식 기자
연천읍 부곡리 ‘재인폭포’. 김선식 기자

용암이 만든 암석은 아주 젊은 축에 속한다. 한탄강 협곡엔 공룡이 생존하던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7000만년 전)에 생긴 바위도 있다. ‘좌상바위’(전곡읍 신답리)다. 당시 화산 폭발로 용암이 분출해 그 자리에 높이 약 60m 바위산으로 식어버렸다고 한다. 강가로 내려가는 오솔길에서 보면 평범한 바위산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면 희끗한 세로 방향 띠와 흰 점 무늬가 도드라져 보인다. 오랜 풍화작용 흔적이다. 흰 점은 암석의 칼슘 성분이 현무암 구멍을 채운 것으로, 신생대 4기(수십만 년 전) 현무암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한다. 좌상바위 아래 기반암은 고생대 데본기(약 4억년 전)에 생성된 변성퇴적암 ‘미산암’이다. 어류가 번성하고 원시 양서류가 처음 출현할 무렵(데본기)에 생긴 암석이니 그 기원과 역사를 상상하기조차 막막하다. 암석 이름은 첫 발견 장소(연천군 미산면) 지명에서 따왔다.

중생대 백악기 후기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좌상바위. 김선식 기자
중생대 백악기 후기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좌상바위. 김선식 기자

유네스코 한탄강 세계지질공원 인증 과정에서 ‘미산층’과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윤미숙 연천군청 관광과 지질생태팀장은 “세계지질공원 인증 과정에서 세계적으로도 학술적 가치가 있는 곳인지를 평가하는데 한탄강 26개 지질명소 중 미산층과 베개용암이 그런 곳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베개용암은 현무암이 베개 모양 같다고 붙인 지질학 공식 명칭(pillow lava)이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천연기념물 제 542호·전곡읍 신답리·전망대 위치 기준)은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길목(아우라지)에 있다. 포천시에 있지만, 베개용암을 조망하는 전망대는 연천군에 있다. 베개 수백개를 쌓아 올린 것처럼 절벽 밑동에 베개용암이 촘촘하다.

‘아우라지 베개용암’ 절벽. 베개가 촘촘히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암석들이 베개용암이다. 김선식 기자
‘아우라지 베개용암’ 절벽. 베개가 촘촘히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암석들이 베개용암이다. 김선식 기자

베개용암은 용암이 물을 만나 급격히 식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현재 베개용암이 있는 자리가 용암이 흐를 당시엔 강이나 바다였다고 보는 이유다. 물 속으로 흘러든 용암은 겉면이 먼저 굳어 검은 껍질을 만든다. 껍질 안에 남은 용암은 틈을 뚫고 나와 굳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베개모양 현무암을 남긴다. 국내 육지에서 베개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은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유일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대부분 해저 지형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전곡읍 ‘전곡리유적’ 들머리에 있는 조형물. 김선식 기자
전곡읍 ‘전곡리유적’ 들머리에 있는 조형물. 김선식 기자

전곡읍 ‘전곡리유적’ 들머리에 있는 조형물. 김선식 기자
전곡읍 ‘전곡리유적’ 들머리에 있는 조형물. 김선식 기자

용암 대지에 다시 강이 흐르고 숲이 생길 무렵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나타났다.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전곡읍 전곡리에 구석기인들이 출현한 시점은 약 30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1979년 최초 발굴 조사 이후 30여년 동안 전곡리 일대에서 발견한 구석기 유물은 약 8500여점이다. 구석기인들은 용암 대지를 뒤덮은 퇴적층에 유물을 남겼다.

연천 전곡리유적. 김선식 기자
연천 전곡리유적. 김선식 기자

전곡리유적 토층전시관에 전시한 아슐리안 주먹도끼 모형. 김선식 기자
전곡리유적 토층전시관에 전시한 아슐리안 주먹도끼 모형. 김선식 기자

오랜 세월이 흘러 서기 500~600년대 고구려인들은 용암이 만든 주상절리 절벽을 활용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천 고구려 3대 성이라고 부르는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은 남쪽과 북쪽에서 임진·한탄강이 깎은 약 15m 높이 주상절리 절벽 위 삼각형 모양 평지에 쌓았다. 마치 100여년 전 연천 농민들이 한탄강 물을 끌어올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농사를 지었다는 설명처럼 고구려는 물론 구석기시대 얘기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 고생대부터 수십만 년 전 땅의 흔적들을 되짚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하거나 장엄한 볼거리에 시선이 빼앗기는 여느 여행과는 다른 맛이 지질 여행엔 있다. 켜켜이 쌓인 지질층에 드러나는 지구의 역사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는 여행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유유히 흐르는 평화로운 강 풍경은 덤이다.

연천(경기)/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호로고루’. 김선식 기자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호로고루’. 김선식 기자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호로고루’ 전경. 김선식 기자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호로고루’ 전경. 김선식 기자

[ESC] 연천 지질여행 수첩

이용 정보 연천 지질 명소 가운데 인터넷 지도 검색으로 찾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주차장 또는 근처 갓길 주소는 다음과 같다. 전곡리 유적(전곡읍 평화로 443번길 2), 재인폭포(연천읍 부곡리 192), 백의리층(연천읍 고문리 212), 아우라지 베개용암(전곡읍 신답리 17-44), 좌상바위(전곡읍 신답리 17-38), 당포성(미산면 동이리 778), 임진강 주상절리(미산면 동이리 64-1), 동막리 응회암(연천읍 동막리 198), 차탄천 주상절리(연천읍 통현리 1045), 은대리 판상절리와 습곡구조(전곡읍 은대리 730). 전곡리 유적은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성인 기준 1000원이다. 7일 현재 내부 선사박물관은 시간당 50명 이내 입장이 가능하다.(전곡리 유적 안내 031-832-2570) 전곡리유적은 토층전시관, 선사박물관 등 실내 시설 외에도 드넓은 숲과 산책로, 정원 등이 있다. 연천군청과 백학저수지협동조합은 한탄강·임진강에서 카약을 타고 주상절리 등을 관찰하는 무료 체험교실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달 16, 17, 18, 24, 25일 총 5일간 진행한다.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 각 20명까지 참여할 수 있다.(문의 연천군청 관광과 031-839-2061) 지질공원 관련 정보는 전곡리유적과 재인폭포 탐방안내소에서 상시(오전 10시~오후 5시) 근무하는 지질공원 해설사에게 문의할 수 있다. 10명 이상 단체 여행객은 연천군청에 지질공원 해설사 동행을 신청할 수 있다.(문의 연천군청 관광과 지질생태팀 031-839-2289)

식당 명신반점(전곡읍 전곡역로 61/031-832-2307)은 연천에서 유명한 중국집이다. 탕수육(1만5000원부터), ‘매운간짜장’(6000원), 베이컨볶음밥(8000원) 등을 판매한다. 한탄강강변매운탕(전곡읍 선사로 149/031-832-4561)은 민물 매운탕과 숯불 민물장어 구이 메뉴 등이 있다.

숙소 백학자유로 리조트(연천군 노아로 491번길 283/031-839-3000)는 객실 145실과 식당가, 컨벤션, 산책로 등을 갖췄다. 객실이 깔끔한 편이다.

김선식 기자

호로고루 앞 해바라기 밭에 핀 코스모스. 김선식 기자
호로고루 앞 해바라기 밭에 핀 코스모스. 김선식 기자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호로고루’ 전경. 김선식 기자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호로고루’ 전경. 김선식 기자

연천(경기)/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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